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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9.02.11 05:08

유감 천만 억지성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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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신문에서 읽은 전성민 님의 글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많이 냈다고 박수 짝짝 받았다는 얘기를 접하면서 내 학창시절의 해묵은 서글픔 하나가 머리를 틀고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나도 방위성금이니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니 혹은 수재의연금이니 등등의 좋은 명목으로 돈을 내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린 시절 그 좋은 일들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오래전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던 시절, 꼭 소풍 가는 날이나 혹은 학교의 운동회나 체육대회 같은 날마다 무슨 구실을 붙여서라도 코흘리개 아이들의 어쩌다 언감생심 받아본 용돈마저도 고스란히 다 뺏어(!!)가는 그 악랄한 수법에 번번히 치를 떨며 속으로 흐르는 눈물을 삼키기를 그 얼마나 했었던가?  그쯤 되면 기부가 너무 기분나쁜 기부가 되고만다.  
달랑 백원짜리 하나 용돈으로 받아온 나는 그거 하나 통째로 내 앞에 들이미는 성금 주머니에 울며 겨자먹기로 어쩔 수 없이 기부하고나면 즐겁고 유쾌해야할 소풍이나 체육대회가 얼굴은 체면상 웃지만 마음은 너무나 서럽고 슬픈 날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십원짜리 동전으로 열개를 달라고 할 것을,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다음번에는 꼭 동전을 여러개 달래서 음료수 사마실 돈은 남겨야지, 하고 다짐을 하건만 언제나 소풍날만 되면 그게 내뜻대로 잘 되지않았고 그래서 나는 어김없이 내 용돈 전부를 다 기부하고나서 아무리 목이 말라도 청량음료 하나 사마실 수 없는 그래서 더 서럽던 연례행사가 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계속되었다.

어느 후배가 자신이 하고싶지않은 기부를 꼭 해야되느냐고 내게 물었을 때, 기부 자체는 물론 좋지만 네 마음이 영 내키지않으면 하지마라, 고 조언해주었다.  
하고나서도 괜히 했구나 싶어 속상할 것같으면 아니 함만 못하지 않겠는가.  
단돈 한푼을 주더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좋은 법이다.  

물론 기부문화에 익숙치않은 나라에서 또한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서로 돕고 나누는 걸 가르치는 것은 참 좋지만, 그래도 자기가 내고 싶은 만큼만 내도록 배려해주고 필요하면 거스름돈을 달라고 하도록 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잘은 모르지만 그 시절 나처럼 그날 특별한 날이라서 받은 용돈 한닢 억지성금으로 다 내놓고 자기자신은 종일 목말랐던 아이들이 제법 있었을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 혹은 중고등학교 선생님이 되면 그런 것부터 시정하고 싶었는데, 머리가 커질수록 덩달아 나도 머리가 더 큰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은 바램이 생겨 아쉽게도 그 일은 결코 시도해보질 못했다.
웃기는 것은 또 누가 성금을 제일 많이 했는지 전교생 앞에서 발표하여 박수 짝짝짝 치게 만드는 것이었으니, 가난한 집 아이들은 이래저래 열받는다.  

그날 겨우 만져본 돈 고스란히 다 빼앗겨, 비율로 보자면 100% 다 낸 아이들이 박수를 받아야 마땅한데 부잣집 아이들이 자기들이 받아온 많은 액수중 일부를 떼어낸 그것때문에 박수 짝짝 받는 걸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사회라니  쯧쯧쯧…  
그래서 어쩌면 오늘날 한국사회의 도덕성이 바닥에 곤두박질 하는 것이 당연지사인지도 모른다.  

다들 물질적으로 ‘잘살기 운동’만 추구하느라 정작 ‘바르게 살기’라는 정신이 바로 서는 중요성은 간과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도 늦지않다.  
한사람 한사람이 바르게 살기, 그리고 내가 좀 더 가진 것 조금 덜 가진 이웃과 나누며 살기를 실천해나가면 결국은 나라 전체적으로 그 바른 물결이 점차적으로 큰 흐름을 타게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어쩌면 또 가장 시기적절한 때인지도 모른다.  
기부나 나눔도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하다보면 그것이 어느 틈엔가 자연스레 몸에 베어 나중에는 주는 그 자체가 즐겁고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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