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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11 22:18

독일과 유럽통합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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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서는 1989-1990년 시기 헬무트 콜 총리의 통일과 유럽통합 정책을 분석했다. 독일 통일이 단순한 빈공간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유럽통합의 진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음을 상술했다.
       이번에는 1991년부터 1998년 9월 퇴임할 때 까지 콜의 유럽통합 정책을 분석한다. 독일의 통일 후유증과 함께 유럽연합 회원국 전반의 경기침체 등으로 이시기 유럽통합은 기존에 이룬 것을 공고화하는데 주력했다.

                <독일과 유럽통합 주요 연표: 1991—1998년까지>
           1991년 1월17일: 헬무트 콜, 통일 후 최초의 총리로 선출됨.
          1991년 12월: 마스트리히트 유럽정상회담에서 유럽연합조약 (일명 ‘마스
          트리히트 조약) 합의됨. 1992년 2월 서명된 후 1993년 11월 발효됨.
           1992년 9월18일: 영국 파운드화 환율조정메커니즘에서 탈퇴.
         1994년 11월15일: 콜 5선에 성공함.
         1996년 1월-1997년 6월: 암스테르담 조약 협상후 타결됨.
         1997년 4월3일: 다음해 총선에서 총리후보로 재출마하겠다고 밝힘.  
         1998년 9월27일: 총선에서 패배함 (독일 역사상 최초로 집권당 총리가
         선거에 패배, 물러남)  
        
      19세기 영국의 정치가 액튼 경 (Lord Acton)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절대적 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 (power tends to corrupt,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말은 어느정도 헬무트 콜 총리에게도 맞는다. 콜 총리가 너무 권력에 집착, 후보자를 키우지 못하다가 결국 총선에서 패배해 물러났다. 이어 비자금 스캔달이 터졌다. 20년 넘게 기민당 총재로 재직하면서 재계 유력자들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았다. 원래 선거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정치자금을 받으면 장부에 기록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콜은 이런 조항을 어겼다. 물론 콜은 정치헌금을 당을 관리하는데 썼다. 개인용도로 이런 돈을 지출하지는 않았지만 장장 16년간이나 총리를 역임, 많은 업적을 남긴 정치인이 수십년간 법범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에서 오점을 남겼다.
      통일을 이룬 후 콜의 유럽통합정책도 그리 순탄치 않았다. 정절기를 지난 사람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과 같았다고 할까.

1)        유럽연합조약과 환율위기
      전호에서 몇차례 설명했듯이 유럽연합조약 (‘마스트리히트조약’)은 단일화폐, 유로의 도입과 공동외교안보정책, 그리고 내무와 사법분야에서의 협력강화를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1979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한 유럽통화체제 (European Monetary System: EMS)는 독일 마르크화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즉 이 체제내 환율조정기구 (Exchange Rate Mechanism: ERM)에 가입한 유럽공동체 회원국은 자국 화폐 가치를 독일 마르크화를 기준으로 일정범위내 (플러스, 마이너스 2.25) 에서 안정시켰다. 따라서 기업들은 환율을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어 수출입 등 경영전략을 운영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문제는 독일 마르크화가 기축통화 역할을 하다보니 중앙은행, 분데스방크가 행사하는 통화정책을 다른 회원국들이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통화정책이라는 수단을 거의 빼앗겨버린셈이다. 따라서 프랑스를 주도로 다른 회원국들은 독일 마르크화가 독점적으로 행사하는 통화패권을 분산시키려 했다. 이를 위해서는 유럽중앙은행과 단일화폐가 필요했다. 이런 배경에서 단일화폐, 유로화가 출범했다.
      전호에서 설명했듯이 헬무트 콜 총리는 독일 통일이 유럽통합의 틀속에서 이루어짐을 강조했고 이를 프랑스에게 납득시켰다. 이에 대한 구체적 증거의 하나로 독일국력의 상징인 마르크화를 포기했다. 물론 설립될 유럽중앙은행이 분데스방크와 마찬가지로 독립적이며 물가안정을 최우선한다는 독일식 모델을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했다.
      독일 정부는 이런 독일식 모델을 밀어부치면서 공동외교안보정책을 강화하고 유럽의회의 권한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정치연합). 독일 마르크화를 포기하면서 정치분야에서의 통합도 이루어야 국내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나 영국 등 주요 회원국들은 국가주권의 핵심인 외교정책조차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을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유럽연합조약에서 공동외교안보정책은 여전히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규정되었다.
      순조롭게 보였던 유럽연합조약 비준은 그러나 덴마크라는 암초를 만났다. 1992년 5월말 덴마크 국민은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조약을 거부했다. 모든 회원국에서 비준 (국회의)되거나 국민투표를 통과해야 조약이 발효된다. 따라서 덴마크의 거부는 심각한 위기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92년 후반기 영국은 유럽이사회와 각료이사회의 순회의장국이 되었다.
      당시 여당인 보수당은 유럽연합조약의 통과를 두고 찬성과 반대로 양분됐다. 특히 유럽통합에 회의적이던 20여명의 보수당 의원들은 덴마크 국민이 조약을 거부한 후 이런 기회를 적극 이용했다. 온갖 수단을 동원해 유럽연합조약의 국회토론이나 비준을 거부했다. 당시 존 메이저 총리는 할 수 없이 이 조약의 국회통과를 덴마크 국민의 2차 국민투표와 연결시켰다.
      엎친데 덮친격이라고 9월18일 영국의 파운드화는 환투기 세력의 공격을 받고 환율조정기구에서 탈퇴했다. 영국은 1990년 10월에서야 환율조정기구에 가입했다. 독일통일이후 구동독지역의 경기붐으로 분데스방크는 인플레이션압력에 직면했다. 이를 제어하기 위해 불황속에서 이자율을 올리는 고육지책을 썼다. 환율조정기구에 가입한 다른 회원국들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심각한 경제위기속에서도 이자율을 인상해야만 했다. 영국 정부는 이자율을 올리거나 아니면 환율조정기구에서 파운드화와 마르크화의 환율을 조정해야만 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위해 환율조정기구에 가입한 존 메이저 총리는 이자율 인하를 거부했다. 또 파운드화뿐만 아니라 다른 회원국 화폐도 마르크화와 환율을 재조정해야 한다며 파운드화만의 환율재조정을 거부했다. 이를 놓칠세라 환투기 세력이 파운드화를 공격했다. 이 환율위기로 영국의 파운드화는 환율조정기구에서 탈퇴했다. 당시 보수당은 독일 정부가 위기에 처한 파운드화를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다며 독일을 집중 공격했다.
      이런 위기의 순간, 콜 총리와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적극 협력해 위기극복에 나섰다. 존 메이저 총리를 도와 1992년 12월 에딘버러 정상회담에서 예산관련 쟁점을 타결했다. 또 덴마크 정부가 유럽연합조약을 재차 국민투표에 회부하도록 일부 조항을 수정했다.
      우여 곡절을 거쳐 1993년 5월 덴마크 국민은 2번째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조약을 근소한 차이로 통과시켰다.


     2) 암스테르담 조약과 선거패배
      유럽연합조약은 비준후 5년이내에 공동외교안보정책과 내무.사법분야의 협력을 재검토한다는 보장을 두었다. 공동외교안보정책 관련 조항이 너무 미진하다고 느낀 일부 회원국들이 이를 개정하기 위한 수단으로 관련 조항을 넣었다.
      이를 위해 1995년 6월부터 6개월간  각 회원국 외무장관의 대표들, 유럽연합집행위원회 대표, 유럽의회 대표들이 모여 주요 안건에 대한 사전논의를 했다. 당시 모임은 숙고그룹 (Reflection Group) 이라고 불린다. 이 그룹은 몇차례의 논의를 통해 개정이 필요한 항목을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1997년 1월부터 조약개정을 위한 회원국 대표들의 정부간회의 (Intergovernmental Conference: IGC)가 열렸다.
      헬무트 콜은 1994년 11월 5선에 성공했다. 초대 총리 아데나워는 14년간 재직했다. 그러나 콜은 1982년부터 1988년 9월 물러나기까지 장장 1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영국의 마가렛 대처총리의 재직기간은 11년이다. 최장의 재임기간이라는 기록을 남겼지만 그의 마지막 총리재직은 여러가지 난관이 가로놓여 있었다.
      1997년 4월 헬무트 콜은 1998년 9월 총선에서 다시 총리후보로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기민당내에서는 콜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지만 콜이 너무 권력에 집착, 후계자를 키우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콜은 독일 통일을 이루었으니 유럽통합도 이루겠다며 총리후보의 변을 늘어놓았다.
      임기막판의 총리여서 권력누수 (레임덕) 현상이 두드러졌다. 암스테르담 조약에서 비자와 이민, 난민관련 정책에서 콜 정부는 이를 유럽차원에서 공동으로 다루자는 안을 지지했다. 그러나 에드문트 슈토이버 기사당 총재 겸 바이에른주 주지사 (기사당은 전후 독일 최대의 바이에른주를 1-2차례 제외하고 단독정부를 구성해 다스려옴) 등을 비롯한 다른 주 주지사들은 이민정책의 급속한 유럽화를 반대했다. 독일 헌법에서 주정부는 이민정책에 대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콜 정부로서는 동유럽 등에서 많은 이민자가 몰려오니까 이를 유럽차원에서 공동으로 다루면 훨씬 더 효율적이다. 그러나 주정부는 연방정부가 이민정책의 유럽화를 밀어부칠 경우 단일화폐 도입을 찬성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콜 총리는 주정부의 압력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또 1998년 4월 리오넬 조스펭 총재가 이끄는 사회당이 프랑스 의회선거에서 다수당이 되었다. 우파 자크 쉬라크 대통령은 조스펭 총재를 총리로 임명했다. 조스펭 총리는 단일화폐 가입국에 적용되는 안정성장조약이 너무 물가안정에만 치중, 고용을 등한시한다며 이를 수정하자고 요구했다. 전에 설명했듯이 독일은 마르크화의 패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안정성장조약을 강력하게 밀어부쳐, 통과시켰다. 그런데 고용촉진을 위해 조약을 수정할 경우 국내의 반발이 거셀것임이 분명했다. 결국 콜총리는 프랑스와의 관계를 위해 원래 안정조약 (stability pact)을 안정성장조약 (stability and growth pact)로 개명하는 정도의 양보를 했다. 이름만 바꾸었을 뿐 조약의 핵심내용은 변경되지 않았다.
      이어 1998년 9월 개최된 총선에서 헬무트 콜 총리는 야당 사민당 후보로 나선 게르하르트 슈뢰더에게 졌다. 현직 총리가 선거에서 패배해 물러나기는 헬무트 콜이 처음이었다. 전임자 헬무트 슈미트는 당시 야당이던 기민당/기사당과 연정파트너였던 자민당이 불신임 투표를 통과시켜 총리자리에서 물러났다.
      헬무트 콜이 총리로 재직한 16년간 유럽통합은 급물살을 탔다. 당시 유럽공동체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지속됐던 정체성을 극복하고 단일시장 완성에 합의했다. 또 불가능하게 보였던 단일화폐도 도입되었다. 이런 역사적인 결정에 헬무트 콜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하지만 너무 권력에 집착했다는 점, 그리고 퇴임 후 터진 비자금 스캔달은 그의 업적에 하나의 오점으로 남아있다.        
       다음호에서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유럽통합정책을 분석한다.
                  안병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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