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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령의 자전거 모험
2012.10.04 01:03

11. 피렌체의 또 다른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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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피렌체의 또 다른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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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두오모 성당. 많은 관광객들이 돔 위에 올라가 있다.

참고로 키아라는 여성 이름이다. 그는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 로렌조와 젊은 세입자 가이아(역시 여성 이름)와 함께 살고 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향 내 속에 보이는 작은 불상과 여러 동양적 물건들이 보였다. 키아라는 자화상 및 여러 그림을 그리는 등 예술을 즐기는 무용 강사이다. 커다란 빈 방 하나를 받아 짐을 풀고 채식주의자인 키아라를 위해 지난번 피사에서 만든 비슷한 요리를 만들어 같이 저녁 식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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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아라와 로렌조

그녀가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는 간단했다. 동물이, 물고기가, 문어가 너무나도 아름답기 때문에 먹는 걸 상상할 수도 없던 것이다. 내가 육식을 한다 해도 존중한다면서 그녀는 바닷물 속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문어의 아름다움을 생생히 소개하며 자신은 육식을 할 수 없음을 피력했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문어가 바닷물 속에서 유영하는 걸 찾아 봐봐. 얼마나 아름다운지 깜짝 놀라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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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가게에서 커피를 구해 마시고 있는 피렌체의 집시들

자신이 일했던 다소 원시적인 농장에서 보다 자유롭게 자라고 “삶”을 누렸던 가축의 고기는 먹었지만 오로지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살만 찌우고, 그 직후에 도축을 당하는 동물의 불쌍한 운명에 대한 인간의 잔혹한 이기심에 저항하기 위해 보통 채식을 한다는 피사에서 만났던 네덜란드인 나디나와 그리고 그런 보편적 채식주의자와 비교해, 키아라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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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폰테베키오 다리 위의 작은 공연

자신이 하는 일, 했던 일 또는 관심 사항에 관련해 사람들은 현상을 관찰하고 이해한다. 춤을 추는 예술가 키아라는 동물의 예술적 아름다움에 보다 집중을 한 것 같다. 나는 어떨까. 내가 바로 그 살만 찌워지기 위해 작은 닭장에 갇혀 오로지 주입식 사료만 먹었던 닭과 비슷하다. 

과학고에 입학하여 인격이 보다 굳게 형성되어가고 성인이 되어가는 유년 시절에 인적 없는 산골의 작은 학교에서 2년 동안 기숙사에 주거하며 사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과 등지고 주입식 지식만 꾸역꾸역 먹으며 사육되었다. 수학, 과학의 지식은 열심히 쌓았지만 감정을 다루는 일은 남들 보다 덜했던 게 분명하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야채 및 고기 반찬을 먹고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는 이런 단순한 논리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그동안 다소 감정을 잊어버린 단순한 사람이 된 것인가? 살짝 마른듯한 감정을 촉촉히 적셔줄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필요하다. 여행 도중 구원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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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앞 중심 거리

하루는 키아라와 아들 로렌조를 위해 아껴두고 아껴뒀던 비상식량 신라면을 끓여줬다. 우리 입맛에도 매운 신라면을 어린 로렌조가 특히나 잘 먹었다. 평소 입맛이 별로 없어 보였는데 매운 라면이 입맛을 돋운 모양이다. 

채식으로 식욕 및 영양을 채우는 관점에서 본다면 야채 음식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은 쉬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서구 문화에서 채식으로 식욕 및 영양을 충족시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로렌조도 제대로 식욕을 자극하지 못하는 혹은 맛을 못 냈던 단순 야채 먹을 거리에 다소 질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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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오모 옆에서 삼각대도 팔아본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다양한 종류의 버섯과 야채를 사용하였고 버섯과 야채가 주인 나물 반찬이나 국, 전골 등 다양한 음식을 발달 시켰다. 

채식 메뉴가 구비된 식당도 제대로 없고 채식주의에 대한 인식도 부족한 만큼 우리 사회에서 채식은 아직 불편하지만, 식물성 식품을 개발한 우리의 요리는 분명 채식주의자들을 만족시켜줄 커다란 해결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좋은 식단을 서구에 소개하고 싶은데 어떤 좋은 방법이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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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채식주의도 우리가 한번쯤 헤아려볼 문제이다. 채식은 동물 복지 및 개인 건강 차원에서도 권유되고 있지만 지구 온난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인류의 육식을 위한 축산업에서 가축들이 호흡과 방귀 등으로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와 축산업 관련 부가 결과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축산업의 악영향이 의외로 대단하고 채식주의의 영향력을 깨달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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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강과 폰테베키오 다리

그런데 신라면이 채식 음식은 아니었다. 키아라의 집에서 짐을 꾸려 떠나 나올 때 신라면 두 봉을 선물로 남겨놓고 나왔는데 나중에 불현듯 생각이나 라면봉지 뒷면을 살펴보니 육수를 위해 육류성분이 들어가 있었다. 아차 싶었다. 

이메일로 키아라에게 사실을 설명하고 사과했는데 키아라는 자신의 채식주의는 강박적이지 않으며 만약 육류음식이 남아 버리게 되면 차라리 자기가 먹는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날 위안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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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노트에 무언가 적고 있는 소피

키아라의 집에 머물면서 하루는 소피를 다시 만났다. 같이 점심을 요리해 먹고 지난번에 맥주를 마시며 피렌체의 밤을 즐겼던 광장에 나가 이번엔 피렌체의 따스한 햇볕의 낮을 즐겼다. 

지난 밤에 같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던 사람들의 무리 중 중심이 되어 기타 치던 남자는 여전히 같은 곳에 있었다. 몇몇 사람들과 광장 옆 교회 벽에 기대 앉아 역시 낭만을 즐기는 듯 했다. 다만 그때 밤처럼 노래를 부르진 않는다. 다소 쉬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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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같이 노래 불렀던 기타 치는 사나이

이미 피렌체에서 여섯 밤을 보냈다. 하지만 날 역시나 재워주겠다고 하는 카우치서핑 호스트가 또 있었으니 이것이 피렌체의 마지막 인연으로 간주한 채 키아라의 집을 떠나 새로운 호스트의 집으로 이동했다. 그들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을 실현하고 있는 젊은 커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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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자 쓰던 방에서 나디아와 마르코와 함께

나디아는 아시아 피가 반이 섞인 혼혈 몰도바인이고 마르코는 이탈리아인이다. 이들은 4년전 여름에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에서 열렸던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활동하는 청년(Youth in Action)”이라는 청년 프로그램에서 만났다. 

이 프로그램에서 10일간 5개국의 20여명 청년들이 모여 그 작은 마을 주민들을 위한 연극을 준비하고 공연했다. 그들은 다시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의 한 청년 프로그램에 한 달 후에 같이 참가하였고 그곳에서 그들의 연인 관계는 시작되었다. 

당시 나디아는 봉사활동을 위해 체코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청년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는 2주에 한 번씩 편도 17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나디아가 이탈리아로 마르코를 찾아가거나 마르코가 체코로 나디아를 찾아가거나 혹은 중간에 만나 일 년간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져왔다.

그 후 나디아는 체코에서 봉사활동을 끝내고 몰도바로 돌아갔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두세 달짜리의 오페어(au pair)일을 마르코가 사는 피렌체 근처에서 운 좋게 찾아 거리적으로 서로가 가까이 지내기도 하였지만, 그렇지 않고 나디아가 몰도바에 머무는 기간에는 마르코가 가끔 항공편으로 나디아를 찾아가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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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심장을 관통하는 아르노강과 그 위를 지나는 폰테베키오 다리, 웅장한 두오모 성당과 베키오 궁전

나디아는 서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이미 몰도바에서 학부를 졸업한 상태였지만 그동안 관심 있었던 교육학으로 피렌체의 대학에 새로운 학사를 지원하기로 결심하여 각종 난관 끝에 결국 대학 입학 허가와 학생 비자를 받아냈다. 

덕분에 현재 나디아는 피렌체 대학에서 교육학을 공부 중이고 마르코는 체육관에서 강사로 일을 하며 둘은 낭만이 숨쉬는 피렌체의 작은 아파트에 함께 미래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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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노강에서 사람들이 카누를 즐긴다

우리가 만난 첫날 저녁 같이 음식을 해먹으면서 이 둘의 숨막히도록 가슴 벅찬 이야기를 듣는 동안 대단하다라는 말만 수 차례 되풀이했다. 사람에게 정열을 주고 운명을 바꾸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단어를 빌려 표현했던 지난날 나의 인연들은 과연 이러한 정열을 품었던 것이었을까. 

풋내기적 감성을 반성하며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해보지만 현재 주어진 것은 내가 사랑할 자전거뿐,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 진다는 말을 진실한 인연을 간절히 바란다고 억지로 만들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 들여서는 안 된다. 성숙과 순수를 함께 잘 가꾸고 간직하자. 

둘째 날 저녁은 삼겹살, 양파, 마늘, 버섯, 고추장, 올리브유로 내가 “코리안 바비큐”를 선보였고 일부로 약간 남긴 고기와 함께 밥까지 섞어 볶는 완결 코스 요리도 빠뜨리지 않았다. 다행이도 이들은 맛있게 먹어줬지만 물론 나 또한 오랜만에 한국의 맛을 배불리 느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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