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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인신문 / on Jun 19, 2008 19:58
전등은 에디슨이 최초로 발명했다. 에디슨은 자신의 발명품 중에서도 이 전구의 발명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전등이 들어온 것은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지 팔년이나 지난 뒤였는데, 전등불이 경복궁에 처음 켜졌다는 소식을 들은 에디슨은 무척이나 좋아하며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세상에, 동양의 신비한 왕궁에 내가 발명한 전등이 켜지다니... 정말 꿈만 같다.’ 경복궁 안이 환해지자 궁궐 근처의 담은 장안의 명물이 되었다. 밤이 되면 환해진 궁궐 안을 밖에서라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전등은 왕궁에서만 볼 수 있는 신기하고 귀한 물건이었던 것이다. 경복궁 담 너머로 환하게 비치는 전등 불빛을 보는 백성들은 그저 놀랍고 신기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1900년 4월 10일, 일반 백성들도 전등불을 보게 되었다. 종로 거리에 환한 가로등이 세워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로등을 보고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신문은 가로등이 처음 켜졌을 때의 광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밤마다 종로에 사람이 바다 같이 모여서 구경하는데 전차표 파는 장소를 보니 장안의 남자들이 아홉시가 지난 후에도 문이 메어질 정도로 ‘새문 밖에 갔다 오는 표를 주시오’, ‘홍릉 갔다 오는 표를 주시오’하며 다투어가며 표를 사가지고 일 없이 갔다 왔다 하니...” (제국신문 1900년 4월 13일자) 이 기사문만 보아도 전등불을 처음 본 당시 사람들의 흥분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 때에는 일반 가정에도 전등을 설치할 수가 있었지만 극히 어려웠다. 당시에 쌀 스무 가마 정도를 살 수 있는 돈이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등은 주로 궁궐이나 외국 공사관, 일본인 상점들이 모여 있는 곳에만 주로 설치됐다. 또 전기 사용료도 아주 비쌌기 때문에 일반 가정집에서 전등을 사용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어쨌든 전등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 풍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전등이 없을 때는 어두워지면 사람들은 밖으로 돌아다닐 엄두를 못 했다. 당시의 교통수단인 전차도 낮에만 달렸다. 하지만 전기불이 들어온 뒤부터 전차도 밤에 다니게 되었고, 깜깜한 밤도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이다. 위와 같이 새로운 물건이 들어오면 외형적으로 여러 가지의 변화가 찾아온다. 그런데 내면적으로는 물건보다 더 우리의 삶에 변화를 주는 것은 새 마음이다. 그 동안 갖고 있던 마음이나 생각이나 기준이 아닌, 다른 마음이 들어오면 진정한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 최고의 책인 성경은 이기적이고 교만한 우리 인간의 마음이 아닌 헌신적이고 겸손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개하고 그 마음을 얻어 새롭게 복된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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