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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8 17:07

모자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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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하나’라는 말답게 요즘은 나라마다 뚜렷이 구별되는 문화적 특성을 찾아보기가 힘들고, 행여 특이한 문화를 경험한다고 하더라도, 책이나 인터넷 등 여러 가지 대중매체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많다. 그래서 자기들만의 문화를 지키는 것은 오늘날에 있어서 더욱 자부심을 느끼게 하고, 그 고유성을 세상에 알리는 것에 대해 기뻐한다. 영국 같은 경우 서양문화를 세계 곳곳에 알린 국가들 중 선두주자로 그들에 문화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영국 음악이나 문화에 대해 흠뻑 빠져 있기도 하다. 영국이라고 하면 전통을 중시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처음 영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그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짧은 시간 동안 내 눈에 비쳐졌던 런던은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일상처럼 현대적인 사회 시스템에서 각자의 생활에 충실한 사람들의 모습이 전부였다. 단시간엔 영국인들 만의 독특한 성향을 읽을 만큼 그들을 파악하기 힘들었고 외향적으로는 별로 다를 바도 없어 보였다. 그냥 현대인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영국이라는 자국에 대한 무언의 자부심과 약간은 냉소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행동 등 영국인들에게서만 찾을 수 있는 특색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영국인들은 이렇다’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 만큼 내 영국 생활을 길 지 않을뿐더러 순수 영국인들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가지기 못했기 때문에 그들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내 시각에서 읽을 수 있는 ‘영국스러움’을 발견하게 되면 참으로 신기하다.

매해 6월이면 영국에서는 많은 행사가 벌어진다. 윔블던 테니스 대회와 템즈강 보트 경기 등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는 여러 가지 스포츠 경기가 열리고, 이에 영국인들도 열광한다. 특히 로얄 애스콧 경마대회는 왕실주최로 이루어 지며 경주를 관람할 수 있는 자격 조건도 까다로워 외국인에게는 윔블던 테니스 경기처럼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고유의 영국스러운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한다.

로얄 애스콧 레이스 미팅(Royal Ascot Race Meeting)이라고 함은 6월에 영국의 애스콧 경마장에서 열리는 경마대회 주간을 말한다. 올해 같은 경우는 16일에서 20일까지 열렸는데 아마도 TV를 통해 다양한 뉴스를 접했을 것이다. 5일간 개최되는 이 대회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윈저성에서 마차를 타고 출발하여 경주장에 참석하게 되면 시작되고, 행운의 우승자는 여왕으로부터 직접 트로피를 받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 대회 관람을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의 의상에서 난 ‘영국스러움’을 보게 된다. 남자들은 검정색이나 회색 계열의 정장을 입고 검정색 높은 모자를 쓴다. 또 옛날 영화에서나 본 듯한 신사의 모습을 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딱 떨어지는 정장과 모자에 지팡이를 멋스럽게 들고 나온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전형적인 영국신사 같은 모습도 재미 있지만, 원피스나 정장 투피스를 입고 가지각색의 모자를 착용한 여자들의 의상은 단연 돋보인다. 창이 큰 모자에서부터, 머리에 딱 붙인 모자대위에 깃털이나 조화를 꼽아 드높게 장식한 모자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고 연령층에 따라 선호하는 디자인도 다르다. 영화에서 보면 그런 종류의 모자를 종종 볼 수 있어 난 으레 대부분의 유럽국가의 오래된 의상스타일이거니 했었다. 그런데 다른 유럽 국가 출신의 여러 친구들도 그 모습을 신기하다고 하고, 영화나 여러 정보를 다시 찾아보니 그런 종류의 모자를 쓰는 것은 영국다운, 영국만이 고수하고 있는 의상문화 중에 하나였다.

작년에 애스콧 경주대회가 열릴 즈음, 헐리우드 영화 <섹스 앤 시티>가 때맞춰 개봉했었다. 개봉에 앞서 영화에 출연한 주연 여배우들이 런던에서 시사회를 가졌었는데 그때 캐리역의 사라 제시카 파커는 가는 주름이 전체적으로 들어간 연두색 원피스에 머리에는 자신의 얼굴 크기만한 모자를 썼었다. 원피스와 어울리게 연두빛과 보라색, 그리고 노란색의 꽃 장식이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애스콧으로 달려갈 것 같은 분위기였다. 미국인인 그녀 또한 런던에서 열리는 행사에서만큼은 영국인다운 의상을 선택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하늘 높이 치솟는 모자를 가지고 여성의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영국의 패션은 나 같은 아시안인들 뿐만 아니라 같은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 그 외 많은 세계인들이 호기심을 가지며 여성들 같은 경우는 한번쯤은 영국인이 되어 한번 착용해 보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애스콧 경마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아해 보인다. 여자들은 머리 위에 고정되어 있는 모자의 아름다움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어깨를 펴고 목을 꼿꼿이 빼면서 걷는다. 그리고 한 팔은 파트너 남자의 팔에 살짝 껴놓고 멋진 신사의 에스코트를 받는다. 그리고 6월의 맑은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사람들과 담소를 나눈다. 영국 이외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에 한해서 국가 고유의 의상을 입을 수 있도록 허용하긴 하나, 사실 여기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국인이며 아직 한번도 정장에 화려한 모자를 쓴 여자들 외 색다른 의상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여기 경마대회 촬영을 하러 온 기자들 조차도 메인 스탠드에서는 소매가 없는 옷을 입을 수 없으며, 카메라 또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없어 가방에 넣고 촬영을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사회에서 시대에 떨어진 규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365일 매일 있는 행사도 아닌 일년에 단 5일 열리는 영국 전통 행사에서 이 같은 엄격한 규율은 ‘영국스러움’을 지키려는 영국인들의 의지일 것이다. 언젠가 한번은 TV가 아닌 애스콧에 직접 가서 여자들의 독특한 모자들을 구경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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