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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와 캠브리지, 이 두 도시는 사람들에 입에 오르내릴 때마다 항상 함께한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도시이며 영국 수상을 비롯한 많은 인재들이 배출된 곳이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영국을 이끌어가는 각 분야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 중 이 곳 대학 출신이 많다.

또한 런던과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영국을 찾은 많은 관광객에게 아주 좋은 여행지이기도 하다. 복잡한 런던을 벗어나 영국의 작은 도시를 찾아가 한껏 여유를 부리고 싶은 배낭여행자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장소이며, 공부하는 것에 지쳐 있는 학생들에게 다시 한번 힘을 내어 공부하고 싶게끔 동기를 부여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라 하겠다.

원래 이 때 즈음, 친구가 공부하고 있는 독일로 짧게 여행을 가려고 했었다. 친구 얼굴도 보고 밀린 이야기도 하면서 쉬려고 말이다. 하지만 여행일정이 미뤄졌고 그 시간에 짧게 다녀 올 수 있는 여행지로 찾은 곳이 옥스퍼드였다.

지금 런던생활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거나 그리 힘든 일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일상’이라는 것은 가끔씩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을 만드는 것 같다. 일상이 연속되면 지루함을 느낄 수 있고 신체적 피로가 없더라도 정신적인 무료함으로 인해 어깨에 힘이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가 어느 정도 쌓이게 되면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는 순간에 짧게든 길게든 여행을 간다. 난 삶을 학생의 자세로, 여행자의 자세로 살았으면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알려고 하고 그에 대해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 마는 강한 학생의 정신과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에도 반응할 줄 알며, 기쁨과 즐거움을 찾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여행자의 태도가 내 삶 모든 것의 기본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런 나에게 일상 속에서의 짧은 공백의 시간은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옥스퍼드 코치스테이션에 도착하여 좁은 골목을 들어서니 이것저것 물건들을 싸게 파는 작은 시장이 나왔다. 과일, 채소와 같은 먹거리부터 장난감, 화장품, 공구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까지 다양한 품목들로 가득했다. 시장을 한 바퀴 돈 후 애슈몰리언 박물관(Ashmolean Museum)으로 향했다. 신전 모양으로 생긴 건물로 옥스퍼드 대학의 미술품을 전시해 놓은 곳으로 영국에서 손꼽히는 박물관이다.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의 유럽 회화 작품과 더불어 그리스와 이집트 회화 등 광범위한 컬렉션이 전시되고 있다. 박물관에서 나와 보들레이언 도서관(Bodleian Library)으로 향했다. 1598년에 세워진 도서관으로 영국에서 출판된 서적을 거의 모두 보유하고 있는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총 보유 서적이 300만권 이상으로 여기 옥스퍼드의 학생들에게는 정말 훌륭한 연구자료의 원천일 것이다. 또한 여기는 일반 관광객에는 개방하지 않고 있어 나와 같은 일반인에게는 그것 또한 부러운 부분이었다.

Oxford High Street은 다른 여느 도시의 중심가와 비슷하다. 옷 가게에서부터 패스트푸드점, 식료품 가게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브랜드부터 작은 가게에 이르기까지 그 모습들이 아주 익숙하다. 이런 거리를 걸으면서도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건 서점이었다. Waterstone’s와 같은 대형서점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서점들도 많아 옥스퍼드가 대학의 도시라는 것을 실감해주는 풍경이었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한국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 한다. IT강국이라는 명성답게 인터넷, 컴퓨터게임 등 빠르고 더욱 흥미 있는 놀 거리들이 넘쳐나서 그럴 수도 있으나 책을 읽는다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나도 침대 옆에 항상 책을 두고 잠들기 전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영국에 와서부터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왜인지는 모르지만 밤에도 생각을 하거나 책을 읽는 시간보다는 친구를 만나거나 영화를 보러 가는 등 집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때가 많았다. 이런 나에게 영국생활은 책을 읽거나 조용히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준 셈이다.

서점의 넘쳐나는 책들만큼이나 여기 옥스퍼드에는 학생이 넘쳐난다. 가방을 메고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젊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옥스퍼드 대학의 학생일 가능성이 높다. 별로 크지도 않으며 평지가 많고, 또한 거리 곳곳에 대학이 위치해 있다는 옥스퍼드의 특성 때문인지 현지인, 특히 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풍경은 자연스럽다.

아직도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대학의 많은 강의에서 학생들은 검정색 가운을 입는다. 정해진 시간 내에 학생식당을 이용할 때도 가운을 입어야 된다고 한다. 또한 비록 가운이 아니 더라도 학교 내의 행사나 특정 강의 등에서 여학생은 검정색 스커트에 검정색 구두와 스타킹, 그리고 흰색의 블라우스를 기본으로 한다. 남학생의 경우 검정색 양복차림이나 어두운 색의 옷을 입어야 하고, 양말이나 신발 또한 당연히 어두운 색 계열이어야 한다고 한다.

검정색 가운을 걸치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책을 들고 길을 걷는 이들을 보면서 마치 과거로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영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아직 많은 학교에서 유니폼을 입는다. 유니폼이라는 것은 소속감을 느끼게 해줄 뿐 아니라 행동의 제약을 두기 때문에 자신의 본분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대학도 유니폼을 입지 않는다. 옥스퍼드에 있는 대학들도 유니폼을 입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정확히 어떤 강의에서 가운을 입는지, 그에 대한 어떤 규칙이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검정색의 가운을 입음으로써 배움의 자세를 바르게 하고 옥스퍼드 대학의 학생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옥스퍼드 학생에게 있어 검정색 옷차림은 전통을 이어간다는 긍지와 함께 새로운 것을 찾기를 갈망하는 배움의 자세를 굳건히 하고 그들의 미래뿐만 아니라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는 신념을 드높이는 것이다.

애슈몰리언 박물관과 보드레이언 도서관 같은 대형 자료제공처와 함께 거리에는 크고 작은 서점이 있고, 검정색 가운의 학생들이 여기저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작은 골목을 들어서도 볼 수 있는 대학의 문들은 나에게 배움에 대한 자극을 주었다. 배움이라는 것은 그냥 지식의 원천일 뿐 아니라 생활의 모든 순간들에 있어서 기본적인 자세이다. 하다 못해 나처럼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끝까지 파헤치려는 앎에 대한 강한 의지가 절실히 필요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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