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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운학 목사 / on Jun 17, 2006 07:23
요즘은 컴퓨터의 편리함으로 인해 고급스럽고 다양한 모양의 필기 도구조차도 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신 정보통신(new media)이라 불리는 이 시대, 비약적으로 발달된 인터넷의 혜택으로 인터넷이 연결된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편집, 수정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종이, 붓, 먹, 벼루는 문방사우(文房四友)라 하여 특히 학문에 뜻을 둔 학자 곧 선비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참으로 소중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밖에 종이를 눌러 반듯하게 고정시켜주는 문진(文鎭)이 있으며, 물을 담아 벼루에 붓는 연적(硯滴)이 있었습니다. 연적은 이름도 모양도 다양합니다. 주전자 형태를 수주(水注), 주발이나 병의 형태를 수우(水盂), 배가 불룩 나온 두꺼비 형태를 섬여라 하고 수적(水滴), 연수(硯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오리, 원숭이, 거북이, 반달, 복숭아 등 매우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졌고, 재질은 구리, 돌, 옥으로 만들어지다가 그 뒤에 도자기로 만들어졌습니다. 보편적으로 쓰이는 연적은 도자기로 만들어져 뚜껑도 없이 윗면에 구멍만 두 개가 나 있습니다. 가운데에 난 구멍을 풍혈(風穴), 가장자리에 난 구멍을 수혈(水穴)이라 부릅니다. 풍혈은 공기가 드나드는 구멍이며 수혈은 물이 드나드는 구멍입니다. 연적에 물을 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연적을 물속에 집어넣으면 됩니다. 연적을 물속에 집어넣으면 수혈로 물이 들어가면서 풍혈을 통해 기포를 일으키며 공기를 뿜어냅니다. 제 아무리 연적을 물속에 집어넣어도 연적 속에 물을 담을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풍혈을 막았을 때입니다. 풍혈을 막으면 신기하게도 물이 들어가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연적은 반드시 두 개의 구멍이 모두 열려 있어야만 합니다. 마음은 또 하나의 연적입니다. 마음은 연적처럼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소망의 문이고, 하나는 절망의 문인데 두 개의 문이 동시에 열려 있으면 아무 문제가 안 됩니다. 절망스런 일을 만나도 소망의 문을 열면 그 절망스런 일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나 문제를 당하면 절망하고 낙담하는데, 그것은 한쪽으로만 마음을 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사해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해는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그 이유는 시간당 수 천 톤의 물이 요단강을 통해 흘러 들어가지만 단 한 방울의 물도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고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즉, 들어오는 입구만 있지, 나가는 입구는 없는 것입니다. 결국, 호수의 물은 뜨거운 태양에 의한 증발만을 계속한 덕분에 짜가운 소금의 바다가 되고 만 것이지요. 우리 마음이 연적처럼 마음이 양쪽이 열려 있느냐, 아니면 사해처럼 한쪽만 열려 있느냐는 매우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좁아진 마음을 넓히는 특이한 힘을 가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 절망 속에서 소망을 얻고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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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news-강운학 목사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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