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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7.10.04 23:23

세계속의 개구리 (10월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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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밖으로 나오면 다 애국자가 된다더니 맞는 말이다.
먹는 식품을 하나 사더라도 선택의 여지가 있으면 내 조국인 한국산에 먼저 눈길이 가고 더 손이 가기 마련이다.

‘신토불이’에 너무 세뇌되어진 탓일까 싶다가도, 그래도 내 나고 자란 땅의 것이 제일이지 싶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인가 보다.  
그러나 가끔씩 포장은 멋진 그림 혹은 진짜를 훨씬 능가하는 실물사진과 함께 모두 한국어로 근사하게 해놓고 포장지 저 밑바닥 보일락 말락한 곳에 깨알보다 더 작은 글씨로 중국산(Product of China)이라고 표기해놓은 걸 보게 되면 아차, 속았구나 싶어 기분이 몹씨 씁쓸해진다.
  
한번은 아내를 기쁘게 해주려는 일념으로 한국 총각김치를 사온 남편에게 다음부터는 꼭 포장팩의 맨 아랫단을 살펴보고 사야된다는 당부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집에 오는 길에 일부러 가게에 들러 그걸 사온 남편의 성의만 아니었으면 정말은 먹고싶지않던, 한입 베어 물었던 걸 다시 뱉어내고 싶던,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완전 시들어빠진 중국산 총각김치였던 것이다.
요즘 한국에 총각이 귀하다던데 이 총각무우도 진짜 한국산이 아니네.
웃자고 한 소리였다.

‘지구촌 시대’라는 걸 실감하지만, 아무렴, 한국산 재료와 중국산 재료가 어찌 같을 수 있을 것이며, 한국사람들의 손맛과 중국사람들의 그것이 어찌 같을 수 있으랴? 한국인들의 손맛과 솜씨좋은 건 은근히 자랑스럽지만, 얄팍한 상술에는 아니올시다 하고 손사래가 쳐지려 한다.

   우물안 개구리가 아니라 넓은 세계속의 당당한 젊은이로 살아가도록 나를 일깨운 일이 있었다.

여상 2학년때 긴 시험들이 끝나고 새로 수업을 시작하는 상업과목시간에 나는 혼자 100점을 받아서 선생님의 호명에 일어나 반 친구들의 박수까지 짝짝짝 받으며 약간의 우쭐함을 겸손을 가장한 태연함으로 감춘 채 의자에 앉았다.

평상시 별로 딴 짓을 하지 않고 수업에만 집중했던 내게, 그날따라 엄지손톱이 너무 많이 자라있어 자꾸만 신경에 거슬렸다.
그래서 귀로는 수업을 들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조심조심 책상 안 필통속의 칼을 꺼내서 마침내 그 손톱을 싹둑 잘라내고야 말았다.

휴, 안도의 한숨을 내쉴려는 찰나, 평소 조용하시던 선생님의 일장 훈시가 갑자기 시작되었다. “아무개 학생이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해서 100점 맞은 건 잘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아무개뿐만 아니라 이 교실의 여러분 모두가 이 학교, 아니 남구의 모든 고교 2학년들, 아니 부산시 전체의, 아니 대한민국 전체의, 아니 더 크게는 온 세상의 모든 고교 2학년들과 견주어 보아서 나는 과연 어디쯤에 서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본다면 지금의 한 순간의 작은 승리로 너무 우쭐해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우물크기만큼의 하늘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작은 우물 안이 아니라 광활한 세계속의 젊은이로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실력을 겨루며 살길 바랍니다.”

선생님 몰래 신경 쓰이는 손톱 하나 깍았다가, 꾸지람을 듣게 된 터라 얼마나 부끄럽던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른 한편 선생님의 말씀 한구절 한구절이 가슴으로 고스란히 파고드는 정말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 과목 100점 맞은 걸로 우쭐해져서 그런 건 전혀 아니었는데, 어쨌거나 그로 말미암아 선생님으로부터 귀중한 것을 배우게 되었으니 그날 나의 과오는 나를 한국 땅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계속의 한 젊은이로 사고하면서 성장하도록 이끌어준 학창시절 내가 저질은 그 어떤 과오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것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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