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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느 잡지에서 크리스마스만 지나면 찬밥신세가 되는 불쌍한 동물, 특히 개들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 불쌍한 동물을 데려다 키울 형편은 아니고 참 안됐구나 싶었는데, 이번에 보니 꼭 동물들만 그런 경우는 아닌 모양이었다. 연말연시가 지나고 대형수퍼에 가보니 그동안 선물용으로 혹은 집안장식용으로 팔려고 내놓은 여러가지 멋진 난들이 이제는 아무도 거들떠보질않는지 완전 떨이로 나와 있었다. 세상에 그 기품있는 난이 값이 내리고 또 내려 겨우 62펜스라니… 평소대로라면 멋진 화분만으로도 그보다는 더한 가치가 있을 법한데 이제 점점 말라 죽어가는 난을 수퍼에서는 그렇게라도 팔기로 작정한 모양이었다. 그래, 애야, 우리집에 가자. 내가 너를 다시 우아한 귀부인 혹은 공주님으로 키워줄께. 처음에 사려고 마음 먹었던 장미 다발은 다시 제자리에 갖다두고 난 전문가도 아니면서 나는 그저 식물, 아니 그 생명에 대한 사랑 하나만으로 이 애를 덥석 집어들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지나가듯이 내가 수퍼에 가면 사든 안사든 꼭 한번씩 두루 살펴보는 코너가 있으니 그곳이 바로 식물과 꽃 판매대이다. 식물과 꽃들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참 즐겁고 행복하다. 원래 가격의 1/10로 떨어진 62펜스짜리 난을 장바구니에 담고 옆을 도는데 넘어져있는 작은 난화분이 하나 있었다. 어머 애가 넘어져 있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넘어진 화분을 바로 일으켜 세워놓았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다른 코너로 가려는데 내가 그 자리에 잠시 앉게된 바람에 가던 길을 멈추고 기다리고 있었던 어떤 은발의 노신사가 나를 향해 미소를 띄워보냈다. 나도 한번 그분을 향해 씨익 웃어주고는 넘어진 화분 일으켜 세워주느라 길을 잠깐 막은 것이니 큰 실례는 아니겠지, 하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보았다. 이 난이 우리집에 오니 우리집 거실이 한층 더 살아났다. 고급스럽게 칠한 짙은 초콜렛빛 금박의 화분안에 든 우아한 자태의 꽃을 피운 이 난덕분에 다른 초록식물들까지 자기들의 고유 멋을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하는 것같았다. 크리스마스도 연말연시도 다 지나서 축제 분위기가 사라졌지만, 이 난이 오고나서 다시 우리집에는 즐거운 축제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식물코너를 마련한다고 거실의 가구들의 위치도 모두 새로 바꾸고 하여튼 그동안 별로 안했던 야단법석을 좀 떨었다. 창가에 놔둔 화분들이 순전히 지나다니는 이웃들의 눈요기를 위한 선물용이라면 집안의 화분들은 우리 가족들을 위한 그리고 나와 아주 가까운 친구들을 위한 것들이다. 이 고상한 난이 주는 기쁨을 값으로 매긴다는 그 자체가 상업주의 냄새를 물씬 풍기지만, 그래도 굳이 환산해보자면 사온 가격의 백배 아니 천배도 더 넘는 행복을 날마다 나에게 선사해주고 있다. 이번에는 이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 그동안 난을 키우면서 두어번 실패한 내 경험들에 비추어보아 난은 결코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법구경에, 뭐든지 과한 것보다는 모자라는 게 더 좋다, 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때로 너무 과도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상대방을 질식케하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난에게 물을 너무 많이 주다가 본의아니게 그 아이들의 뿌리를 그 많은 물로 썩게만드는 그래서 나의 과잉 사랑으로 죽어가는 두 분의 난을 속수무책으로 가슴아프게 지켜보면서 몸소 깨닫게 되었다. 아주 비싼 값을 치루고 난을 바르게 사랑하는법을 배운 셈이다. 사람들중에도 상대방은 전혀 생각지않고 자기자신은 엄청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 자기자신만의 방식대로 다른 사람을 대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어쩌면 그게 상대방을 숨막히게 하는 건 아닌지, 어쩌면 그것이 다른 사람을 더욱 힘들게하는 건 아닌지, 그래서 더욱 그 상대방이 나로 인해서 움츠러드는 건 아닌지 한번쯤은 곰곰 생각해보아야 되는데 그런 생각조차 안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럴 때 사람들의 영혼은 질식할 듯 힘이 드는 건 아닌지. 뭐든 너무 많은 건 그것만으로 사람을 숨막히게 하는 것같다. 이래서 사람들에게 절제의 도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난을 키우면서 그 고상함과 함께 절제에 대해서 깊이 배울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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