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이 드문 아름다운 해변의 언덕에서 요즘의 서양인들이 어떤 만찬이나 결혼같은 특별한 행사 때나 차려 입는 화려한 드레스 의상을 입고 뭐가 그리도 재미 있는 듯 거리낌 없는 웃음소리를 내어 가며 호탕하게 마음껏 웃어대는, 더욱이 철없어 보이는 어린 소녀들도 아닌 성숙한 동양 여인들의 모습이 부러운 듯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짖고 지나 가던 행인들 중, 애완견과 산책을 하던 어느 영국 여인은 “참 보기 좋네요!” 하며 가던 길을 멈추고 인사를 해주었다.
그에 회원중의 한분이 “저, 개좀 잠깐 빌려 주시겠어요? 제가 개를 좋아하는데, 같이 사진을 찍고 싶어서요!” 라고 선뜩 요청을 하였고, 처음 만나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애완견을 빌려 주시는 그분은 마치 우리가 나누는 행복함 속에 당신도 담기고 싶은듯 기쁘게 닦아오셨다.
그 애완견도 주인을 닮아서인지, 낮설은 동양 여인의 팔에 안겨 같이 사진을 찍어주는것이 영광 스럽기라도 한듯 안아 주는 분의 가슴이 따스해서 인지, 멍멍 짖지도 않고 포근히 잘 적응해 주었다.
그러다가 동양인을 만나는 외국 사람들이 매번 그러듯, 이번에도 대화중에 '어느 나라 사람들 이세요?' 라는 질문이 나왔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디 한번 알아 맞추어 보실래요?” 라며 퀴즈 형식의 대화가 나눠지다가 결국에 가서는 우리가 한국사람이라고 하니 아주 반가와 하면서 자기도 한국에 여러번 가 보았다며 자랑스러워 하였는데 왜 한국사람이냐는 말이 선뜩 나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동네에서 한국사람을 만나 본적이 없어서 였을까?
아무튼 반갑다고 하며, 언제 갖었느냐고 하니, 몇년 전까지 한국으로 수출되는 상품을 실은 콘테이너를 운반하는 영국의 선박회사에 근무하면서 부산항에 여러번 가 보았는데… 하면서 말하기를 좀 어색해 하기에 “그런데요?” 하며 물어보니, 한국에서의 짧은 정박 기간 동안에 그분은, 매우 친절하지만 별로 좋지 않은 일을 하는 여자들과 시간을 보냈다고 하였다.
더욱 궁금해진 우리들은 “어떤 나쁜 일을 하는 여자들이요?” 하며 또 물어보니, 긴 기간 동안 바다에서 지내던 남자 동료들이 육지에 도착해서는 찾아 가는 곳이 있는데... 하며 선창가 아가씨들을 말하는 것 이었다.
어색한 주제를 돌리려고, "그럼, 한국음식은 먹어 봤어요?" 라고 물으니, "한국음식은 하나도 먹지 않고 빨리 선박으로 돌아와서 음식을 먹었지요!" 라고 하는 것이었다.
아니 어떻게 한국에 가서 한국음식을 하나도 먹지 않았느냐고 되 물으니 하는말이, "내가 그 음식에 어떤 고기가 들었는지 안심이 안돼서요, 행여나 개나 고양이 고기를 먹게 될까봐..." 라며 말꼬리를 줄인다.
"아이 참, 한국사람들은 고양이는 안 먹고, 먹는 개 고기는 특별히 사육한 개이지 애완견은 절대 아니랍니다." 라고 설명을 해줘도 그분의 안색이 별로였다, 어떻게 그런 말을 믿을 수 있느냐는 듯…
그러다가는 그 분은 "아, 이곳은 내가 오래 산 동네인데, 저기 있는 벤취는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를 기념하며 기증한 것이고요." 하며 우리가 앉아있는 벤취 바로 뒤에 있는 긴 의자를 가르키는 것이었다.
"어머머, 이 의자도 돌아가신 우리 시아버님의 기증품 인데요..." 하며 우리는 우연한 만남 속에 발견되는 역어진 듯한 인연에 신기해했다.
그 분을 만나기 조금 전 우리가 앉아 있는 벤취가 돌아가신 시아버지를 기념하며 기증한 의자라는 것에 대한 소개를 들은 회원들은 "정말, 이렇게 타인이 즐길 수 있도록 의자라도 하나 남길 수 있다는 것이 좋네!" 하며, 멀 수 가까울 수도 있지만 누구에게나 필연히 닦아올 그 어느 날이 오면 사랑하는 부모나 친지를 기념하기 위해 나도 이런 것을 해 드렸으면? 하는 듯 했었는데…
멀리 있는 묘소 보다는 가까운데 있는 이 의자는 언제라도 바닷가에 산책을 나갈때면 찾아가 쉬어가며 시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어 좋고, 종종 어떤 이들이 앉아 있는것을 보는 마음 또한 흐뭇하기 그지 없었는데, 이번에 회원들이 머무는 호텔의 발코니에서 가까이 내려다 보이는 그 벤취를 보며, 맑은 날 만원경을 쓰고 보면 저 바다 건너 비키니 입고 선탠하는 프랑스 여자들이 보인다며 농담하시던 시아버지를 생각해 보며 마음이 흐뭇했다.
그런데… 혹시 우리 시아버지와 그 영국 여인의 아버지하고 어떤 인연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박경희 비톤
아동교육 동화 작가
유로저널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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