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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저는 너무나 불행해요.” “......”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무관심과 새 엄마의 미움 속에서 눈물로 자랐어요.” “......”...
by 박옥수 목사 / on Jun 17, 2006 04:48
“목사님, 저는 너무나 불행해요.” “......”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무관심과 새 엄마의 미움 속에서 눈물로 자랐어요.” “......” “저는 그래서 성격이 비뚤어진 거예요.” 교회에 젊은 처녀 자매가 있었다. 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지워지지 않고 불안하고 무엇에 쫓기는 것처럼 근심 속에 있어서 개인 상담을 나누게 되었다. 어릴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을 했으며, 새 엄마 아래서 천대를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원망, 미움 그리고 사회에 대해서나 심지어 자신에게도 많은 불만을 갖고 있어 늘 고통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이야기를 했다.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나선 치르치르와 미치르. 그들이 다른 집에서 발견한 파랑새를 지기 집으로 가져왔을 때는 노랑 새로 변했던 것처럼, 같은 환경이지만 남의 일은 행복해 보이고, 자기 자신에게는 그러한 형편이 불행하게 느껴진다고. “생각해 봐라. 너는 새엄마 밑에서 자랐다. 물론 새엄마가 친 엄마만큼은 잘 할 수 없겠지. 그러나 너의 새엄마는 때로는 너를 미워하기도 했겠지만 너를 입히고 재우며 먹여서 아무 탈 없이 자라게 하지 않았느냐? 친 엄마에게 매 맞는 아이들은 없는 줄 아느냐? 너는 마음에 새엄마라는 생각 때문에 매사에 부정적으로만 생각한 거야.” “......” 어떤 사람에게 아무리 큰 행복이 와도 마음으로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그 행복은 행복이 될 수 없으며 반대로 아무리 큰 불행이 와도 그 불행을 마음에서 불행으로 느끼지 못하면 불행이 될 수 없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행복할 조건이 있지만 불행할 조건도 동시에 따른다. 우리 마음이 어느 쪽에 젖느냐에 따라서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는 법이다. 김윤희 자매, 그녀는 지금까지 자신에게서 불행한 조건만 찾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그 후 그녀는 마음을 바꿔 행복한 조건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신을 위해 수고하신 새엄마에게 대한 감사가 마음에서 일어났다. 아버지께도 그리고 예수님께도 감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속에 있는 불행을 쫓아내고 대신 행복으로 채워갔다. 피아노 의자에 앉아 찬송가를 펴놓고 건반을 두드리는 밝은 표정의 그녀를 볼 때마다 행복의 파랑새는 다른 데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임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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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박옥수목사의 연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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