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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9.04.22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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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십년이 두번 흘렀으면 강산이 두번도 더 바뀌었을 법한데 여전히 변치않는 목소리에 전화 수화기를 든 나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최근에 경험했다.  
한번 사랑하고 사랑받은 사람들은 그 첫사랑을 그래서 평생 잊지 못하는 모양이다.  
내 대학시절, 나를 친동생보다도 더 아끼고 사랑해준 언니가 한분 있었다.  과의 다른 많은 언니들로부터 두루 사랑을 받았지만, 금자언니는 특별히 나를 더 살뜰히 챙기고 보살펴준 언니였다. 유난히 더 친한 두사람은 자연히 다른 사람들에게 티를 내지않으려해도 표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우리 사이를 잘 아는 과의 다른 언니랑 통화할 때에 언니가 내게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 들어온 금자언니의 소식을 전해주었고, 그래서 연결된 언니였다.  
바늘 가는데 실 가는 것처럼, 언니와 나는 새 학기 수강과목을 신청할 때도 왠만하면 같은 과목을 수강하려 했고 내가 교육학을 부전공으로 선택해야 할 때에는 언니는 자유선택과목으로 나랑 같은 과목을 선택한 기억도 난다. 그런 언니가 신부감을 선택하는데 아주 현명한 한 선배의 집요한 구애에 넘어가 3학년 재학중에 결혼할 때에 나는 그런 언니를 빼앗긴 듯한, 아니 사실은 언니를 나눠가져야 한다는 사실에 그 선배님이 조금 섭섭하다는 생각조차 들었었다.
목소리는 하나도 변치 않았는지 언니도 나도 깜짝 놀랐다.  언니는 예전보다 경상도 사투리 사용이 더 많아지긴 했지만, 그 상냥하고 친근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언니, 하고 부르는데 내 속 깊은 곳에서 마음이 떨려왔다.  
언니가 남편의 직장 따라 부산을 잠시 떠나살다가 아이들 교육상 다시 부산으로 되돌아와서 나를 찾으려고 내가 예전에 근무했던 대학에까지 연락했었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찡해졌다. 언니는 내가 가르쳤던 전문대학의 주소까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내가 외국으로 떠난 뒤에도 누군가 나를 몹시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찾았다는 그 사실이 눈물겹도록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내가 기분전환으로 말을 돌렸다. 언니, 내가 한번은 우리 아들 잠재우면서, 엄마 대학 다닐 적에 언니 그러니까 네게는 이모가 되는데 그 이모가 엄마한테 아주 잘해줬다, 고 했더니 이 녀석이 왜 그 이모가 엄마만 잘 해주고 자기는 잘해주지 않았느냐고 생각날 때마다 투정부리는 바람에 아주 혼났어요. 어린아이들은 시간개념이 그렇게 없나봐요. 그러니까 언니는 대번에 하는 말이, 그럼 네 아들 데리고 우리집에 와라, 지도 아주 잘해줄테니까.
내리사랑이 따로 없는 것같았다.  
언니는 나 하나라도 모자라서 내 아들까지 덤태기로 또 사랑을 퍼부어줄 모양이다.  
나의 그 무엇이 예뻐서 언니가 그토록 나를 사랑해주었을까?  생각해보면 그 시절 내가 가진 거라고는 단지 삶을 열심히 살려는 열정과 결코 포기하지않는 꿈을 지닌 젊음으로 거기 있었을 뿐이었는데 언니는 그런 나를 위해 늘 자기 지갑을 열었다.  
날마다 저녁을 사주었고, 어떤 때는 버스표를 사주었고, 자취방을 구해야 할 때에는 단 하루 은행을 쉬는 날도 쉬지못하고 나를 위해 함께 내가 기거할 방을 찾아주고 선뜻 한달분의 집세까지도 내어주고 가기도 했다.
또한 일정액의 장학금을 받았어도 나머지 등록금이 모자랄 때에는 거금도 덜컹 마다않고 내가 요청하기도 전에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언니가 은행일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저녁때 학교에 왔을 때 따뜻한 자판기 커피 한잔을 사드리는 것, 그것이 전부였건만 언니는 그것만으로도 몹시 행복해했다.  
대학 졸업후, 돈을 벌기 시작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언니로부터 받은 거액의 등록금 되갚기였지만 나는 그냥 원금만 갚았을 뿐이었다.  언니가 내게 퍼부은 사랑을 되갚으려면 나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해야만 된다는 걸 안다.  
내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돕는 마음을 갖는 것도 내가 먼저 도움이 필요할 때에 그런 적절한 도움을 받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고 또 그러한 나눔과 사랑을 솔선해서 나에게 보여준 분이 바로 나의 사랑하는 금자언니이다.  
이제 서로 연결되었으니 가끔씩 통화하자고 하면서 우리집 전화번호를 달라는 언니에게 내가 대답했다. 언니, 한국에서보다 여기서 제가 전화하는 게 전화요금이 더 쌀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부터 제가 한달에 한번씩 언니에게 전화할께요.  대학때 언니가 제게 아주 많이 투자했잖아요.  
요즘은 언니가 보고싶어서 문득 한국에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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