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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라 하면 하늘을 향해 높게 솟아있는 피라미드와 그것을 지키는 스핑크스가 제일 먼저 생각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집트 신전들과 사막이 아닐까 한다. 이것들과 동시에 떠오르는 것이 아마도 나일강일 것이다. 아프리카 전체 면적의 10분의 1을 차지하고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기도 하다. 나일은 아랍어로 ‘푸른 흐름’ 이란 뜻이다. 푸르게 흐른다는 어감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일강은 이집트인들을 포함한 많은 아프리카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덥고 비가 적은 땅에 생명 줄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오지의 깊은 계곡에서 발원하는 나일 강은 아프리카 대륙의 일부를 길게 흐르면서 그 색은 황토빛을 띤다. 사막을 통과하면서 오아시스와 같은 생명수를 만들고, 고대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을 허락한다. 만약 나일강이 거기 그곳에 없었다면 찬란한 이집트 고대역사도 없을 것이며, 강 주변 신전과 같은 현재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은 찾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집트라는 나라가 존속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 역사 기록을 봐도 이집트인들이 나일강을 얼마나 숭배했는지 알 수 있다.

나일강은 우간다 산악지대에서 발원한 ‘달의 산’이라고 불리는 백나일과 에티오피아의 타나 호수에서 발원한 청나일로 이루어져 있고, 이 두 강은 수단의 카르툼에서 합쳐져 이집트로 흘러 들어 온다. 유명한 신전이 있는 카르나크, 룩소르, 멘피스, 기제 등 고대 도시들 대부분이 나일강 주변에 위치하고 있어, 나일강을 따라 여행한다는 것은 고대 이집트를 보는 것과 같다. 성서에서 보면 나일강 색이 검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은 청나일 속에 섞여있는 흙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나일강은 우리나라 황사가 낀 날처럼 물 색깔이 뿌옇다. 하지만 메마른 이집트 땅의 흙빛과 잘 어우러져 나일강의 아름다움은 더욱 빛나는 듯 하다.

나는 친구 두 명과 함께 카이로 여행을 마친 후 야간 버스를 타고 이집트 남부 아스완으로 이동했다. 이집트 최대의 신전이 아부심벨에 가기 위해서는 아스완을 꼭 가야 했다. 아스완에서 아부심벨로 가는 많은 여행 패키지가 있는데 찌는 듯한 더위 때문에 –내가 갔을 때가 2월이었는데 그때 당시 40도가 넘었으니, 한여름 기온이 어떨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새벽에 출발한다. 아부심벨 신전은 두 개의 바위산으로 만든 신전으로 람세스 대신전과 그의 아내를 위한 소신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전 정면에 있는 높이 20m의 람세스 2세 좌상 4개는 놀랍다 못해 거룩하다고 느낄 정도니 실제 보지 않고서는 그 웅장함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찌는 듯한 더위도 신전 안에서 씻은 듯이 사라지고, 신전을 걸으면서 보이는 벽화들은 서늘한 공기와 함께 그 생생함이 더해진다.

아부심벨에서 아스완으로 돌아와 간단한 식사를 한 후 나일강으로 향했다. 나일강 위해 떠있는 펠루카들은 아스완을 도착했을 때부터 이미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었다. 황량한 모래땅 사이에 흐르는 나일강과 그 위에 떠있는 돛단배 정도 크기의 작은 펠루카는 정말 잘 어울리는 듯 하다. 물론 노를 젓는 사람이 있긴 하나 펠루카는 일반적으로 풍향에 따라 움직인다. 그렇게 때문에 사실 배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은 풍향에 맞춰 배의 방향을 조정하거나 돛을 움직이는 것이 주된 일이다. 강한 햇살이 살갗을 태우고, 누렇기까지 한 이집트 땅이 여행자들의 목을 더욱 타게 만들지만 천천히 떠다니는 펠루카의 모습은 바람을 읽을 수 있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작은 오아시스가 느껴지게 한다.

여자 세 명의 여행은 위험도 따르지만 여자들만 있기에 가능한 경험들도 많다. 펠루카를 타고 나일강 위를 유유히 떠있는 것은 정말이지 우리 셋에게는 잊을 수 없는 행복감을 가져다 줬다. 물론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했을 때의 그 특별함도 인정하지만, 또래 친구이면서 같이 그림을 그리는 동료로서의 우리 셋이 가져온 감동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셋이 나란히 누워 해질녘의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오후에 갔었던 아부심벨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면서 다시 한번 감탄했다. 그리고는 같은 펠루카를 탄 다른 나라 여행자들과 행복감을 나눠본다. 강가로 펼쳐지는 작은 마을 풍경에서 평화로움을 느껴본다. 지는 해의 붉은 빛은 메마른 흑빛의 땅을 풍요로운 붉은 빛으로 만들고, 강의 검은 빛을 금빛으로 승화시킨다. 물감을 섞어 만들 수 없는 자연색의 향연을 보면서 조용히 그저 바라볼 따름이다. 말이 필요없었다. 셋 다 매일같이 사용하는 붓과 물감으로는 감히 만들 수 없는 색들이었다.

펠루카를 타면 일반적으로 한 명의 가이드가 함께한다. 그는 배를 조정하고 때가 되면 식사를 준비해준다. 그리고 적당한 순간이 되면 배를 한 곳에 세워 여행자들이 간단한 산책을 하거나 주변을 둘러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들이 만들어 주는 음식은 주로 이집트 전통 음식으로 특별이 맛이 있거나, 색다른 맛은 아니지만 배 위에서 먹는다는 것이 그 음식들의 맛을 바꿔놓는 듯하다. 똑같은 빵도 아스완 내 음식점에서 먹은 것 보다 쫄깃쫄깃하고, 너무 강했었던 향료 냄새도 내 위장의 운동을 활발히 하고 침이 나오게 하는 향으로 바뀌게 된다. 모든 것들이 특별해지는 순간이다.

식사 후 산책을 할 때 쯤이면 해는 저물고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인다.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곳에 세워진 펠루카에서 내려 천천히 걸어본다. 그곳에서는 작은 새들의 움직임이나, 내 발자국 소리조차도 너무 선명하게 들리고 모든 소리들이 나만을 위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면서 생각은 깊어지고, 내 머리 속을 복잡하게 했던 잡생각들은 떨어져 나가게 된다. 오로지 한 생각에만 집중하게 되어 한동안 풀리지 않던 고민들의 해답도 찾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산책을 끝낸 후 펠루카로 돌아와 깊은 잠을 청해 본다. 찌는 듯했던 낮과는 달리 제법 쌀쌀하지만 물위에 가까이 누워있다는 생각이 자는 순간까지 나를 설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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