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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남부 지방에 한 귀족이 아내와 외아들과 함께 살았다. 그는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외아들에게 모두 쏟았다. 그런데 아들은...
by 강운학 목사 / on Oct 25, 2006 04:10
미국의 남부 지방에 한 귀족이 아내와 외아들과 함께 살았다. 그는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외아들에게 모두 쏟았다. 그런데 아들은 방탕아여서 대학에 들어갔지만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다가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그는 아들을 다른 학교에 넣었는데 거기서도 아들은 못된 짓을 하다가 쫓겨났다. 다시 다른 학교에 넣었지만 마찬가지였다. 아들은 집으로 돌아온 후,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행패를 일삼았다. 이웃 사람들은, '만일 그 녀석이 내 아들이라면, 내쫓아 버리고 말겠다.'며 수근거렸다. 그러나 그는 이웃 사람들을 향하여,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나는 끝까지 아들을 선도할 것입니다. 당신들이 그렇게 말할 권리는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한번은 아들이 2,3일이 지나도 들어오지 않자 그는 마차를 타고 아들을 찾으러 나갔다. 그는 유치장에서 문을 나서고 있는 아들을 만났다. 그러나 아들은 그 아버지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고, 그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들은 걸어가면서 또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가 침을 닦자 이번에는 아들이 주먹으로 그의 뺨을 때려 이를 부러뜨렸다.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집으로 돌아왔다. 손이 떨려 말 고삐도 제대로 맬 수가 없었다. 그는 집 앞에 있는 작은 숲으로 들어가서,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나무를 붙들고 서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한참을 떨면서,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조금 진정이 되었을 때, 그는 집으로 가서 정문 현관에서 층계를 내려다 보고 섰다. 그의 눈은 독수리의 눈처럼 이글거리면서 도로를 응시하였다.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입을 꼭 다문 채. 얼마 후 그는 아들이 비틀거리면서 대문을 향하여 걸어오는 모습을 어둠 속에서 지켜보았다. 아들이 현관 마지막 층계에 오르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아들이 현관의 마지막 계단을 오르자 그는 아들의 멱살을 움켜쥐고, 힘껏 밀어버렸다. "이 망나니 자식, 두번 다신 이 집에 들어오지 마!" 그는 소리를 질렀다. 아들은 층계 밑으로 굴러 현관 밖으로 내동댕이쳐졌고, 48시간 동안 실신상태에 빠져 있다가 죽고 말았다. 위의 이야기는 실화인데, 참 신기하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성경에 나온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이야기 속에 나오는 탕자의 마지막은 행복으로 끝나는 것을 본다. 위의 이야기와의 차이는 단 한 가지 뉘우침이었다. 뉘우침은 모든 죄악과 불행의 분기점이다. 뉘우침이 없는 삶은 깊은 동굴 속으로 끊임없이 들어가는 것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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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news-강운학 목사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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