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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올해의 내 생일을 맞았다. 여덟살인 아들에게 엎드려 절받기 식이지만, 어려서부터 훈련받는 게 좋을 듯해서, 오늘이 엄마 생일이니까 선물 하나 사라,고 은근히 종용했다. 그간 여름방학 시작이후로 당분간 중지했던 용돈을 한꺼번에 주면서-꼭 선물 받으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거기에 조금 덤으로 더 보태주었다. 몇주치를 한꺼번에 받은 결과, 5파운드라는 어린아이로서는 거금이 생겼는데 그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자못 궁금하기도 했다. 어린이 케어센터에서 나온 우리는 보무도 당당하게 인근의 수퍼에 들어갔다. 들어가는 입구에 내가 좋아하는 프레지아 꽃들이 연보라빛과 노랑빛 색깔별로 다발을 묶어 팔고 있었는데, 값에 비해 다발이 아주 빈약해보였다. 하긴 꽃값은 양보다는 질로 따져야 더 옳지. 어쨌거나 꽃병에 한아름 꽃으려면 그 두가지 색깔별로 한다발씩 사야지 보기에 좋으련만, 그러려면 아이의 용돈의 80%를 사용해야 될 판이었다. 아무리 교육도 좋지만, 아이의 용돈을 송두리째 빼앗는 건은 영 ‘아니올시다’였다. 이미 아이는 제 용돈의 10%를 하나님께 십일조로 드리는 훈련을 쌓아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내 마음을 바꿔서 복숭아 한 팩으로 정했는데, 가게 매장의 중간쯤에 가보니 거기도 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내 눈을 끄는 꽃들이 이번에는 국화였다. 연한 보랏빛도 있었고 진한 자줏빛도 있었다. 꽃 좋아하는 내가 발걸음을 빨리 옮기지 못하고 거기서도 조금 지체하자, 아이는 자기가 고른 사탕을 한 봉지 가져오더니 아까 내가 선물로 결정한 복숭아와 사탕값을 다 합하면 얼마가 되느냐고 물었다. 값이 총 얼마라고 하니까 제손에 쥐인 동전들 중에서 거기에 해당되는 동전들을 내게 주면서 엄마 먼저 가서 계산을 하라고 한다. 자기 손에 남은 돈이 2파운드였다. “너는?” 하고 물으니까 엄마는 몰라도 되니까 엄마 먼저 빨리 가서 계산을 하란다. 그러면서 묻기를, “엄마, 무슨 색이 좋아?” 가만 보아하니, 아이는 우리가 가게 입구에서 보았던 프레지아 꽃을 한 다발 사러 갈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연보랏빛 국화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게 좋겠네.” 엄마는 빨리 가서 계산을 하라는 아이의 등쌀(!)에 밀려서 내가 먼저 가서 계산을 하고 있는데, 내가 서있던 줄이 훨씬 짧은데도 불구하고 아이는 깜짝 선물로 엄마를 엄청 놀라게 해줄 요량으로 저쪽 더 줄이 긴 쪽으로 갔는데, 가면서도 내가 못보게 할 심사로 등까지 푹 수그려서 갔다. 나는 물론 다 보았지만, 못본척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좀 더 나이가 든 아이였다면, 자기가 계산한 값이 선명히 찍혀진 영수증은 빼고 선물만 전해주었을 터인데, 우리 아이는 연보랏빛 국화 화분 하나와 그에 딸린 영수증까지 나에게 활짝 웃으면서 건네주었다. “너 용돈 다 써버려도 되니?” “괜찮아요, 엄마 생일이니까!” 녀석, 짠순이 막내이모 닮아서 짠돌인줄 알았는데, 돈 쓸 때는 쓸 줄도 아네. 집에 와서 잘 보이는 곳에 국화 화분을 올려 놓았는데, 우리 아이 말이 걸작이다. “엄마, 다른 사람들한데 다 말해, 내가 엄마 선물로 꽃 사줬다고!” 원래 아이들이 어쩌다 한번씩 부모에게 기특한 일을 할 때가 있지만, 사실은 그 일을 할 그때뿐이라는 걸 부모들이 알면서도 그 순간은 하여튼 자식에게 감동하는 것같다. 그때가 지나면 자식들은 또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애를 먹이지만 말이다. 나도 그렇게 우리 아이한테 그날만큼은 순전하게 감동을 먹어주었다. 그 결과 복숭아와 사탕값을 아이에게 다 도로 돌려주었다. 어린 아들의 선물은 그냥 꽃 하나로도 충분했다. 아들만 둘을 두신 어떤 분이 자신의 생일날, 남편도 큰아들도 작은 아들도 아무도 자기 생일이라고 선물은 커녕, 생일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지나가자 저녁때가 되어서야 뾰루퉁한 목소리로, “오늘이 내 생일이다.” 하셨다는 얘기를 언젠가 듣고 당시는 웃었지만, 나도 그런 상황에 처하지 말란 법은 없을 듯해서 좀 숙연해졌다. 어린아들의 꽃선물 얘기를 아는 동생에게 했더니, 그게 바로 ‘효자’라고 함께 기뻐해준다. 한동안 국화꽃을 볼 적마다 엄마를 위해서 자기의 용돈을 아낌없이 사용한 어린아들의 효심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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