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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1 03:07

삶의 미스테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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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미스테리 2


첫아기를 출산하는 딸을 도와주러 한국으로 가면서 혹시라도 모르니 어서 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조금 경제적인 비행기 표를 사고는 아부다비 공항에서 연결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세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가 랩톱을 꺼냈다. 

  한국에 가면 여러모로 바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생각나는 글 줄기들을 미리 써놓으면 필요할 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터이니… 사실 모슬렘 종교를 갖고 있는 중동 지역에는 처음인 나는 눈 부위만을 빼놓고 머리부터 발목까지 온 몸을 부르카라는 의상으로 감추고 있는 여인들의 조심스레 걷는 모습과 기다란 흰옷과 헤드스카프를 쓴 중동의 남성들이 위엄스러운 자태로 오가는 모습을 보며 내가 그들의 모슬렘 문화권에 들어왔음을 실감했고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하지만, 그래도 국제공항의 대기실에서는 외국 여성들의 자유로운 의상이 허용되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쎄… 모슬렘 문화의 상징적 의상인 부르카란, 나에게는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 느껴진다. 여성들의 지나친 노출의상에도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개인이 입고 싶은 선택을 빼앗긴 상태에서 허락된 옷, 더욱이 아름다움을 가꾸고 보여주고 싶은 여자들의 본능적인 욕망을, 보이는 눈 부위만 빼놓고 머리부터 발목까지 가리는 길다란 옷 속에 숨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여인들을 남성들의 권력아래 두고자 하는 폭행이자 억압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아들을 선호하던 나라에서 태어나 자라는 것을 불공평하다며 불만을 갖던 나였다. 왜 나는 부자나라에 태어나지 않고 하필이면 가난한 나라에 태어났고, 그중에서도 가난한 부모아래 태어나게 했느냐고 보이지 않는 신께 항의 했던 날들이 있었다.

누구는 어떠해서 어떤 부자나라에 태어나고 누구는 뭐 때문에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 고생을 하며 살아야 하느냐를 미스테리로 생각하고 크면서 훗날, 우리보다 훨씬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아프리카에서 살며 나처럼 자신의 삶을 슬퍼하며 살지도 모르는 배고픈 이들을 위해 희망을 심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드디어 꿈은 이루어진다고, 원하던 아프리카 대륙에 가서 살며 크고 작은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20100127085208003.jpg


아프리카 사람들이라고 다 못사는 것은 아니고 특히 옛날 대영제국의 주권아래 있던 나라중의 하나인 짐바브웨는 아프리카를 먹여 살리는 곡창지대 (breadbasket)라고 불릴 정도로 풍요롭게 잘 사는 나라였다. 영국에서 살 때는 문도 작아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정도의 자그마한 집들에 살던 영국인들이 그곳에서는 시내와 거리의 구성도 마음껏 크고 넓게 만들고 영국의 정원을 모방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조성하고, 꿈꾸던 커다란 정원과 수영장, 테니스 코트도 있는 이상형 집들을 지어 살고 있었다. 

내가 갔던 80년 초반의 짐바브웨는 백인통치의 로디지아에서 흑인주권으로 바뀐 뒤이라 흑인과 백인이 같이 일하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비교적 자연스런 나라였다. 그래도 도심지를 떠나 우리의 농장이 있는 곳과 같은 시외로 나가면 원주민들이 흙으로 만든 둥근 집 안에서 지펴지는 불로 음식을 만들고, 눈물이 날정도로 자욱한 매운 연기를 마시며 살고 있는 이들이 많았는데, 멀리서 질러오는 물을 머리에 이고, 아기는 등에 업고 갈라진 맨발로 뜨거운 땅도, 거친 풀길도 뾰족이 나와 있는 돌멩이들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 어쩌면 삶이란 이런 것이라는 듯 살고 있는 그 여인들이 안타까워 보였지만 그래도 그들에게는 삶에 대한 어떤 여유와 자유가 있어 우리 집에도 찾아와 서투른 영어와 그들 부족의 말인 쇼나어로 대화하는 한국여자와 음식도, 동내 꼬마들의 옷도 같이 만들어 주기도 하고 노래하고 춤도 추며 한껏 웃기도 했는데, 이곳 여인들에게는 왠지 그런 여유나 자유가 주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만약 내가 이런 곳에 태어났다면? 정말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가난이 어쩌면 나의 마음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어준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그래서 어려운 이웃을 보는 내 마음은 동정보다는 “당신들도 잘 살 수 있습니다!” 라는 가능성을 품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 곳을 지나가며 우리 손녀가 자랑스러운 한국에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감사하고, 중동이나 다른 모슬렘권에서 태어나 자라는 여자 아이들도 머지않은 날 여성의 인권과 자유를 진정으로 존중해주는 환경 속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어서 속히 오기를 소망해 본다.


kyunh-hee.jpg 

박경희 비톤
아동교육 동화 작가
유로저널 칼럼리스트
www.childrensbooks.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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