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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8.12.01 01:15

향수병과 오래된 친구 (12월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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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병과 오래된 친구

최 영신(영국, Glasgow거주)

날씨도 춥고 바람도 세차고 그래서 마음마저 얼어붙을듯한 요즘은 따뜻한 것들이 절로 그리워진다.  한국 떠나온지 얼마 안된 사람들은 이쯤이면 따뜻한 온돌방이 있는 한국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곳에는 없고 떠나온 나라에만 있는 것, 그런 것들을 나도 모르는 순간 차츰 그리워하다보면 그게 바로 마음의 병이 되는데, 나는 그걸 ‘향수병’이라 부르고 싶다.  
언젠가 처음 어학언수하던 밴쿠버에서 아는 후배의 강력한 추천으로 ‘문화 연구(Culture Study)’라는 강좌를 신청하여 배우게 되었다.  그 강좌에서 배운 가장 인상적인 것중 하나가 바로 이 ‘향수병’에 대한 것이었다.  대개 시기별로는 고국을 떠나온지 약 1년 가까이 오는 즈음 발병률이 높은데, 그에 따른 증상도 참 다양하였다.  갑자기 잠이 너무 많이 오거나 혹은 그 전에 잠 잘자던 사람은 때아닌 불면증이 생기거나, 음식을 먹어도 먹어도 돌아서면 또 배가 고프거나 아니면 음식에 대한 입맛이 영 사라져 버리거나 그래서 식음을 전폐하든가, 약간 정치적인 성향을 띤다면 완전 흑백 사상으로 현재 자신이 처한 나라의 모든 것이 싫어지고 그래서 모든 걸 삐딱한 시각으로 보고 판단하거나 아니면 그 반대의 경향도 나타나게 된다고 배웠던 기억이 난다.   또한 이 증상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으므로 일단 향수병이라는 자가진단이 나오면 가까운 친구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는 게 좋다는 대처방안도 있었다.  
가끔씩 돌팔이 의사 수준인 내가 들어도 향수병인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특히 겨울로 접어들면서 날씨가 추워지고 체감온도도 더 떨어지니까 더욱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다 그런 분들을 도와줄 수도 없고 이러저러한 방법이 있긴 한데요, 하면서 내 친구가 나에게 해준 일을 전해주곤 한다.
누우면 바로 잠들고 눈 뜨면 아침이던 나에게 밴쿠버에서 한동안 잠자리에 누워도 잠이 잘 안오던 그야말로 정말 이상한 날들이 갑작스레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가 아마 내가 고국을 떠나온지 약 1년쯤에 접어드는 시기였던 것같고 또한 지금처럼 겨울 무렵이었던 것같다.  참 이상도 하여 우리 집에서 약 두 블럭쯤 떨어진 곳에서 사는 친구에게 내가 잠이 잘 안온다는 얘기를 했더니, 나보다 외국생활이 4년여 더 빨랐던 내 친구가 그게 바로 향수병이니까 그리고 향수병에는 별다른 치료방법은 없고 누군가가 날마다 해준 밥을 먹으면 나을 거라면서 나더러 앞으로 일주일간 매일 자기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란다.  
어쨌든 나는 바로 그날 저녁부터 작은 어린아이까지 딸린 내 친구가 정성스레 해준 밥을 먹기 시작하였고 내가 그 일주일을 다 갔었는지 아닌지는 지금은 십여년도 넘은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이토록 사람은 은혜입은 일을 잘 잊어버리는 동물인가 보다-내 친구의 그 지극한 정성 덕분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동안 나를 잠 못이루게 만들던 때아닌 불면증, 아니 그 향수병으로부터 벗어났었다.  
지금 나는 그때의 내 친구처럼 어린애가 하나 딸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똑같은 호의를 베풀라면 내친구가 내게 그렇게 했던 것처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어린애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판국에 내친구는 어떻게 나에게 그런 큰 사랑과 정성을 베풀었을꼬 싶어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 일로 인해서 그녀와 나는 더욱 친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그랬나?  포도주와 친구는 오래된 것일수록 더 좋다고.  내가 처한 형편이 어떠하든지 전혀 그에 상관없이 언제나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는 내 사랑하는 친구 J, 그녀가 있음으로 내 삶이 더욱 풍성해졌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를 보이지않는 곳에서도 늘 기도로 후원해주는 친구, 성경에서 말하는 어떤 친구는 혈육으로 맺어진 형제자매보다도 더 친밀하다고 했는데 그것이 꼭 나와 내친구 J를 두고 하는 말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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