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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8.02.21 09:19
애들 앞에선 찬물도 못마셔! (2월4주)
조회 수 2611 추천 수 0 댓글 0
최 영신(영국, Glasgow거주) 며칠 전 아이가 잠자리에 들 시간이 가까워오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실에 있었던 아이는 보이지않고 부엌쪽에서 뚝딱 뚝딱 때아닌 망치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니, 왠 일인가? 이 아이가 부엌 장판을 걷어내겠다고 넙적한 칼끝을 부엌과 복도가 맞닿는 부분에다 대고 그 위에 망치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금만 늦었더라도 하마터면 다 된 공사에 재 뿌리는 일이 될 뻔했다. 휴, 십년감수한 셈이다. 깜짝 놀란 나는 아이에게서 망치와 넙적칼을 일단 먼저 뺏어내고, 부엌공사가 이미 다 끝났기 때문에 이제 새 장판은 걷어낼 필요가 없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랬더니 이 아이, 모처럼 잡은 좋은 기회를 놓쳐서 서글펐던지 으왕, 하고 울음부터 터뜨려버렸다. 딴에는 어지간히 준비를 해서 어른처럼 근사하게 일을 해내고 싶었는데 제 마음도 몰라주고 그걸 뜯어말리는 엄마가 야속했을지도 모른다. 정작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사전 준비작업으로 부엌 바닥을 다 들어내야 했을 때 이 아이는 사실 일하는데 거치적거리듯 왔다갔다만 하는 것같더니 그렇게 하면서 일을 어떻게 하는지 볼 것은 다 봐두었던 모양이다. 이래서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마신다는 얘기가 생겼나보다. 너는 아직 일곱살도 안되었으니까 지금은 공부를 해야지 나중에 건축가가 되어 튼튼하고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을 거라고 했더니, 자기는 모든 걸 다 안다고 큰소리를 쳐댄다. 조그만 녀석이 제가 알면 도대체 얼마나 안다고 저렇게 큰소리를 쳐댈까, 싶다가도 철없이 어렸을 때 저런 소리를 안해보면 언제 해보겠나 싶어 어른인 내가 그냥 꾹 참아준다. 집 짓는 건축가도 되고싶고 용감한 소방관도 되고싶은 우리 아이, 한번은 목사님은 어때? 하고 은근히 떠보았더니 목사님은 따분해서 싫다고 한다. 목사님이 왜 따분하냐고 물으니 대답이 참 걸작이다. 목사님은 공부를 많이 해야되는데 공부는 따분하니까 그렇다고. 커서 뭐 할 거냐고 물을 적마다, 엄마처럼 공부하는 사람-늘 책 읽는 제엄마가 공부하는 사람인 걸로 애는 알고 있었다-이 되겠다고 하던 녀석이 언제는 이렇게 변했을까? 언제나 애가 철이 들어서 사람은 평생 공부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주지않아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될런지… 학교에서 아들 가진 엄마들과 가끔씩 얘기를 나누다보면 정말 남자아이들의 노는 것은 그 나이 또래의 여자아이들의 사브작사브작 얌전하게 노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고 한다. 아직 손에 잘 들 수도 없는 연장을 들고 낑낑거리기도 하고 제가 뭘 고쳐본다고 수선을 피우고 집안 곳곳을 어질어놓고, 아이들은 그렇게 호기심을 넓히며 조금씩 커가는 모양이다. 어느 목사님이, 아이들은 주일학교에서 선생님 말을 안듣는 것같지만 다 듣는 반면 어른들은 주일 설교말씀을 잘 듣는 것같지만 안듣는 경우가 많다, 고 하던 얘기가 문득 떠오른다. 어린 아이들은 안보는 것같지만 실상은 어른들이 하는 것을 다 보고 안듣는 것같지만 실상은 어른들의 말에 귀를 쫑긋 기울이고 있다는 뜻일게다. 이런 걸 생각하면 부모된 자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 아이들 앞에서 책임이 참 크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세상 사람 누구도 백퍼센트 완벽한 자도 없고 또 완벽할 수도 없겠지만 하루하루 주어진 새 날에 기뻐하며 살면서 위로만 위로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도 바라보면서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갈 때에 그러한 마음들이 다음 세대를 이어나갈 우리의 소중한 어린 아이들에게도 은연중에 전달되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땀없이 시간의 경과없이 인내없이 얻어지는 달콤한 열매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테니까 말이다. 당장 오늘부터라도 아이 앞에서 찬물 한그릇을 마시더라도 조심을 해야되겠다. 안그랬다가는 이 개구장이 녀석이 다음에 또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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