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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6.11.07 19:06
가을날의 행복 (11월 2주)
조회 수 2309 추천 수 9 댓글 0
요즈음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제법 쌀쌀하고 차갑기가 그지없다. 기온이 낮아도 햇빛이 비치는 게 기온이 조금 높으며 추적추적 비가 오는 것보다야 한결 낫지만, 어떤 때는 발등까지 시립도록 차가운 날임을 피부로 실감한다. 도서관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한자리에 서서 책을 읽으며 있던 어느날 아침, 발등은 계속 시려워지고 시계를 보니 여전히 15분정도는 더 기다려야 되고, 그래서 이런저런 궁리를 했다. 커피점에 잠시 잠깐 앉아 있으려고 들어가기도 그렇고 어디를 가야 좋을까? 도서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식물원(Botanic Garden)이 있었다. 그래 바로 거기야. 깊어가는 가을날이 아니면 언제 발밑에 소복이 쌓여있는 낙엽 밟히는 사각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어볼 수 있으랴? 굳이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시를 읊조릴 필요도 없이 그냥 내가 그곳에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을. 게다가 그곳 한켠에 있는 식물원에 들어가면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와서 제각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다양한 화초들을 볼 수 있는 온실도 있다. 그 온실에 들어가면 또 얼마나 공기가 훈훈하고 따뜻한가 말이다. 그야말로 꿩먹고 알먹고 일석이조가 따로 없을 것같았다. 보무도 당당하게 식물원으로 가서 곧장 온실로 직행하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거기도 문 여는 시간이 도서관과 똑같은 오전 10시였다. 이번에는 온실앞에 있는 햇빛이 잘 드는 벤취에 앉아서 문을 여는 시간까지 책을 읽기로 했다. 그늘진 도서관앞보다는 그래도 햇빛이 좀 있는 온실앞이 한결 더 나았다. 벤취에 앉아 잠시 책에서 눈을 떼고 앞을 바라보니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르고 여름의 짙푸른 나무들은 노란색, 빨간색, 갈색으로 울긋불긋한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내가 만일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면 저 아름답고 청명한 하늘과 초록빛 풀들과 노랗다못해 황금빛 물결을 이루어 술렁거리고있는 나뭇잎들로 단장하고있는 저 멋진 나무들을 하얀 종이위에 그려낼텐데…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을 두고 누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했을까? 내 독서기록장을 보니 지난 10월에 가장 책을 적게 읽었다. 보통 한달 평균 10권은 거뜬히 읽는데 지난 10월에는 겨우 2권으로 끝이었다. 가을에 읽다가 만 책들이, 그래서 날씨 추워지면 마저 다 읽어야 할 책들이 식탁 한켠에 제법 쌓여있다. 책을 거꾸로 들고 읽은 것도 아니었는데, 굳이 변명하자면 사방이 시시때때로 고운 색깔로 변해가는 나무들과 풀, 갖가지 어여쁜 꽃들, 또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듯 눈이 부시게 푸르른 가을 하늘이 평소 책벌레인 나를 독서보다는 자연으로 더 가까이 가도록 부추겼다고 할 수 밖에는 없다. 준비를 끝낸 직원이 온실문을 열고 나더러 들어와도 된다고 해서 나는 제일 처음으로 온실에 들어간 입장객이 되었다. 과연 내 예상대로 온실안의 따뜻하고 훈훈한 공기가 쌀쌀한 찬 공기에 얼어붙을 듯했던 내 발등 뿐만아니라 온 몸을 녹여주는 듯 부드럽게 다가왔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저마다의 아름다움과 귀여움과 고상함을 지니고 있는 갖가지의 예쁜 식물들, 화초들 그리고 우뚝우뚝 서있는 아름드리 멋진 나무들, 인공연못이긴 하지만 그 연못에 떠 있는 커다란 쟁반같은 잎들. 저 쟁반같은 잎위에 밤이 되면 그 연못에 살고있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올라와서 자기네들끼리 향연을 즐기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온실 구경을 다 마치고 공원길을 따라 돌아나오면서 세상의 부자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건강하고 튼튼한 다리와, 꽃과 나무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초목의 싱그러운 내음과 화초의 은근한 향을 맡을 수 있는 코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일상에 묻혀 바쁜 우리들, 햇살 좋은 가을날 한번쯤 행복해볼 일이다. 나뭇잎들이 다 떨어져 앙상한 가지들만 남기 전에 한번쯤 동네에서 가까운 공원을 찾아 우리가 살아있음에 그래서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느낄 수 있음에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것들에 대한 감사를 한번쯤 되새기는 것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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