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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6 19:52
흑인들의 문화폭동, 노팅힐 카니발
조회 수 2417 추천 수 0 댓글 0
지난 글에서 말한 것처럼 지금 에딘버러는 페스티벌로 들썩이고 있다. 여기에 질 새라 런던도 움직이기 시작하니 바로 노팅힐 카니발이다. 이 축제는 에딘버러의 그것과는 다르다. 에딘버러는 미술, 연극 등 다양한 분야를 모두 수용하여 열리는 그야말로 광범위한 예술의 축제라고 한다면, 노팅힐 카니발은 거리에서 벌어지는 퍼레이드를 중심으로 흑인들의 음악과 예술을 선보이는 축제이다. 어느 축제가 더 낫다던가 흥미로운지에 관한 우위를 따지기 힘들다. 정말 그건 축제를 즐기는 이들의 마음가짐이나 여유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문화라는 것은 국적이나 민족, 그밖에 어떠한 다름의 요소에 상관없이 서로 교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다. 가사를 알아들을 순 없어도 아름다운 멜로디만으로도 노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수백 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더라도 현대인들은 그 작품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고 공감한다. 이런 것들보다 더 대단한 것은 바로 동그랗게 생긴 것이면 무엇이든 차고 다니고, 동네친구들끼리 야자수열매 하나 놓고 멋진 축구경기 한판 벌리는 게 삶의 가장 큰 행복인 아프리카의 가난한 꼬마아이조차도 어느 나라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는 데이비드 베컴의 멋진 경기모습을 보면 그날 하루 종일 가슴 뛰며 설렐 것이다. 그러면 베컴은 그 꼬마아이에게 영웅이 되고 베컴을 통해 멋진 꿈을 가질 것이다. 이것이 문화다. 말이 필요 없고 사실 설명조차 필요 없는 것 말이다. 세계의 다양한 나라와 지역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진다. 문화는 보통 어떻게 사람들이 살아왔는지에 관한 역사와 그 사람들의 특성을 반영한다. 흔히 열정이 가득한 민족의 나라라고 불리는 스페인과 브라질은 그네들의 열정적인 성격을 반영하듯 투우경기와 같은 거친 문화와 삼바(Samba)라는 브라질 카니발의 흥분과 열정을 담은 라틴댄스를 만들어 냈다. 이성적이며 냉철한 민족성을 가졌다고 흔히 말하는 독일인들 또한 그들의 성향에 맞게 바우하우스라는 실용예술의 최고 양식을 예술의 역사 속에 남겼다. 하지만 사실 우리가 알만큼 인지도가 높은 문화예술들은 전세계 셀 수도 없이 다양한 문화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흔히 나라가 부강하든지 문화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그들의 문화 또한 더욱 발전한다. 왜냐면 이런 나라의 국민들은 문화가 줄 수 있는 엄청난 경제적 이익에 대한 계산을 할 줄 알고, 문화를 통해 전세계에 국가의 상징적 이미지를 심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재정적인 투자와 국가나 지역단체의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런 측면에서 보면 먹고 사는 것조차 해결될 수 없는 가난한 나라나 국가 발전이 먼저인 개발 도상국들에게 있어 문화홍보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들을 생각한다면 에딘버러의 국제 페스티벌과 노팅힐 카니발은 행운의 마차를 탄 나라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선택된 문화의 향연이다. 어쨌든 알려지지 못하는 가치 있는 수많은 문화에 대한 슬픔은 접어두고 지금은 내가 사는 이 곳에서는 얼마든지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접할 수 있다는 행복감만으로 가슴을 채우고 있다. 해마다 영국 런던에서는 마지막 뱅크홀리데이가 되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크기의 축제가 열린다. 길거리는 춤추고 흥겨워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로 인해 런던의 중심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노팅힐 카니발은 이렇게 1년에 한번, 수많은 사람들을 런던으로 불러모으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사실 지금은 이렇게 세계적인 축제가 되고 흥겨움과 즐거움이 가득하지만 그 시작의 역사는 슬프다. 런던의 노팅힐은 -물론 일부 지역은 부유층의 고급주택가가 즐비하지만- 뉴욕의 할렘과 같은 대표적 우범 지역 중에 하나이며 지금도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난다. 그 이면에는 백인이 주류인 영국사회에서 소외 받은 다양한 국적의 이민족들의 애환이 숨쉬고 있다. 식민지 시절 건너온 이민자들이 어느 순간부터 이민족 타운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그곳이 노팅힐이다. 영국의 노예 제도는 1833년 공식적으로 사라졌지만 1950년대까지 흑백의 갈등은 계속되어왔다. 중남미의 앵글로 카리브 이민계 부터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 다양한 민족들이 어울려 살면서 영국이 주는 민족차별과 그로 인한 스스로 이방인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아픔을 서로 나누기 시작했다. 그 규모가 점차 늘어나면서 1965년에는 런던의 카리브해 출신의 카리브계 이주자들이 고향을 기리며 일년에 한번 조그마한 가두 행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민자들은 일년 중 하루만큼은 그들의 주인이었던 백인들을 비판하고 흉을 보면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언어인 음악과 춤으로 자신의 선조들의 애환을 풀 수 있는 날을 만들게 되었고 그들만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참가자를 뺀 순수 관광객으로만 추정 연인원 150만이라는 기록이 말하는 것처럼 이 축제기간이 되면 노팅힐의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에서 참가자와 관광객이 모인 200만이 넘는 거대한 인파가 이날만큼은 노팅힐 일대를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 넣는 것이다. 중남미를 중심으로 하는 각국의 독창적인 화려한 의상(Mas), 자메이카 중심의 레게음악인 스테틱 사운드 시스템(Static Sound System), 칼립소(Calypso), 소카(Soca), 강렬한 열정을 뿜어내는 금속 타악기인(Steel Band)까지 총 5개를 축제의 기본요소를 가지며 그 분류에 따라 다양한 문화를 보여준다. 앵글로 카리브 이민자들에 의해 처음 주도된 만큼 세계적으로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는 브라질 리오 카니발을 방불케 하는 열정과 화려한 복장을 선보이며 그들의 음악과 댄스는 보는 이들 또한 그들과 하나가 되게 하고 흥분의 도가니로 빠트린다. 노팅힐 카니발은 매년 그 새로움과 규모를 늘려가고 있으며 전 세계의 관광객들 또한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뛰어난 예술성과 화려한 복장과 다이나믹한 금속 타악기 연출을 즐기며 축제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간의 스트레스를 이 곳에서 날려버릴 심산인 듯 모두들 있는 힘껏 고성을 지르고 환호를 하며 축제의 열기 속으로 몸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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