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
||||||||||||||||||||||||||||||||||||||||||||||||||||||||||||||||||||||||||||||||||||||||||||||||||||||||||||||||||||||||||||||||
|
||||||||||||||||||||||||||||||||||||||||||||||||||||||||||||||||||||||||||||||||||||||||||||||||||||||||||||||||||||||||||||||||
|
2017.08.13 23:24
"진정한 해방을 위한 준비"
조회 수 2203 추천 수 0 댓글 0
"진정한 해방을 위한 준비" 내가 존경하던 분 중의 한분이신 고,함석헌 선생님의 저서 "뜻으로 본 한국역사" 기록하신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역사상 큰 전쟁이 100번을 넘었고 560여 차례{고대까지 합치면 931차례)의 외침이 있었다고 되어 있다. 평균 3-4년에 한번씩 외부의 침략을 당한 우리 선조들의 삶이 어떠했을지는 상상하고도 남는다. 역사의 주제 중에서 우선순위가 되어야 할 주제는 역시 "통일"이다. 지금도 남북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서로 도전과 응전이 한반도에서 계속되고 있다. 우리 민족의 본거지에서 언제까지나 분단의 족쇄에 얽메어 있어야 하는가? 어떤 측면에서 진단하자면 한반도의 역사는 전쟁과 가난으로 점철된 눈물과 고난의 역사라고 볼 수도 있다. 해방 후 70여년 동안 한국의 현대사는 기적과 역전의 드라마 같은 연속이었다. 일제 통치하에서 선조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싸워온 역사를 "저항의 역사"라고 이름한다면 분단시 대를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은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앞당겨야 할 소명을 가진 "통일 역사"의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짐을 언제까지 짊어지고만 가야할까? 하루 속히 분단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남북이 하나되는 새역사를 이루어서 남북이 힘을 합쳐서 강대한 한반도를 만들어 세계 속에 내어 놓을 수 있는 나라, 지구상의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떤 나라도 다시는 한반도를 침략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강력한 우리들의 조국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할 책임이 오늘을 사는 그대들과 나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고대에 고조선이 멸망하고 흩어진 우리민족들이 다시 고구려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까지 그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으며 때론 굶주림과 한나라의 학대를 겪으며 인내한 세월은 얼마였으며 그 참혹한 삶은 또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아니다! 그리 멀리 갈 것도 없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동북아시아에서 패권을 장악했던 일본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힘겨루기를 하던 중국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마침내(1910년)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았다. 그동안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등의 반식민지 상태에 있던 우리나라(조선)는 무능한 왕실과 당쟁을 일삼던 부패한 관료체제 하에서 국력은 약해질대로 약해져 있었으며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일본세력에 굴복당한 조선의 지배관료체제를 구성했던 기득권 세력 속에 내면화 되었던 명나라와 청나라에 대한 사대주의가 친일사대주의로 둔갑했다.
이 완용, 송병준 등을 선두로 하여 한일합방을 추진하고 약 700여명의 인사들이 친일했던 것이다. 그들 친일파들은 정계, 재계, 문화, 교육, 언론, 경찰, 관리, 예술, 종교, 체육 등 각계의 기득권 세력으로 등장했으며 그 후손들은 오늘날까지도 선조 덕에 각계각층의 기득권 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들 친일적 기득권 세력은 당시 일제가 식민지화 된 한국인 가운데서 중급 내지 고급관료둘울 양성하기 위해서 세운 경성제국대학교(서울대학교)에 공부하게 했다. 물론 최고급 관리의 자리들은 일본인이 차지했었다. 이 경성제국대학교의 일본인 교수들과 친일적 한국인 교수들은 한국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을 시키는 일외에 친일적 사고와 의식을 심어주었었다. 그 결과 경성제국대학교의 후신인 서울대학교 출신들 일부에서는 해방 70여년이 된 지금까지도 친일적 사고와 행태에 젖어 있어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으며 이 대학교가 "일본식민지 고급관료양성소"였다는 오명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직전까지도 한국의 행정부의 고급관료들과 국회의 정치인들 그리고 사법부의 판검사의 자리들은 이 대학교 출신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체로 보수 내지 수구적이고 권위적이며 위계적 행태를 보이며 배타적이고 가부장적이다. 특히 한국에서 대기업을 경영하는 이들 가운데 대다수가 이 대학교 출신이며 그들은 권위적이고 배타적이어서 기업경영에서 무한 경쟁을 벌린다 그들은 중소기업들을 협력대상으로 대하지 않고 그들 위에 군림하고 그들의 물건 값을 후려치는 소위 갑질의 원조가 되었다. 또한 그들은 상생이나 공동체적 의식의 결여로 노동자들을 기업의 동반자로 보지 않고 생산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적대시하고 파괴하려고 한다. 그런까닭으로 삼성 같은 기업은 처음부터 노조 없는 기업으로서 국민과 전세계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 기득권층으로 등장한 서울대학교 출신들은 각 분야에서 최고위지위들을 누리면서 학연과 지연 그리고 혼인(맥)으로 서로 결합되어 자신들과 후손들을 기득권에 진입시키며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을 현대판 성골집단화 하여 자기들끼리만 혼인하여 그 특권을 자손만대에까지 지속시키려고 한다. 예를 들면 대재벌의 딸과 고급관료의 아들을 혼인시켜 일반인들은 그 성골집단에 진입하는 것을 근본으로부터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아직 내가 30세 시절 우리 상담실에 젊은 두 남여가 찾아왔었다. 청년은 한국내 모재벌의 둘째왕자(?)님이시고 여성은 지방출신으로 평범한 가정의 자녀로서 홀로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꽤 큼직한 기업의 비서실에 일하는 참 얌전한 사람이었는데 두사람이 서로 사랑하였으나 시댁의 극심한 반대로 결혼하지 못하고 여성은 헤어질것을 결심하였으나 이 왕자님의 집요한 구애로 두사람은 자그마한 아파드를 구해서 4년정도를 살아왔으며 이제 3살난 딸아이가 있었다. 왕자님께서는 이제 아이까지 있으니 부모님이 허락하리라 믿었는데 예상은 빗나가고 헤어질 것을 요구받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 남의 아이들을 이미 3명을 키우고 있었던지라 그들의 아이를 당분간 키우겠노라고 허락을 하고 그 예쁜 아이는 우리집에서 이틀밤을 지내고 있었는데 삼일째 되는 날 아주 잘 정선된 외모에 차가우리만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지닌 60대 초반의 할머니 한분이 내 사무실을 찾아와서 하시는 말씀이 자신이 아무개의 친할머니 되는데 자신의 아들을 그 촌스러운 사람들에게 사위로 줄 수가 없어서 애 엄마는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주며 그당시만 해도 2억을 넘는 아파트도 팔아서 주고 했으니 이젠 이 어린애만 유럽의 어느나라로 입양을 보낸다고 하셨다. 나는 이 비정한 할머니에게 그렇다면 어차피 입양보내려면 제가 입양하겠습니다 라고 했더니 한마디로 거절이다 이유는 자기 아들과 아이의 에미와 김교수님(필자) 모두가 모르는 곳으로 보내어야 자기 아들과 가문의 장래에 누가되지 않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지금쯤 그아이도 30세가 넘었을 텐데 가끔은 유난히도 큰 눈을 가졌던 그 아이의 모습이 아른 거린다. 이토록 비정한 것이 한국의 재벌가의 인심이며 그들이 친일파의 후손들이란 점이 중요하다. 삼성도 이 완용의 후손들이다. 위의 사진은 잘 아는대로 독립투사 안 중근 의사의 손이다. 위에서 밝힌 친일파들이 일본에 빌붙어서 망국적인 행태를 부리며 동족을 살해하고 일본인의 꼭두각시 놀이를 하며 배를 불리고 있을 때 한편에서는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가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력을 다하여 투쟁하고 있었으며 많은 독립투사들이 목숨을 내어 놓고 국내와 만주벌판 등지에서 일제에 저항하며 죽어갔다. 그들의 피의 댓가로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다. 수 많은 애국지사와 열사들의 순절과 활동으로 우리의 광복을 위한 준비가 형성되어 마침내 잃어버린 빛을 되찾은 날이 광복절이다. 우리는 이날을 기하여 다시한번 내나라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1945년 제2차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은 그 기득권을 상실하고 우리는 소위 해방이라는 이름으로 일제 36년간의 사슬에서는 풀려났다. 그것은 무척 다행한 일이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이겻은 완전한 광복 또는 해방은 아니라고 본다. 2차대전에서 승리한 쏘련과 미국이 우리를 남북으로 땅가르기를 해놓고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우리의 주권을 일본에서 미국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사대주의의 DNA를 타고난 탓일까? 아직도 한국의 기득권 세력가들 중에는 친일적 감정을 갖고 있는 무리가 있는가하면 일부는 1945년 이래로 친일에서 친미파로 옮겨 살고 있는자들이 있으니 한심한 일이 아닌가? 분단의 한쪽인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해마다 이맘때면 여러가지 광복절 기념행사들을 기획하고 실행하지만 일부 국민들이 별 반가운 반응을 보이지 않음은 70여년이란 긴 분단의 시대를 살아온 우리 민족에게 진정한 해방과 주권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문 재인 대통령이하 정부의 각부처와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뭉쳐서 우리의 삶의 문제들(정치, 경제, 사회, 문화, 자주국방 등등)은 우리 스스로 해결하며 진정한 해방(광복)을 찾아서 정말 기쁘게 해방의 잔치를 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될 것 같다. 유로저널 탈럼니스트 목사 전 한국 청소년 교육연합회 대표 London College of Technical, Lecturer(Social Work) Society of Social Worker's East London(Chairman)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