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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휴가를 내고 네덜란드에 다녀왔다. 시간이 많지는 않아 네덜란드에 있는 친구 집에서 4일정도 머물며 편안히 쉬다가 오기로 했다. 여행을 좋아해서 그런지 유럽권에 있는 나라들은 대부분 다녀온 듯 하지만, 그래도 갈 때마다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여행의 최고 매력인 것 같다. 같은 나라, 같은 도시를 가도 누구와 함께 하는 지, 혹은 무슨 목적의 여행인 지에 따라서도 다르고 하다못해 여행 당시 날씨가 어떤지에 따라 여행을 마친 후 남는 기억의 모습은 달라진다. 이런 것들이 사람들로 끊임없이 여행을 즐기게 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얼마 전에 7년 만에 스페인에 다시 찾은 것도 나에겐 스페인에 대한 또 다른 추억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 스페인이라는 곳의 숨겨진 아름다움까지 발견하였다. 내 기억 속 그 곳의 모습에서 다시 찾았을 때 발견한 것들이 더해지면서 여행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려지는 스페인의 기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추억에 새로운 기억을 덧붙이는 것이다.

많은 유럽의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정작 영국과 가까운 네덜란드는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원래 가기 쉬운 나라일수록 관심밖에 머물 게 되는 게 아닌 가 싶다. 네덜란드 같은 경우 언제나 짧은 시간만 주어진다면 금방이라도 다다를 수 있다는 생각도 있고, 여기 영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위험한 단정도 내려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새삼 알게 되었지만, 나라간의 거리에 따라 공통분모는 찾을 수 있으나 분명 어느 나라든 고유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땅이 척박하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다. 일단 나라 전체국토가 저지대인데 동부와 남단부에 구릉지가 있으며, 남동단 최고부가 322.5m에 불과하다. 또한 전국토의 13%가 해발고도 1m이하이고, 65%가 해면보다 낮을 뿐 아니라 최저부는 해면 아래 6.7m나 된다. 일부 뉴스에서는 현재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의해 50년 후에는 네덜란드 땅의 반 이상이 물에 잘길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데, 실제 해수면의 높이 조금씩 높아져 이에 대한 대응책을 찾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네덜란드를 낭만적으로 만드는 풍차도 사실 바다를 둑으로 막아 육지의 물을 퍼내기 위해 만든 현실대응책 중의 하나이다. 현실의 우려야 어떻든 간에 어느 나라보다 지혜로운 국민이니 세상사람들의 이 같은 우려도 그들만의 놀라운 해결책으로 극복해 나갈 것이라 믿는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나의 제일 친한 친구를 암스테르담에서 만나기로 했다. 여행에 대한 설레임도 있지만, 거의 일년 넘게 보지 못한 친구와 만난다는 생각에 이번 네덜란드 여행은 나를 한층 흥분되게 만들었다. 이 친구가 같이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꼭 다시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떠나자면 약속했었다. 결국 이집트 여행만큼 긴 시간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현실공간 밖의 여행지에서 만난다는 것은 우리를 다시 이집트 여행길에 오른 그때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다행히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는 친구인 Rai덕분에 숙소를 예약하거나 여행루트를 정확하게 짜야 하는 등, 여행에서 꼭 필요한 사전에 확인해야 할 것들에 대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한 후 Rai의 집에 짐을 풀어 놓고, 바로 도시구경에 나섰다. 런던과 달리 사람들이 대체로 조용하고, 차도 많지 않아서 그런지 한 나라의 수도에 왔다는 생각보다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는 작은 중소도시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폭이 좁은 골목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붙어 있는 가게들과, 도시 곳곳에 흐르는 운하 때문에 도시의 분위기는 더욱 운치 있다. 암스테르담 내에 많은 박물관과 갤러리가 있지만 내가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은 어릴 적 감동 깊게 읽었던 책 <안네 프랑크의 일기>의 주인공이 살았었던 집이었다. 읽었던 책의 내용을 되살리면서 그 곳을 둘러보니 유대인 탄압을 피해 2년간 숨어 지냈던 그녀의 순수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를 떠나기 전 알크마르(Alkmaar)라는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치즈 시장을 구경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치즈 시장이라고 하여 갖가지 치즈를 모아놓고 파는 큰 장을 의미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그곳에서 매 주 금요일 볼 수 있는 것은 전통방식의 도매거래 풍경의 재현이었다. 예상했던 것과는 달라 의외이긴 했으나, 장난 섞인 장사꾼들의 행동과 이전에 한번도 보지 못했던 많은 양의 치즈를 한 눈에 보는 것이 흥미 그 자체였다. 먼저 시장에서 치즈를 운반하는 사람들을 보면 빨간색, 초록색, 노란색, 파란색 등의 다양한 색의 모자를 쓰고 있다. 이것은 모자 색으로 팀을 나눠 치즈 운반과 무게 측정 등을 같이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두 명씩 짝을 지어 나룻배처럼 생긴 판을 어깨에 짊어지고 빠르게 뛰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꼭 찰리 채플린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같고, 급히 뛰어가면서 소리를 지르거나 장난을 치는 모습으로 사람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치즈 하나에 15kg나 되는 것을 여덟 개에서 열 개 가량을 나르니 운반이 힘도 힘이지만 기술 또한 필요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네덜란드어와 함께 영어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운반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시장이 진행되는 과정을 잘 이해할 수 있어 구경하는 것에 흥미를 더할 수 있었다. 시장 옆에서는 네덜란드 전통음식, 기념품, 치즈 등을 파는 좌판들과 함께 흥겨운 음악 연주자들이 들어서 있어 알크마르를 방문한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어 모든 것이 즐거워지게 한다.

여행을 진실로 즐겁게 하는 것은 이미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어렵사리 찾아가 그곳에서 뜻밖의 새로운 흥미거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알크마르의 전통 치즈시장은 세계 최고 치즈 애호가들의 나라인 네덜란드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좋은 장소인 것 같다. 무엇보다 다양한 치즈 맛을 경험하기 힘든 우리 같은 아시아인들에게는 치즈 맛의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고, 치즈 질의 좋고 나쁨을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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