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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8 19:07
세 번째 이야기 - 윌리엄 워즈워드를 찾아서
조회 수 5443 추천 수 5 댓글 0
영희씨, 한 번 만나주세요! 연애편지를 적던 학창시절엔, 한 두 편의 시를 기억해내지 못하면 서점에 가서 시집을 사야 했다. 서투른 영어라도 구사해야 여학생이 관심을 보일 것이라 판단하고 수선화가 그려진 작은 시집을 발견한다. 영국의 호수지방에서 태어났고 계관시인이라고 설명된 한 시인의 시집을 산다. 편지지라고 변변치 않던 그 시절은 어쩔 수 없이 공책 뒷장을 찢어서 편지지를 대신하곤 하였지만 새 펜촉에 잘 퍼지지 않는 빠이롯트 잉크를 사용하여 한자 한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 한때엔 그리도 찬란한 빛으로서 이제는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돌이킬 수 없는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생략)” 안녕하세요? 강영권입니다. 저는 윌리엄 워즈워드의 시를 참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를 적어 보냅니다. 저는 늘 영희씨를 사모하여 잠도 못 이루고 있답니다. 토요일 저녁7시에 맛있어 빵집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워즈워드에 목말라 정착한 영국 워즈워드의 시의 첫구절 를 이용한 이 편지는 영희 뿐만아니고 대부분의 여학생들에게 맛있어 빵집과 앙꼬 빵집, 우리 빵집으로 나타나게 만드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빵을 시켜놓고 서로 말도 못한채 않아 있던 그 시절이 그립고 아득하게 그립던 그 시간은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이 되었지만 이제는 워즈워드가 나를 영국 빵집에 불렀는지 그가 만든 잘 구워진 토스트를 먹으며 런던 언저리 뉴몰던에 살고 있는 것은 연애편지를 쓰던 학창시절부터 예견된 일이였던가! 워즈워드 싯귀가 적힌 편지를 전달하고 막 도망치던 그 시절이 그리웠던지 , 구름처럼 외로이 헤메이다가 떼지어 활짝 펴있는 수선화가 그리웠던지(수선화중에서), 아니면 남 모르게 살았고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는 루시 (그애는 인적없는 곳에 살았다 중에서) 가 누구였나 궁금하였던지 필자는 영국에 연수를 오게 되었고 그만 사직서를 덜컥 제출하고 말았다. 빵집의 영희는 사직서제출을 이해하지 못하였으나 영국에 도착하고 난 후 몇 일 안되었는데 워즈워드가 태어나고 살았다는 컴브리아 지역으로 차를 내모는 내모습을 보고 더욱 의아해 했으리라. 워즈워드를 찾아가자 옥스퍼드를 지나 버밍햄을 지날 때 쯤은 벌써 2시간 30분 동안을 빠른 속력으로 달리고 있었지만 목적지 까지는 아직 반도 오지 못하였다고 차분히 말해주는 아내가 그 빵집의 그 여학생이였던가? 켄달을 지나 윈드미어로 가는 도중 나는 아득하게펼쳐지는 호수와 아름다운 산들을 바라보고 넋을 잃고 말았다. 앰블사이드를 지나 워즈워드의 도브코타지가 있는 그라스미어에 도착할 때 즈음은 워즈워드의 싯귀가 산 꼭대기서부터 굴러 굴러 차창 밖으로 나와 함께 달리는 듯 하였고 그라스미어 호수에 반사되어 깨지는 햇빛조각이 눈동자 속으로 눈부시게 쏟아 들어왔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누나 어렸을 적에도 그러했고 어른인 지금도 그러하고 나이가 들어도 그러하리라 아니면 죽어도 좋으리!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내 생활이 자연을 경애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이어지기를!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중에서 ) 워즈워드의 체취에 흠뻑 취하여 그의 시를 하나하나씩 머릿속에 그리면서 산과 호수가 아름답게 얽혀있는 자연에 대한 그의 믿음과 열렬한 신념이 얼마나 강했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 그렇치 않다면 죽어도 좋다고 단언하는 부분에서는 그 믿음이 생애 전반에 걸쳐서 변함없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간구함을 들여다 볼 수 있었고 일상에 더러워진 내 영혼을 자연의 세제로 깨끗이 세척할 수 있었다. 영국낭만주의 시의 대부라고 할수 있는 워즈워드는 사람들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보잘 것 없고 포착되지 않는 사물에 에 놀랍게도 천성적으로 민감한 눈과 귀를 가지고 태어난 듯하다. 그는 하찮은 것에 왕관을 씌워 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한들거리는 바람 한 모금, 비에 젖은 작은 꽃들, 밤새 흐르는 시내물, 이끼낀 반쯤묻힌 돌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주고 기뻐하며 삶을 즐겼는지도 모른다. 워즈워드의 도브코타지 필자는 간단하게 윌리엄 워즈워드의 생애와 그가 즐겨 머물렀던 도브 코타지에 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 워즈워드는 1770년 4월17일에 lake district의 cockermouth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아름다운 시들은 이 지방의 호수들과 산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켐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였지만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1789년에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이 일어나고 1790년에 프랑스와 스위스를 여행하게 된다. 이때 발롱 이라는 프랑스 처녀와 사귀게 되어 케로라인이라는 딸을 낳기도 하지만 그가 영국에서 보내진 정보원이라는 사실은 그가 영국정부로부터 얼마간의 돈을 받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1795년 그의 작품세계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시인 클리지를 만나고 형편이 조금 나아지자 워즈워드는 그의 여동생 도로시와 도셋에 정착하게 된다. 1798년에서부터 99년까지 여동생 도로시와 독일에서 살게되고 수수께끼 같은 “그애는 인적없는 곳에 살았다.”라는 시를 쓰게 된다. 시 종반부에 나오는 루시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루시는 워즈워드가 사랑한 자기의 친 여동생이라는 사실은 참 에니그마틱한 일이 아닐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독일에서 돌아와 워즈워드는 호수지방의 그라스미어 지역의 도브 코타지에서 살게되는 (1799-1808)데 이때 메리 허치슨과 1802년 32살의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게된다. 그의 아름다운 시는 대부분 이때 만들어 졌다 한다. 1813년 그라스미어를 떠나 앰블사이드의 라이달 마운트에서 살고 1850년 4월23일 산보를 하다 감기에 들은 것이 악화되어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도브코타지가 있는 그라스미어는 워즈워드와 그시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그가 다니던 교회며, 시를 적던 곳 , 또한 그가 살고 묻힌 곳이 있는 곳이다. 찬란한 초원의 빛과 꽃의 영광이 되돌아 올 수 없다 하여도 슬퍼하지 않고 뒤에 남은 것에서 힘을 찾으려는 워즈워드는 자연의 신봉자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삶에 더욱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그라스미어 한 숙소에서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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