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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9.01.12 02:54
짧은 만남, 긴 기쁨
조회 수 2250 추천 수 0 댓글 0
지난 연말, 나를 포함하여 세명의 엄마들이 정말 오래전부터 벼르고 벼렸던 ‘얼굴 한번 보고 밥 한끼 함께 먹기’를 한번 한다고 다들 나름대로 바빴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두아이들의 엄마인 미라씨는 그날 새벽부터 일어나 모처럼 맞는 언니들에게 또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려고 자기는 아침도 굶은 채로 바쁘고 아니, 사실은 그 전날부터 나에게 정확한 기차 시간을 알려준다고 인터넷의 웹페이지에 들어가서 정보까지 찾아내서 평소의 몇배로 전화를 하고, 나도 하루 전날 무우를 사기위해 중국마켓을 두어군데나 발품을 팔아 돌아다녀서 겨우 원하던 무우를 사고 집에 와서는 종일 고등어 무조림을 한다고 온집안에 냄새를 풍겼다. 가게들이 성탄절과 복싱데이(Boxing Day)다음 날이라 미처 챙겨놓지못한 채소들이 제법 많았다. 그래도 맛있는 무조림을 하기위해서는 무우가 필수지 않은가? 은숙씨는 미리 주문해놓은 삼겹살이 찾기로 약속된 그날 얼어붙은 도로와 나쁜 날씨사정으로 차가 제때에 도착하지않아서 애를 태우다가 한참을 기다려서야 겨우 그 삼겹살을 찾아서 모임에 나타났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기차역에 도착하니 신호체계에 문제가 생겨서 언제 기차가 출발할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이 일을 어째? 내 손에는 그녀들에게 줄 한국신문 몇 부와 고등어 무조림이 든 통이 있는데 그냥 돌아올 수는 없었다.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음식인가 말이다. 이런 내 눈치를 알아채기라도 했듯이 역의 직원 한분이 친절하게도 어디어디 길로 가면 그리로 가는 버스가 있으니 그걸 타고 가란다. 길 찾는 거라면 젬병인 나에게 이런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하다니… 상세한 약도까지 받을 요량으로, 그럼 좀 써주세요, 했더니 그걸 써주고 있기에는 지금 버스 올 시간이 긴박하니 지체하지말고 곧장 가라며 나를 등떠밀다시피 하였다. 그렇게 얼떨결에 나오면서, 그래 여기서 두 블럭 가라고 했지, 하면서 안간힘을 다해 길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데, 어머나 세상에 이럴 수가? 그 길은 평소에 내가 일하러 다니면서 정말 자주 지나다녔던 아주 낯익은 길이었다. 나같은 얼빵한 사람을 위해 또 한분의 천사표 아주머니가 거기 버스정류장에 계셨다. 내가 어디에 가려는데 몇번 버스를 타야되는지 물어보자 마침 자기도 그 버스를 타는데 버스가 곧 올거란다. 내가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에 제대로 내리도록 끝까지 친절을 아끼지않은 그 아주머니가 지금도 너무 고맙다. 날씨와 기차의 지연때문에 조금씩 늦어졌지만, 다들 만나서 그간 어떻게들 지냈는지 안부인사 나누기 바쁘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오랫만에 만나서 놀이친구가 생긴 덕분에 다들 신이 났는데, 제일 어린 두살배기 광복이는 자기들끼리만 노는 형들과 누나에게 치여 혼자 우는 연극을 여러번 하는 걸로 지켜보는 어른들 마음을 아려놓았다. 일년에 잘하면 두번 혹은 한번 겨우 볼 수 있음에도 우리들은 마치 바로 엊그제 만난 사람들처럼 함께 음식을 차리고 웃고 웃으며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다들 아이 키우며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면서 바삐 살아가는 우리들이 일년에 한두번쯤 만나서 이렇게나마 회포를 풀어야 다음 만남을 또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할 수가 있다.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가 정말 압권이었다. 다들 또 아주 오래 있다가 만날 수 있음에 엄마들은 우리 아이를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거나 꼭 안아주거나 하면서 다음을 기약하였다. 은숙씨가 자기 딸더러 우리 아이에게 작별인사를 하라고 하니까 초등학교 3학년인 ‘클뢰어 수’가 허리를 똑바로 펴고 서더니 우리 애에게 이렇게 물었다. Can I kiss you? (뽀뽀해도 되니?) 그 뒤는? 영화에서 혹은 포스터에서 보는 것처럼 그럴싸한 그림이 나오고, 다들 눈감으세요! 가 나왔어야 되는데, 제엄마 닮아서 완전 촌발 날리는 우리 아들녀석이 발목이 조금 부어있는 것도 순간적으로 까맣게 잊고서 번갯불에 벼룩 튀듯이 냅다 윗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도망가버렸다. 아이구, 부끄럼쟁이, 언젠가 그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고 후회할지도 모를텐데… 이 얘기를 자난에게 했더니, 자난은 가만 있는 자기 아들에게, 여자아이들이 키스하자는 쪽쪽 다 키스를 하면 안된다고 설교를 하면서 키스를 거절한 우리 아이더러 잘했다고 칭찬이다. 그럼 키스를 거절당한 클뢰어 수는 뭐냐? 이 만남 이후로 미라씨는 자기 아이들이 한국말로 엄마라고 부르니까 너무 좋단다. 하루를 만나도 십년지기처럼 십년을 만나도 처음 만난 것처럼 우리들의 우정이 날이 갈수록 무르익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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