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친퀘테레의 고요한 바다와 그라빠,
전날 밤 가슴을 졸이며 절벽 위에 텐트를 쳤다.
2012년 3월 16일(모험 25일), 살짝 흐린 아침 하늘 아래 일어났다. 어제 혼자 낑낑대며 마나롤라 기차역을 건너 나온 후 어렵지 않게 텐트 칠 곳(좌표 44.108038,9.726135)을 찾았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 멋진 곳이다. 처음으로 이렇게 멋진 곳에 텐트를 쳤다. 주변에 차가 다니는 길은 없고 해안 절벽의 보행자 길에서 살짝 떨어져 나온 작은 평평한 공간을 갖은 작은 절벽이다.
이 절벽 위 평지로 가는 정상적인 길은 없기 때문에 이 근사한 곳에서 하룻밤 자기 위해 자전거를 멀리 세워놓고 몇 번에 거쳐 짐을 옮겨왔다. 멀리서 비쳐주는 약한 가로등 불 빛에 절벽 아래로 떨어지랴 조심스레 텐트를 쳤고 날은 그믐에 가까웠기 때문에 달빛 없이 별빛을 즐기며 역시 또 밥 지어 먹었다. 바로 이 맛이 캠핑 여행의 맛이다.
절벽 위로 오르는 정상적인 길은 없다.
그다지 높지 않은 절벽언덕에 자리 잡은 마나롤라
마나롤라 앞 바다는 천연 수영장이다.
여기 마나롤라는 마을 앞 바닷물이 자연 방파제나 다름없는 바위로 둘러 쌓여 있기 때문에 좋은 천연 수영장이 형성되어 있다. 아직 3월의 찬 물. 친퀘테레에 다시 오기도 쉽지 않을 텐데, 이 깨끗한 친퀘테레 물에 몸 한 번 담그고 수영 한 번 해보기로 확실히 마음을 먹고 모든 짐을 싫은 자전거를 암벽 위 마을에 세워 놓고 물가로 내려왔다.
수건도 제대로 없고 샤워할 곳도 없는데, 큰 결정이었다. 물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두 사내가 물가 근처 작은 보트 위에서 무언가 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다가가 이 곳에서 수영해도 되냐고 물어보며 대화를 시도 했다. 이곳에 사는 크리스티안과 안드레아는 영어를 거의 못했다.
단어 하나하나 간신히 주고 받으며 대화 아닌 대화를 힘들게 이어나갔다. 그들의 결론은 수영 해도 되는데 자기네 보트 같이 타지 않겠냐고 제안이었고 난 당연 흔쾌히 찬성했다.
말도 안 통하는 두 사내와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있다.
꽤 높은 절벽에 자리잡은 코르닐리아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를 향해 나갔다. 먼 바다의 수면과 밀접한 작은 보트 위에서 그것도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두 사내와 말이다. 살짝 불안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이내 흔들 거리는 보트 위에서 사진을 같이 찍으며 그 순간을 즐겼다. 두 번째 마을인 베르나짜로 향했다.
황폐해진 베르나짜의 항구에 작은 보트를 정박하고 베르나짜에서 유일하게 영업하는 가게인 한 바(bar. 술, 커피, 샌드위치 등을 판다.)에 들렀다. 안드레아가 그라빠(grappa)를 탄 에스프레소 커피를 시키길래 따라 같은 것을 시켜 마셨다. 그라빠라는 술도 이때 처음 알게 되었고 에스프레소에 술을 타 마시는 것도 처음이었는데 맛이 상당히 괜찮았다.
그라빠를 탄 에스프레소가 꽤나 맛있다.
그라빠라는 이탈리아의 증류주로 프랑스 코냑과 약간 비슷하다. 코냑은 포도 브랜디(grape brandy)로서 와인을 증류하여 만든 술이고 그라빠는 번역하자면 찌꺼기 브랜디(pomace brandy)로서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즙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껍질, 씨, 과육, 줄기)를 발효하고 증류하여 만든 술이다.
단 코냑은 증류 완료 후 색과 향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오크통 내에서 오랜 숙성을 거쳐 누런 색과 향을 갖게 된 후 병에 담겨지지만 그라빠는 증류 완료 후에도 이미 맛과 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숙성을 하지 않고 바로 병에 담겨 마실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보통의 그라빠는 꼬냑과 다르게 무색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숙성시킨 그라빠가 점점 보편해지고 있고 따라서 색깔도 갖게 되고 있다. 그라빠라는 코냑, 샴페인, 파르미쟈노-레쟈노 치즈처럼 법으로 그 이름이 보호되어 이탈리아와 스위스의 이탈리아 파트에서 생산되어야만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베르나짜의 한 절벽
베르나짜의 중앙 광장과 항구가 쓰레기 더미에 덮여 있다.
몬테로소 알 마레의 피해 모습
몬테로소 알 마레와 베르나짜는 곳곳이 복구 중이다.
안드레아와 크리스티안이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난 베르나짜를 다시 천천히 둘러보았다. 베르나짜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마을을 복구하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마을 구석구석 모두 산사태가 휩쓸고 지나간 듯 하였고 항구 근처의 커다란 광장은 파괴된 건물 잔해, 폐차, 각종 쓰레기 등 산사태와 함께 쓸려온 모든 것들이 거대한 쓰레기장처럼 쌓여 있었다.
베르나짜 만큼은 아니지만 첫 번째 마을인 몬테로소 알 마레도 마을 일부가 상당히 파괴되어 있었다. 한 골목의 경우 모든 일 층 건물이 파괴되어 모두 다 복구 공사 중이었고 심지어 건물 하나 전체가 사라져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다르게 세, 네, 다섯 번째 마을인 코르닐리아, 마나롤라, 리오마죠레는 복구가 다 된 것인지, 피해가 작았던 것인지 모두 온전해 보였다.
친퀘테레는 2011년 작년 10월 호우에 의한 홍수와 산사태로 인해 상당히 파괴되었던 것이다. 밀라노에서 친퀘테레가 통째로 사라졌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그 피해는 실로 심각했지만 이것이 전체 마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은 다행이다.
호수 같은 바다 위에 우리 말고 또 다른 작은 보트가 낚시를 하고 있다.
한참이 지나고 해가 조금 기울어져갈 무렵 우린 다시 보트를 타고 호수같이 잔잔한 바닷물을 가르며 육지로부터 주-욱 멀어져 나갔다. 멀리 또 작은 보트가 하나 보일 뿐 아무도 없었다. 이내 우리는 장난기에 낄낄거리며 미끼를 낚시 갈고리에 채우고 낚시를 시작했다.
노을이 지는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서 작은 보트에 의지하여 수면 가까이 앉아 낚싯줄을 통해 바다와 나를 연결하였다. 보이지 않는 심연의 바다 속으로 보다 손을 내민 것이다. 노인과 바다의 헤밍웨이도 대자연의 바다와 고요한 결합을 경험 후 글을 썼을까. 하지만 청새치나 상어는 나타나지 않았다.
해가 거의 질 때까지 낚시를 즐겼다.
해가 거의 져갈 무렵 낚시를 마치고 우리의 본거지 마나롤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보트 모터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몇 차례 시도 후 이 둘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눈다. 나는 말이 안 통하니 정확히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기름이 없는 건지 어디 고장이 난 건지 차근차근 물어보아도 대화가 힘들었다.
그동안 내 걱정은 점점 커져갔다. 육지까지 손으로 노를 저어 가야 하는 것인가. 이제 해가 지고 날이 컴컴하다. 역시 달이 없기 때문에 저 멀리 보이는 육지의 가로등 말고는 이 대양에는 뚜렷한 불빛 한 줄기 없다. 그러길 30분이 지나자 드디어 모터에 시동이 걸렸고 모두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뭍으로 보트를 달렸다.
바다 위에서 한 참을 표류하다 결국 밤이 되어 마나롤라로 돌아왔다.
자전거로 돌아와 노트북과 충전기가 담긴 비닐봉지가 자전거 핸들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낮에 수영하러 내려가기 전에 세워 놓은 자전거 옆의 카페 같은 작은 식당에 충전을 부탁했던 것인데 가게는 이미 문닫은 것이다. 다행이 잃어버린 물건은 전혀 없었다.
산사태로 폐쇄된 다른 보행자 길과 달리 여기부터 마지막 마을인 리오마죠레까지의 보행자 길은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바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여 한 밤중에 도착하였다. 리오마죠레는 상당히 가파른 산 언덕에 형성된 마을이라 딱히 텐트 칠 만한 여유공간을 찾기가 힘들었다.
주택가 도로의 사유지 영역이 표시된 주차 공간에 방해 없이 캠핑하기 위해 전날 전광석화와 같이 텐트를 쳤다.
결국 동네 구석 주택가의 도로 옆에 사유지 표시가 된 주차 공간(좌표 44.103038,9.736411)에 왔다. 아직 한 번도 대놓고 공개적으로, 그것도 사유지에 텐트를 쳐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다소 걱정이 되었다. 누군가 보면 나가라고 요구하거나 경찰에 신고할 가능성이 다분했지만 그래도 시도해보기로 했다.
다만 만약 텐트 치는 동안에 누군가 보면 십중팔구 다른 데다가 텐트 치라고 말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초고속으로 텐트 치고 그 안에 숨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텐트를 거의 다 설치하고 있는데 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장 작업하던 손을 멈추고 모든 자질구레한 짐을 들고 텐트 안으로 뛰어 들어가다시피 했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가만히 기다리는데 차가 오더니 바로 텐트 옆에서 멈췄다.
텐트와 차의 거리는 오로지 3미터, 차는 시동을 끄지 않은 채 긴장스러운 엔진 소리를 꾸준히 발산했다. 움직이는 그림자가 텐트 밖에 비칠까 미동 없이 숨을 죽이며 정세를 살폈다. 만약 누가 와서 노크를 하면 아무 대답 없이 무작정 자는 척 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아마도 저 차 쪽도 고민하는 듯싶다. 이걸 과연 쫓아내야 할까 말까. 결국 관대한 이탈리아인을 찬양하는 것으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겼다. 얼마 후 차는 다시 움직여 가버렸고 텐트 마무리 작업을 마치고 곧장 잠에 들었다.
리오마죠레 우체국에서 이탈리아용과 유럽용, 전세계용 우표를 구입하였다.
중앙 좌측에 보이는 기념품 가게 주인이 순간 발광하여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려 하였다.
다음날 우체국에 들려 우표를 사고 엽서를 사기 위해 기념품 가게에 들렸다. 다른 모든 건물이 그렇듯 경사진 언덕길에 있는 가게 입구 옆에 힘들게 자전거를 기대 세우고 입구 밖에 있는 엽서를 살폈다. 대충 보아하니 쓸만한 것 같아 어떤 남자와 대화 중인 가게 주인 남자한테 가격을 물어본 후 신중히 엽서를 골랐다. 다섯 장 정도 고른 것 같다. 엽서를 가지고 가게 안 계산대로 가져갔다.
계산대에서 총 얼마냐고 묻는 동시에 자전거 가방 안에 돈이 있는 걸 깨닫고 다시 자전거를 향해 밖으로 등을 돌려 나가는데 갑자기 가게 주인이 “안 팔아!”란다. 뭐지?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지? 동전을 꺼내며 “자 여기 동전 있어.”라고 말하는 순간 내게 다가와 내 손에 든 엽서를 뺏어 들며 “안 팔아! 꺼져!”라고 말한다. 인사불성이었다. 난 알겠다며 나가겠다고 말하고 동전을 다시 필통 안에 넣고 자전거 가방 주머니를 채우려고 하는데 왜 아직도 안 가냐며 이 남자는 입구 옆에 기대어진 자전거를 강제로 잡아 넘어뜨리려고 시도 하였다. 난 당연히 힘으로 자전거를 붙들어 잡아 막았고 남자는 그러더니 주먹을 치켜 들더니 치려는 시늉을 하며 고함을 질렀다. 이건 무슨 얼토당토아니한 순간인가.
지난번 뱀파이어의 습격 때와 마찬가지로 전혀 위축 들어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며, 게다가 이렇게 모욕을 당하는 순간에는 절대 물러설 수 없기에 나 또한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며 무례함을 일갈하였다. 그러더니 이 남자는 다시 계산대로 향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전거의 방향을 틀고 있는데 남자는 계산대 안에서 몽둥이를 꺼내 들며 내게 욕을 퍼부었다. 이미 길거리 사람들은 이 상황을 관찰했고, 그들은 시비를 가릴 수 있었다. 더 이상 이 더러운 똥을 꾸짖을 필요가 있으랴, 구경난 듯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소 한 번 보내 주고 가게를 떠났다.
리오마죠레의 항구
이제 친퀘테레도 거의 끝나간다. 다시 자전거를 달려야 한다.
리오마죠레 봄 내음이 싱그럽다.
3월 중순 봄이다.
리오마죠레의 바닷가 쪽 풍경
리오마죠레의 항구에 어부가 노상방뇨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