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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정담(fireside chat) 16. 새 시대의 문화코드


그날도 오늘 같았다. 햇볕은 따사로운 손길로 소녀의 볼을 어루만지고 산 넘고 강을 건너 온 봄바람은 햇살을 시기라도 하듯이 소녀의 치맛자락을 여미게 한다. 이름만 봄바람이지 아직도 녀석의 입김은 차갑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머니의 손을 잡고 종종 걸음으로 길을 간다. 머-언 일본 땅에서 얼굴도 한번 본 적이 없는 큰이모님이 보내주신 소녀의 머리보다 조금 큰 사각형 가방을 메고 가면서 가끔씩 짧은 팔을 뒤로 돌려 무언가를 확인하며 꼬부랑 길을 간다. 혹시 등에 메달은 코끼리표 책가방이 어디로 날아가지나 않았나 확인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가방은 집에 두고 내일부터 메고 가라는 할머니의 성화도 어린 손녀딸의 고집은 꺾지 못하였는지 소녀는 빈 가방에 짤각 거리는 양철 필통 하나를 넣고 나왔다. 이제 꼬부랑 길을 벗어나 신작로에 다달았다. 아직도 10리 길은 더 남았다.

1956년 3월초 그날은 필자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교라는 곳에 가는 날이었다. 국민학교 입학식이었으니까. 가슴에 핀으로 달아 놓은 하이얀 손수건을 팔락이며 이제 곧 학교가 가까운 시장골목으로 들어섰다. 아침부터 나무로 만든 지게라는 것을 바쳐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짐군 아저씨의 얼굴색이 유난히 시커멓게 보여서 소녀는 신기하게 바라보며 지나간다. 

또뽑기 장수, 지지미 장수 등이 줄지어 있고 학교가 바라다 보이는 읍내 변방의 시냇물을 가로지르는 다리 밑에는 거적떼기들을 즐비하게 쳐놓고 그 속에서 어린아이들이 책가방 대신 불에 그을린 시커먼 깡통이나 바가지를 들고 나온다. 소녀는 의아해서 “할머니 저 아이들은 일본에 이모가 없어요? 그리고 왜 학교는 갈 생각도 안해요?” 연속해서 질문만 던진다. 

“그 아이들은 에미,애비가 게으르고 무식해서 거지가 되었단다. 그러니 학교는커녕 밥도 못먹으니 동냥을 가는 모양이다. 그러니 너는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 알겠느냐”

그 때, 그 시절! 헐벗고 굶주렸던 그 절박했던 상황을 오늘의 기준으로는 표현하기조차 힘이 든다. 일본 식민통치에서 벗어나자 미국의 정치간섭과 잇달아 일어난 근 3년 동안이나 견디어야 되었던 우리끼리의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굶주림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렇게 하루 하루 입에 풀칠 하기도 어려운 시절을 우리는 지나왔다. 

국민들은 초근목피로 생명을 부지하고 심지어는 굶어 죽는 현상이 벌어지던 제 1.2공화국 시절, 정치를 맡은 자들은 부정부패를 일삼으니 참다 못해 일어난 학생들의 데모(4.19)에 시민들까지 합세를 하였다 갈아 엎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는 결론을 얻은 백성들까지 함께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서 그가 국민들의 생활을 보다 윤택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해 주리라는 기대감으로 꽉 차 있었으며 4.19 이후 약 10개월 동안 무려 2,000여건이 넘는 가두데모가 있었고 전국 곳곳에 노조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국민들의 기대는 상실 되었다. 기대와 실현 사이에는 너무도 먼 거리가 있었다. 준비되지 아니한 혁명은 곧 실패이다.

여하간, 오늘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마치 먼 옛날 동화 속의 이야기처럼 넘겨 버릴지도 모른다. 그 시절에 비하면 이제 우리도 정치,경제, 사회복지 등 다방면에 걸쳐서 눈부신(?) 발전을 해 왔다 1980년대 초중엽까지는 서울시 각 구청의 복지과장의 자리는 그 주인이 모두 여성들이었다. 온 국민이 땀 흘리며 거칠게 달려 온 산업화와 이념화의 상흔을 치유하고 따뜻한 사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복지문화는 이제 어느 정도 대중화 되었다. 따라서 복지문화는 그 성격상 어머니 문화 곧 여성문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어떤 분이 말하기를 “현대는 4F시대(여성성:Feminine,감성:feeding, 픽션:Fiction, 융합:Fusion)라고 하는 것을 들은적이 있다. 그렇다! 어머니는 여성이고 가정의 불화를 제거하고 화목을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 이제 절대빈곤에서 벗어난 우리시대의 불편하고 모순된 사회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스러움이 우리사회 곳곳에 씨를 뿌리고 꽃을 피워야겠다. 건강하고 공명정대한 미래문화를 이루고 파벌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미래사회 형성에는 남성들만의 힘으로는 부족한 여성성이 절실히 요구 된다. 마치 여러 자녀들간의 간식분배 싸움을 어머니가 개입하여 정당한 판결을 내림으로서 자녀들이 조용 해 지듯이 말이다. 

이와 같이 여성성(feminine)이 사회 각 분야에 연결됨으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감성(feeling)이다. 이 감성이라는 친구는 언뜻 보기에는 약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상당히 강하다. 이 감성이야말로 인간을 이념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인간중심 사회를 견인해 내는 데 기여한다. 도한 우리 주변에서 감성을 자극하는 다양한 매체가 있는데 그것은 스토리 텔링이다. 스토리텔링은 그 스토리의 사실보다도 상상력을 동원하는 픽션(Fiction)을 그 중심에 품고 있다. 이 스토리는 단순한 이야기만이 아니다. 노래하고 보여주고 다시 쓰기도 한다. 즉 스토리를 가공하는 기술자가 필요하다.

  단순한 스토리를 곡을 부쳐서 노래로 만든다거나 씨나리오로 각색하여 영화 또는 연극으로 보여준다거나 이 모든 것을 다 복합, 융합하여 뮤직컬이나 오폐라를 만든다거나 만들거나 하는 인물이 필요한 시대이다. 특히 융합, 복합(Fusion)학문으로 봉사할 창조적인 인물을 해당지역, 해당부서에서 적극 육성 지원하여야 된다.

이제 재영한인사회도 어느덧 반세기의 역사를 갖고 있다. 세계의 중심부에 살고 있는 한인으로서 이곳 영국을 비롯한 인근 유럽사회, 그리고 세계속에 한국 문화를 체계있게 소개하고 한국의 이미지를 새롭게 고양시키며 그 동안 경제발전과 스포츠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만큼 문화,예술 방면에 우리국가와 국민 특히 재영한인들의 뜻과 힘을 모아 민간 문화대사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조국의 이미지 개선을 유도해 나감으로 결국에는 간접적인 해외시장 확보에 일익을 담당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문화, 미술, 음악, 문학, 영상 등에 관심 있는 여러 인사들을 초빙하여 체계적 문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 한국문화를 소개,보급함을 주,목적으로 하여 적극적 문화활동을 시행하며 숨은 인재를 발굴하는 역할 또한 누군가가 해야 된다. 가능한한 위원회를 설치하여 기금조성에도 박차를 가해야 될 것이며 그 조성된 기금으로 각종 한국문화제품을 전시할 수 있는 종합전시장도 개설되어야 될 것 같다.

새시대의 문화코드를 형성하는데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치명적인 상처를 한두개 씩은 안고 치유할 수 없는 고통을 부여잡고 있는 현대인들을 부드러운 자태로 포옹하는 어머니상이 동시대인들의 네트웍을 통하여 감성을 불러내고 그 감성을 적시는 아름답고 다이나믹한 스토리가 만발하여 기술자들의 픽션화 작업이 이루어져서 모든 이념과 체제가 여성의 품속에서 잠드는 어린아이의 평화스러운 모습처럼 우리 대한민국 그리고 재영한인사회가 용서와 관용과 이해 그리고 화합으로 서로 소통하며 융합하여 평화와 행복을 생산하는 새 시대를 열어가는 미래창조사회를 도래시키는 그런 문화코드를 만드는데 우리 모두의 힘을 모아야 될 것 같다.


김레이첼.jpg


김 혜 성

사회복지법인 한국청소년봉사회 전 대표이사

한국유아교육 연합회 교수

국제 청년문화원 상임이사 (International Youngmen's Cultural Centre)

유로저널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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