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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7.11.23 10:32
공동묘지를 지나며 (11월 4주)
조회 수 2031 추천 수 0 댓글 0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서서히 본격적인 추운 겨울로 접어드는 요즈음인데 제목을 괜스리 무섭고 우중충한 걸로 잡은 듯하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을 혹은 삶의 고단함을 뛰어넘기에 공동묘지에 대한 생각만큼 적절한 것도 없으리라 본다. 나를 포함하여 일상의 삶에 지친 이들에게 적으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두서없는 생각을 여기에 늘어놓는다. 우연찮게도 한날은 일을 하러 오가다가 어디가 끝인지 가늠할 수도 없는 꽤 큰 공동묘지 옆을 두번씩이나 지나치게 되었다. 한국에서 흔히 보아왔던 봉분들이 아니라 그냥 편평한 땅위에 죽은 자들을 기리는 비석들이 수도 없이 세워져 있던 그 곳. 문득 내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저 곳은 아무 걱정도 없고 번뇌도 없고 그저 매일매일이 참 조용하겠구나! 그곳에 누워있는 죽은 이들은 자기가 누워있는 비석앞에 누가 오고간지도 모르고 누군가 자신을 사랑하던 이가 예쁜 꽃다발을 바친들 알 리 있으며, 무엇보다도 이 세상을 떠난 이들은 그저 뼈를 묻힌 그곳에 조용히 누워있어야만 된다고 생각하니 아,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져오는 것이었다. 시끌벅적하고 번잡한 소음보다는 차분하고 조용한 걸 더 좋아하는 나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며 번잡한 도시에서 숨쉬며 살아있음이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날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비슷비슷한 다람쥐 챗바퀴 도는 것같은 생활과, 쉬지않고 주어지는 삶의 고단한 문제들과 걱정거리들 속에 파묻혀 살지만 그래도 죽어서 차가운 땅속에 묻혀있는 것보다는 문제들을 동반한 살아있음이 훨씬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그때까지 나를 여러 모양으로 두렵게하며 괴롭히던 걱정거리들이 다들 훌훌 발을 털고 날아가 버렸다. 한날은 우리 아이랑 또래아이가 있는 한 젊은 엄마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지방의 소도시에 있던 집을 떠나 대도시에서 대학을 마친 그녀가 그리 편치만은 않았던 하숙생활얘기며 남편의 바쁜 일로 인해 혼자서 아이 양육을 거의 도맡아 하며 세월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게 살았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사람들이 자신을 나이만큼 보기 시작해서 충격을 먹기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그 이전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나이보다 10년은 더 적게 보곤 했었는데… 아쉬운 듯 말끝을 흐리던 그녀가, 지나고 보면 어느 누구나 할 것없이 다들 나름대로 자신에게 주어지는 삶의 고난을 겪으며 사는 것같다고 말끝을 맺었다. 나보다 한참 더 어리지만 시댁살이도 해본 그녀라서 그런지 참 많이 성숙해진 사람으로 내 마음에 포근하게 다가왔다. 구비구비 살아가는 삶의 곡선들이 서로 다르긴 하지만 우리들 각자에게 주어지는 삶의 문제들은 우리가 이 땅을 떠나기 전까지는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공통점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다 똑같은 입장에 놓여있다. 남이 가진 문제는 내 눈에 극히 적게 보이고 내가 가진 문제만 엄청나게 커보일지 모르지만, 풀어야할 문제 혹은 삶의 숙제를 가진 우리는 이 땅에 아직도 여전히 살아있음이 명백한 사실이고 또한 그것이 축복임이 틀림없다. 아무도 죽은 사람에게 문제를 풀라고 요청하지도 않고 또한 그것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가 비록 살아있었을 때에 천하를 호령하던 권위나 힘을 지닌 굉장한 사람이었다 할지라도 죽어서 땅에 묻힌 이상은, 사람들이 더 이상 그에게 아무런 기대도 걸지않으며 아주 사소한 부탁조차도 하지 않는다. 이래서 옛말에 '살아있는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른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때때로 삶의 여러가지 문제들로 인해서 피곤하고 지칠 때 한번쯤 죽은 이들이 묻혀있는 조용한 공동묘지를 떠올려 볼 일이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해결되지않는 어떤 문제를 두고 나를 재촉하는 골치아픈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이를 통해서 다른 누구보다도 내가 바로 살아있음에 문제를 지닌, 축복받은 삶을 살고있음이 다시금 명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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