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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잘 차려 입은 날은 기분이 절로 난다. 왠지 그날 하루는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해진다. 여자들이 패션에 더 민감하고 꾸미기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남자들 또한 한껏 멋을 낸 날에는 들뜬 기분이 들것이다. 연인이나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뿐만 아니라 업무상의 중요한 미팅 등 멋을 내는 이유는 다양하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도 옷이나 액세서리의 선택이 달라지지만 언제 만나고, 혹은 어디서 만나는지에 따라서도 스타일을 다르게 할 수 있다.  

런던은 문화뿐만 아니라 패션의 중심지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디자이너들이 영국출신이며 런던은 그들의 중요한 작업장이다. 그래서인지 런던에 사는 사람들의 패션 또한 그 어떤 도시보다 빼어나다. 어쩌면 아무런 생각 없이 걸쳐 입은 것일 수 있으나 런던이라는 이유만으로 감각적으로 보여 질 때도 있다. 거리를 걷다가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질감의 옷과 눈에 거슬리는 액세서리를 걸치고 지나가는 이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이상한 스타일 또한 ‘개성’으로 보이곤 한다.

서울 또한 패션이라면 그 어떤 도시에 뒤지지 않는다. 런던이나 뉴욕 컬렉션에서 선보이는 디자인들은 급속도로 서울의 패션경향을 새롭게 바꾸어 놓는다. 서울의 감각성향이 런던과 다른 것이 있다. 바로 ‘개성’의 절대적 부족이다. 사실 런던은 많은 패션쇼를 통해 새롭고 다양한 패션을 선보이고 그 중 런던의 패션의 흐름을 이끄는 디자인이 분명 나타난다. 그러나 런던의 길거리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그것을 굳이 따르지 않고 있다. 물론 패션경향이라는 것은 있지만 모두가 하나같이 일괄되게 유행아이템을 쫓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패션에 대한 고집이 살아있고 그 고집을 유행 때문에 쉽게 꺾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런던거리의 패션에는 다양함이 살아 있는 것이다.

서울은 거리를 30분만 걷고 있어도 지금 무엇이 유행인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똑 같은 브랜드의 가방을 매고 비슷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다. 진짜 브랜드 제품도 많겠지만 어떤 것들은 시장이나 일반 숍에서 구입한 가짜 제품일 수 있다. 이처럼 가짜 제품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판매하는 시장이 발달했다는 것 자체가 벌써 ‘개성이 없는 유행’이 한국패션문화의 특징이라는 것을 반영한다.

또한 한국에서는 형식과 격식이 중요하다. 학교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가는 여학생들도 하이힐을 선호하고 한여름 바닷가로 피크닉을 갈 때에도 키가 높은 샌들을 신고 나선다.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들도 정장에 모두 구두를 신고 있다. 영국에 오기 전에는 그것이 참 한국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왜냐면 나 또한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나 또한 동네슈퍼에 잠깐 나가는 게 아닌 이상 운동화가 아닌 조금이라도 높이가 있는 구두나 샌들을 선호했었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는 목적과 상관없이 일단 집 밖을 나서면 사람들의 눈이 의식되고 나의 모습을 어떻게 평가할 지가 한국에서는 항상 신경이 쓰인다.  

런더너(Londoner)들의 패션은 서울라이트(Seoulite)들의 겉치레적인 패션과 다르다. 바로 실용중심 패션이라는 것이다. 리버풀스트리트 주변은 런던의 금융과 경제를 움직이는 많은 회사들이 있다. 그래서 출퇴근시간에 맞춰 그 곳을 가면 정장을 갖춰 입은 회사원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그런데 검정색 정장을 차려 입은 사람들이 하얀색 운동화를 신고 있다. 여자들도 정장치마를 입고 큰 조깅화를 신고 발 빠르게 걸어간다. 거기에다 어떤 사람들은 큰 배낭 같은 것을 메고 출근을 한다. 정장에 맞는 핸드백이나 서류가방이 아닌 등산을 할 때나 맬 법한 크기의 가방을 선택한다. 처음 그런 사람들을 봤을 때에는 정말 의아해 했었다. 한국에서는 정장에 구두나 하이힐을 신는 것이 당연한 뿐더러 옷에 맞춰 가방과 같은 액세서리에도 신경을 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정장에 운동화를 신었거나 배낭을 맨 사람들을 보면 계속 시선이 가거나 친구와 한마디를 내뱉을 수 있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라는 패션은 필요가 없다. 런더너에게 있어 패션은 편한 것이 우선이며, 또한 그들은 어떤 신발이나 가방을 착용하든지 아무도 본인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런던에 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만해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패션이 어색했으나 이젠 한국사람들의 패션에 의문이 던져진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갖춰 입은 날은 기분이 절로 좋아지고 내 자신의 모습이 근사하게 보여질 거라는 기대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정장에는 당연히 구두를 신는 것이고 작은 가방 하나로 멋내기를 마무리한다. 아침에 정신 없이 회사로 향하는 사람들도 하이힐을 신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기 위해 뛰어다닌다. 들고 가야 하는 책이 많은 학생들도 치마를 입고 구두를 신은 경우라면 큰 책가방을 포기하고 책은 예쁜 종이가방에 넣더라도 작은 핸드백을 든다. 이젠 이것이 이상하다. 얼마 전 휴가 차 한국에 갔을 때 사람들의 신발을 다시 눈 여겨 봤다. 하나같이 하이힐이나 높은 샌들을 신고 있는 모습이 불편해 보였으며 난 나도 모르게 바닥에 딱 붙는 단화를 신고 걷고 있었다.

패션이라는 것은 겉치장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통해 기분전환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이미지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훌륭한 도구이다. 또한 패션은 ‘나’에 대해 정확히 알기 전에 ‘나’를 말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며 이를 통해 어떤 좋은 감정이나 긍정적인 기분을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꼭 가방이며 구두와 같이 진정 ‘나’의 편안함과 연결되는 아이템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 이것저것 많이 넣어 두툼해진 책가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운동화를 신었다고 해서 ‘나’의 감각을 의심스러워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히려 열심히 살고 있는 ‘나’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질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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