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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을 통해 본 유럽통합 (12)
     지난 호에서는 보수당의 마가렛 대처와 존 메이저 총리시기의 유럽통합정책을 분석했다. 대처는 유럽공동체 회원국간에 단일시장을 이루기 위한 단일유럽의정서에 합의했지만 단일화폐 등 다른 역동적인 조치에 적극 반대했다. 이어 후임자 존 메이저는 유럽문제를 두고 극도로 분열된 보수당을 이끌다가 1997년 총선에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에게 패배했다.

             <토니 블레어 총리와 유럽통합>
1997년 5월: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당수가 총리로 취임.
1998년 12월: 프랑스의 자크 쉬라크 대통령과 유럽연합군 결성에 합의 (생말로 선언).
2001년 6월: 재집권에 성공.
2003년 6월: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 단일화폐 유로가입을 위한 `5개의 경제조건’가운데 일부만 충족했다는 결과 발표.
2005년 5월: 3기 집권에 성공 (의회과반수는 2기때보다 1백석이 줄어든 67석).


     지난 1997년 불과 43살에 총리로 취임한 토니 블레어. 더구나 노동당이 1979년부터 장장 18년간 야당이라는 정치적 황무지에서 방황하다가 정권창출에 성공, 그의 승리는 더욱 빛났다. 이어 2기, 3기 집권에 성공, 토니 블레어에게는 ‘최초’라는 각 종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노동당 총리가운데 최초로 2번 임기 (8년)를 채운 당수. 3기 집권에 성공한 위대한 정치가… 그러나 이런 토니 블레어에게도 유럽정책은 골칫거리였다. 블레어는 초기에 단일화폐에 채택에 관심을 보였으나 이라크 침략전쟁 등 다른 외교정책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또 최근 하원에서 테러용의자를 혐의없이 90일간 구금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테러법안이 부결돼, 지도력에 큰 손상을 입었다. 일부 언론은 이제 조만간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 당수직을 승계하리라고 보도하기도 한다.


                       기대는 컸고…
     1997년 5월 토니 블레어가 하원 의석의 2/3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고 총리가 됐을 때 유럽연합 각 회원국의 기대는 컸다. 유럽통합정책을 두고 분열돼 적대적인 정책을 지속하던 보수당과 달리 노동당은 단일화폐에 채택에 관심을 보였다. 또 보수당이 서명을 거부한 유럽연합 차원의 사회정책 (최소 근로기준과 사회보장 등) 에도 가입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어 1998년 9월 독일에서 ‘새로운 중도’를 내세운 사회민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총리가 되면서 독일과의 관계도 많이 개선됐다.
     블레어 자신도 각종 유럽무대에서 유럽통합 정책에 ‘건설적인 관여’ (constructive engagement)를 기치로 내걸었다. 반대 일변도의 보수당 정책이 유럽무대에서 고립되고 별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또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가 영국의 유럽통합정책과 대립되기 보다, 상호보완적이라는 시각을 견지했다. 영국의 일부 정치엘리트는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유럽통합에 적극적일 필요가 없다는 견해가 팽배해 있다. 통합을 지속하고 있는 유럽이 군사와 외교분야에서 힘을 행사하면 미국과 갈등을 유발하게 되고, 그럴 경우 그만큼 영국이 이런 쪽에서 힘을 과시할 소지가 적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블레어는 유럽이 미국의 맹방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며 경제적.정치적으로 강력한 유럽이 미국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블레어의 이견 견해는 1998년 12월 프랑스의  생말로에서 열린 영국-프랑스 정상회담에서 잘 나타났다. 이 회담에서 두 나라는 6만명으로 구성된 유럽연합군 결성에 합의했다. 영국은 군사문제에 관한한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NATO)가 전담하는 문제라고 여겨왔다. 즉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에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이용, 다른 회원국과 비교, 더 나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생말로 선언’은 미국과의 합의하에 미국이 파견을 꺼려하는 세계의 분쟁지역에 영국과 프랑스군으로 결성된 군을 파견한다고 합의했다. 어디까지나 미국과의 합의를 전제로 했지만 영국은 이전에는 이런 시도도 해보지 않았다. 이 때문에 토니 블레어의 이런 적극적인 움직임은 다른 회원국의 지지를 받았다.
     유럽연합의 기존 15개 회원국 가운데 (2004년 5월 중.동부 유럽의 가입이전) 영국과 덴마크, 스웨덴은 단일화폐, 유로화에 가입하지 않았다. 블레어는 취임이후 경제적 조건이 맞는다면 국민투표를 실시, 단일화폐 채택여부를 국민에게 묻겠다고 선언했다. 블레어가 유럽통합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독일 등 다른 유로화 가입국은 토니 블레어의 취임이후 적어도 몇년 안에 영국이 단일화폐를 도입하리라고 예상했다.

        ‘5개의 경제조건’: 경제조건으로 포장된 정치적 결단
     그러나 유로화 도입여부와 관련, 토니 블레어는 자유롭지 못했다. 우선 그와 경쟁자이며 경제문제에 관한한 전권을 준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유로화 가입에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또 야당인 보수당은 이를 선거쟁점으로 삼아, 2001년 총선에서 이슈화했다. 자당내 반대와 보수당의 반대가 심한 상황에서 유로화 가입을 위한 더욱 엄격한 경제적 조건을 내세웠다. 즉 이전 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단일화폐를 채택하기 위해서는 이자율과 인플레이션율이 낮고 정부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의 3%를 넘어서는 안된다. 이런 가입조건이외에 영국 정부는 특수한 사정을 감안, 5개의 ‘경제조건’을 제시, 이를 충족하면 유로화에 가입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가입을 위한 엄격한 조건이 있는데 별도로 5개의 조건을 내걸은 이유는 그만큼 유로화 가입문제가 민감하다는 점, 따라서 가입을 되도록이면 늦추자는 의도이다.
     경제조건 자체도 애매모호하다. 영국과 유로 가입국 간의 경제가 지속적으로 수렴되는가, 유로 가입에 따른 경제변화에 충분히 대응할 유연성이 있는가, 유로 가입이 영국에 투자하려는 외국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금융서비스 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고용창출 효과가 있는가 등이다.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은 2003년 6월 하원에서 이런 조건 가운데 일부만 충족했기 때문에, 영국은 유로화 가입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고든 브라운은 2004년 3월 예산안을 발표할 때 그동안의 경제상황을 감안, 추가로 경제 테스트가 필요한지도 의회에서 밝히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2003년 가을에 유로 가입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 실시에 필요한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라크 침략전쟁 각종 사안에 밀려, 이 법안은 의회에 제출되지 않았다. 즉 영국의 유로화 가입은 노동당 정부내에서 이미 물건너 갔다.
     고든 브라운의 이런 발표를 두고 영국뿐만 아니라 독일 등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에서도 비판이 잇따랐다. 토니 블레어가 아주 중요한 정치적 결단을 경제적 조건으로 포장, 경쟁관계에 있는 고든 브라운에게 이 일을 일임했다는 것이다. 즉 총리가 이런 중차대한 문제에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함을 비판했다.고든 브

                  이라크 침략전쟁과 ‘특별한 관계’
     토니 블레어는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라크 침략전쟁에서 미국을 지지, 그동안 유럽연합 각 국으로부터 얻었던 점수를 잃었다. 물론 스페인과 포르투갈, 폴란드와 체코 등 많은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프랑스와 독일의 반미정책을 지지하지 않았다. 따라서 영국은 이라크 침략전쟁에 관한한 고립되지 않았다. 문제는 지난 1960년대 중반, 당시 영국의 유럽공동체 가입에 반대하던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제기한 질문의 답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즉 미국과 유럽이 갈등을 겪고 있을 때 영국은 누구 편을 들겠는가? 시대와 상황이 많이 변했지만 아직도 답은 분명하다.
     영국내에서도 프랑스의 반미정책을 지지한 사람들이 많다. 또 무력사용을 허가하는 유엔의 2차결의 없이 이라크를 침략하는 법안에 대해  하원에서 집권 노동당 의원이 1/3이 반대표를 던졌다. 왜 토니 블레어는 국제법을 무시하면서 그리고 아직까지도 논란인 미국의 이라크 침략정책을 지지했을까? 의료보험정책과 교육 등 국내정책에서도 중요한 우선순위 과제가 있는데? 이라크 상황은 아직도 불안하고 이곳에 주둔중인 8천명의 영국군이 언제 철수할지도 모른다. 정부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국방비 지출이 늘수록 복지지출은 줄 수밖에 없다.
     블레어 자신은 이라크 침략 결단이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서 내린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과연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가 무엇이길래?
     특히 이 문제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워싱턴 주재 영국대사를 역임, 토니 블레어와 조지 부시와의 돈독한 관계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크리스토퍼 마이어경의 회고록 출판을 계기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다음 호에서는 ‘특별한 관계’를 분석해보자.
안병억 (케임브리지대학교 유럽통합전공 박사과정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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