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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10)
     지난 호에서는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가입한 1973년까지, 영국의 유럽통합정책을 분석했다. 이번호에서는 가입이후 실시된 국민투표와 예산문제를 알아보자.  

              <가입이후 영국과 유럽공동체와의 관계>
1975년 3월 더블린 정상회담: 영국의 가입조건 재협상 합의
1975년 6월5일: 유럽공동체 잔류를 묻는 국민투표 실시, 67.2% 잔류 찬성.
1979년 5월: 보수당의 마가렛 대처 총리 취임. 영국예산문제 시작
1984년 6월: 영국 예산문제 해결

     지난해 5월 토니 블레어 총리는 유럽헌법안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8회 기고 참조)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유럽연합 각 회원국은 블레어 총리가 왜 국민투표라는 무리수를 두었는지 여러가지 분석을 했다. 당시의 설문조사를 보면 영국인의 2/3가 유럽헌법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랑스나 독일 등 대륙에 있는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영국 국민이 유럽헌법안을 거부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조심스레 논의했다. 그러나 이런 걱정거리는 갑자기 사라졌다. 지난 5월과 6월,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이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안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표현을 자제했지만 큰 근심거리를 덜었다. 유럽헌법안이 현재 형태로 존속할리가 없어, 영국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난 1973년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가입한후 2년이 지나, 가입잔류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즉 블레어가 헌법안을 부치겠다고 한 국민투표는 영국 역사에서 이미 치뤄진 바 있다. 당시 각 정당의 태도와 국민의 선택을 알아보자. 그리고 1979년 보수당의 마가렛 대처 총리가 취임한 후 영국과 다른 회원국간에 발생한 영국예산문제도 분석한다.
    
                   2/3가 유럽공동체 가입잔류 찬성
     1974년 2월 당시 노동당의 해롤드 윌슨 당수가 총리로 취임했다. 노동당은 유럽공동체 가입을 두고 반대파가 압도적이었다. 특히 당시 당원의 상당수를 구성하고 있던 노동조합의 반대가 거셌다. 유럽공동체를 자본가만을 이롭게 하는 도구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경제통합만을 우선, 무역증진만을 외칠뿐 공동체 차원의 사회정책 등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윌슨 총리는 유럽공동체 회원 문제가 당내 문제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위해 선거공약으로 공동체와 가입조건을 재협상하고 이 결과를 국민투표에 회부하겠다고 제시했다. 선임자였던 보수당의 에드워드 히쓰 총리가 공동체에 가입할 때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따라 1년에 정도 유럽공동체 각 회원국과 가입조건을 재협상했다. 재협상에서 핵심쟁점의 하나가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납부하는 예산문제.
     유엔 같은 국제기구의 예산은 각 회원국이 경제규모에 맞게 지불하는 분담금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EU의 예산은 흔히 ‘자체 예산(own resources)’이라고 부른다. 각 회원국이 지불하는 분담금 외에 다른 3가지 요소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국제기구 차원을 넘어 초국가기구(supranational  institution)로 발전하는 유럽연합의 단면이다.
      유럽공동체는 공동농업정책과 공동통상정책을 실시해 오고 있다. 이 정책에 따라 비회원국의 수입 농산물과 공산품에 대해 각 회원국이 동일한 관세를 메긴다. 이 관세가 유럽공동체 예산으로 충당된다. 공동정책을 실시해 발생하는 이익을 공동예산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또 각 회원국이 상품에 대해 부과하는 부가가치세의 1%를 예산으로 사용한다. 2005년 현재 EU 예산은 1천60억유로, 우리 돈으로 약 128조원에 달한다. 올 해 우리나라 일년 예산규모와 거의 비슷하다.
     영국은 가입협상에서 해마다 일정 규모의 예산을 유럽공동체에 납부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이 돈이 너무 많다며 이를 삭감해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결국, 무역적자를 겪고 있고 일인당 국민총생산이 85에 불과할 때 (평균을 100으로 했을 경우),  납부한 예산의 일정액수를 환불해준다는 약속을 다른 회원국으로부터 얻어냈다.
     당시 노동당 내각은 이 재협상결과를 16대 7로 찬성했다. 그러나 노동당 의원은 의회표결에서 2/3가 이 재협상결과를 거부했다. 당시 유럽통합를 적극 지지하던 보수당의 도움을 얻어, 이 재협상결과가 의회를 통과했다. 이어 1975년 6월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국민투표 과정을 보면 유럽공동체 문제가 각 정당간 혹은 정당내 얼마나 합의가 부족한 문제였나를 잘 알 수 있다. 집권 노동당과 당시 야당인 보수당간에 유럽공동체 잔류를 희망하는 의원들은 정당의 틀을 넘어 함께 잔류 지지 모임을 결성했다. 반대로 유럽공동체 탈퇴를 주장하는 노동당과 보수당 의원들은 이를 위한 별도의 조직을 구성, 활동했다. 유권자의 64.6%가 투표에 참여, 67.2%가 유럽공동체 잔류에 찬성했다. 32.8%는 유럽공동체 탈퇴를 주장했다. 당시 대다수의 언론도 영국의 유럽공동체 잔류를 찬성했다. 거의 2/3가 유럽공동체 잔류를 희망했다. 그러나 국민투표가 영국의 유럽통합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는 못했다. 노동당은 유럽통합에 대해 찬성파와 반대파로 여전히 분열돼 있었다. 보수당은 전반적으로 유럽통합을 지지했으나 이에 반대하는 골수 소수의원도 계속 활동했다.

               ‘내 돈 돌려줘’: 영국 예산문제
     1979년 5월 ‘철의 여인’이라고 불리는 마가렛 대처가 보수당의 총리로 취임했다. 영국 역사에서 여성이 총리가 된 것은 사상 처음이었다. 대처는 ‘영국병’을 고치겠다며 공공재정을 삭감하고 노동조합의 월권행위를 제약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공공재정을 삭감하는데 문제가 된 것이 또 다시 영국이 유럽공동체에 납부하는 예산이었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전임자 노동당 정부가 유럽공동체로부터 일정액의 예산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대처는 이 조항을 적극 활용했다. 우선 당시 영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9개 회원국 가운데 7위였다. 그런데 공동체에 납부하는 예산은 독일에 이어 두번째로 많았다. 나머지 7개국은 공동체에 납부한 예산액보다 공동체로부터 받는 돈이 더 많았다. 독일의 경우, 당시 경제대국이어 유럽공동체에 예산을 많이 지불해도 별로 문제가 없었으나 영국은 심각했다.
     영국은 최초로 산업혁명을 이룩해 농민의 수가 가장 적었다. 또 대영제국의 유산으로 많은 농산물과 공산품을 유럽공동체 회원국이 아닌 영연방에서 수입했다. 이러다보니 영국은 유럽공동체의 ‘자체 예산’ 규칙에 따라 많은 돈을 유럽공동체 예산으로 납부해야 했다. 반면 농민의 수가 적어 농업정책 지원 차원에서 되돌려 받는 돈은 무척 적었다. 당시 EU 예산의 70%가 전체 회원국 국민의 5%도 되지 않는 농민에 지원됐다(공동농업정책).
대처 총리는 “영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이 9개 회원국 가운데 7위인데도 불구하고 영국이 너무나 많은 돈을 유럽공동체에 지불하고 있다”며 이 문제의 시정을 요구했다. 그녀는 당시 유럽공동체 회원국 총리와 대통령이 모인 자리에서 ‘내 돈 돌려줘(I want my money back)’라는 말을 직설적으로 내뱉었다. 정상회담은 보통 유럽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큰 틀을 이야기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 시장 아주머니가 큰소리 치듯이 ‘내돈 돌려줘’라는 말을 한 마가렛 대처. 당시 다른 회원국은 그녀의 요구가 정당함을 인정했지만 대처의 그런 스타일을 아주 혐오했다.  
     이 문제는 5년간 지속된 논란 끝에 1984년 프랑스 파리의 교외 퐁텐블로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타결됐다. 유럽공동체는 영국이 공동체에 지불한 예산 가운데 3분의 2를 되돌려주기로 한 것. 그리고 영국이 원래 지불해야 하는 예산 가운데 일부를 특수한 사정을 감안해 되돌려준다는 의미에서 ‘영국예산환급금(British Rebate)’이라고 정했다. 이후 1980년대 말, 1990년대 말, EU 예산이 논의될 때마다 영국예산환급금의 삭감이나 폐지가 협상 테이블에 올랐으나 지금까지 이렇다 할 해결책을 찾지 못한 상태다. 즉 영국은 아직까지 예산환급금을 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5월1일부터 중.동부 유럽 10개국이 회원으로 신규 가입, 현재 유럽연합은 25개 회원국이다. 또 영국의 경제상황이 아주 좋아져 현재 1인당 국민총생산이 25개 회원국가운데 상위에 들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일부 예산을 돌려받고 있다. 다른 회원국들이 불평하는 것도 당연하다.
     다음 호에서는 영국 예산문제 해결이후 단일시장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대처 총리의 유럽통합정책을 분석한다. 또 후임자인 존 메이저 총리의 유럽통합정책도 아울러 알아본다.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유럽통합전공 박사과정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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