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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7.09.11 22:36
한 수 더 높은 아이(8월4주)
조회 수 1914 추천 수 0 댓글 0
우리집의 막내가 꽃다운 스물세살이 되었을 때 제앞의 똥차들(?!)을 다 제치고 팡파레를 울리며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 바로 엊그제같기만 한데 벌써 10년이 훨씬 더 지난 옛일이 되어버렸다. 그 막내가 첫딸을 낳았을 때 우리 제부는 늘상 입버릇삼아 아직 말도 트이지않은 자기 딸더러, “아무개야, 너는 큰이모 닮아서 공부 잘하고, 작은 이모 닮아서 마음씨 착하고, 네 엄마 닮아서 예쁘게 크거라.” 라고 말하곤 했다. 우리는 그때 그것이 그냥 다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어쨌든 모든 게 다 칭찬이니까 말이다. 우리 집 세딸들의 특징을 이처럼 똑 부러지게 알아채다니…-인줄만 알았는데, 우리 조카아이가 중학생인 지금 제 아빠의 그 주문아닌 주문이 딱 들어맞고 있단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제 또래아이들보다 머리통 하나만큼이 더 커서 어쩌면 세번째의 제 엄마 닮아서 예쁘게 크라는 것이 먼저 이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둘째동생과 전화통화를 하는데 세째네 소식을 전해준다.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제가 애를 써서 공부하여 조카아이가 여기저기서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와아, 이 애가 이모인 나보다 한 수 더 높네. 나는 중학생때 학교에서 장학생으로 학비면제를 받았을 뿐인데, 조카아이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돈까지 받고 학교를 다니다니… ‘청출어람’이 따로 없구나 싶었다. 제 아빠의 큰이모 닮아서 공부 잘하라는 주문이 진척이 잘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제 둘째이모 닮아서 마음씨 착하게 자라는 것인데, 이것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인격교육이므로 시간이 제법 지나서야 평가할 수 있게 되리라 싶다. 나는 우리 조카 아이가 큰이모인 나 닮아서 공부를 아주 잘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씨 착한 제 둘째이모를 꼭 닮아서 주위의 다른 사람도 배려하며 살 수 있는 따뜻한 인품을 지닌 아이로 자랐으면 싶다. 나는 제 아빠가 들으면 섭섭했을지 몰라도 그 아이가 커서 조금씩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제 엄마에게 당부한 게 있었다. 저 아이가 공부는 좀 못해도 괜찮으니까 공공장소에 가면 반드시 질서를 지키는 아이로 키우라고. 특히 대중목욕탕이나 대중교통편인 버스안에서 버릇없이 함부로 시끄럽게 떠들거나 제 마음대로 나돌아다니지 않도록 교육시키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좋은 머리를 잘 써서 자신보다 못한 남을 돕는데 쓰기보다는 자신은 손끝만큼의 손해도 없이 주위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취할 수 있는 모든 이익을 다 취하는데만 쓰는 아주 약삭빠른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사람에게 멋모르고 몇번씩 무방비상태로 당해본 사람들은 나중에 그 사람이 가까이 다가올까봐 은근히 두려워하는 것까지 보게 되면서 참 가슴이 아팠다. 사람이 머리좋다고 다 잘사는 것만은 아니다. 세상 어디에나 황금율-네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라-은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요즘은 오히려 조금 멍청할지라도 그래서 당장에 남들로부터 취할 수 있는 이익을 좀 못얻을지라도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절실히 요청되어지는 세상같다. 나는 최선을 다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제 부모를 여러모로 기쁘게 만드는 내 조카딸이 공부도 물론 좋지만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인심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로 자라나길 빈다. 그 아이를 두고 제 부모 하는 말들이 걸작이라 이 자리를 빌어 한번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다같이 한번 웃어보자고. “쟤는 우리는 안닮았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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