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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9 03:53
세기를 거슬러 떠나보는 유로 건축 여행 20선- (4) 미스반데로에 생의 마지막 작품 독일 내셔널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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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를 거슬러 떠나보는 유로 건축 여행 20선 (4) 미스반데로에 생의 마지막 작품 독일 내셔널 갤러리 일반인에겐 바르셀로나 의자로 더 알려진 미스반데로에는 생을 마감하기 전 모국인 독일 베를린에 건축가로서의 마지막 자취를 남긴다. 한때 독일 바이마르의 디자인 학교, 바우하우스 교장까지 지냈던 그였지만 긴 전쟁과 경제적 불황으로 독일에선 더 이상 건축가로서의 희망이 사라지자 미국으로 건너가 시민권을 취득하고 1937년 시카고에 설계 사무실을 열었다. 당시 미스는 1932년 뉴욕 현대미술관 (MOMA) 에서의 건축전시로 미국 대중에게 이미 어느 정도 소개가 돼 있었다. 1930년대 접어 들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독일의 경제불안으로 그의 디자인은 단 하나도 실현되질 못 했는데 미국에 정착한 이래 철과 유리를 주 소재로 한 그의 작품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며 후에는 뉴욕 52가와 53가 사이 파크 에버뉴에 위치한 시그램 타워까지 설계하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독일이 아닌 먼 타국, 미국에서 건축가로서의 명성을 떨치던 미스에게 결국 느즈막하게 모국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온다. 베를린에 뉴 내셔널 갤러리를 설계하게 된 것이다. 60년대 독일은 베를린 장벽 주변의 광활한 땅을 개발해 문화 시설들을 집중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 중 하나가 미스에게 설계를 위임한 베를린 뉴 내셔널 갤러리였다. 당시만해도 갤러리하면 여러개의 방들로 오밀조밀하게 배열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새롭게 디자인 된 미스의 갤러리는 광대한 오픈 스페이스에 전면이 유리로 처리돼 멀리서 보면 수평으로 길게 얹혀진 두툼한 지붕면이 떠 있는 느낌이 든다. 또한 스틸빔들의 네트워크로 구성된 플랫 지붕은 단 8개의 크로스 평면형식의 기둥들이 떠 받들고 있고 갤러리의 각 코너에는 기둥을 설치하지 않아 볼륨이 꽤 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가볍게 보이도록 처리했다. 석재로 마감된 대좌에서 올라 앉아 있는 듯한 정 사각 평면의 상부 파빌리언은 면적이 대략 2천 5백 제곱미터로 철과 유리로 구성되어 있고 영구 전시를 하는 주 전시실은 거리보다 낮은 지하에 위치하고 있다.이 갤러리에서 빛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리벽면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은 검은색의 광택바닥면을 비추고 있고 지붕면에 설치된 긴줄의 LCD 스크린은 연속해서 추상적인 패턴을 연출해 내며 현대회화를 전시하는 갤러리로서의 입면을 그려내고 있다. 미스는 정 사각형의 기하학적 평면과 갤러리 전체에서 읽혀지는 단순함으로 방문객에게 평안한 느낌에서 작품을 감상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오랜 지병으로 완공식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1969년 베를린에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현대 미술관이 지어진 1년 후 그는 사망했다. 그의 몸은 화장되고 시카고 근처 그레이스랜드 묘지에 안치됐는데 그 위치를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의 이름이 새겨진 검은 화강석 슬라브뿐이다. “Less is More.” 그가 살아 생전 즐겨 쓰던 문구인데 이 말처럼 그는 정말 단순함을 사모했던 철저한 미니멀리스트이었다. 박치원 RIBA, ARB (영국 왕립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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