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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9.11.04 05:27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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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통역으로 일하면서 아직 열살 미만의 엄마 손이 몹시 필요한 아이가 있는지라 거의 오후 2시 이후의 일은 왠만해서는 하지 않는데, 한 날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내 아이도 둘째치고 곧바로 병원으로 직행한 적이 있었다.  참고로 이 글은 그 당사자의 허락하에 쓰는 글임을 밝혀둔다.
새벽 0시 반 담배를 피우는 남자분들은 그 초조한 상황속에서 담배를 한 개피씩 피우는데, 담배라고는 입에 대본 적이 없는 나는 그럴 수도 없었지만, 그때만큼은 담배라도 피울 수 있다면 잠시잠간이라도 그 겁나는 긴장감을 그렇게라도 달랠 수 있는 그분들이 조금은 부러운 순간이었다.  
바로 전날 아침까지만 해도 아이를 낳으러 온 E랑 즐겁게 웃으며 얼마 안있으면 나오게 될 아이를 기대하며 행복한 긴장감으로 시작한 날이었는데, 하루가 채 가기도 전에 그녀는 울음소리도 크고 건강한 아들을 낳은 기쁨을 채 다 누리기도 전에 사경을 헤매는 일이 벌어지다니…
대체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저 엄마가 행여라도 잘못 되면 저 댁의 어린아이들은 어떡하나?  하나님, 제발 E를 살려주세요.  저 생명을 귀히 여겨 주세요.  
내 맡은 바 일이 일인지라, 나는 그댁의 남편이 회복실로 내려온 아내와 아들을 두고 아들 낳은 경사를 아는 이들에게 알리러 잠시 밖에 나간 동안에도 산모 곁에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산모가 메스꺼움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의료상의 확인사항을 검사한 뒤 곧장 나가려고 한발은 이쪽 회복실에 한발은 저쪽에 딛고 있던 조산원에게 산모가 몹시 메스꺼워한다고 바로 알렸는데, 그때부터가 바로 생명이 위독한 일련의  응급사태의 시작이었다.  
제왕절개 수술실에서 내려온지 한시간도 안되어 E는 잠시 얼굴이 노오랗게 되어 기절을 했고 그 기절한 상태에서 깨어나자 이번에는 배가 몹시 아프기 시작하여 병원에서는 비상벨이 울리고 비상 방송이 나가고 의사들중에서도 고참격인 의사들이 다 그 방으로 몰려들었다.  그녀의 상태가 점점 나빠져서 아직 의식이 있는 그녀에게 다시 수술동의서에 서명을 하게하고 이번에는 전신마취라서 통역원이 필요없는 수술이었다.  
재왕절개 수술시에는 반신마취라서 산모의 얼굴을 보고 있었는데 얼마나 상황이 절박하면 전신마취가 필요했었는지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 일이었다.
두번째 수술실에 들어가는 E가 이번에는 제법 서럽게 울면서 들어갔는데, 그 모습이 내 마음을 아주 아프게 하였다.  사실 통역원으로 거기에 갔지만, 같은 교회에서 만나는 E는 마음씀씀이가 참으로 곱고 예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만 해도 아이를 낳으러 오는 수박만한 배를 움켜지고 오면서도 나한테 주려고 맛이 부드러운 박하사탕을 챙겨온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계속되는 출혈을 멈추게하는 큰 수술을 끝내고 나는 드디어 병원 직원으로부터 수술이 잘 끝났으니 이제 가도 된다는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왜 그리 평온하지가 않던지?  
그날따라 버스는 왜 그리 오지않고 오래 지체되던지?  집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다시 전화가 왔다.  오늘 그 병원에서 응급전화로 다시 통역원을 부른다는 전화였다.  이번에는 사태가 심상치않아서 바로 길거리의 택시를 타고 달렸다.
병원에 도착하니 그녀의 남편이며 언니며 다들 너무 울어서 눈이 빨갛게 되어 있었다.  연한 노란색 수술실 가운을 입고 들어가는 수술실은 바로 중환자들만 취급하는 수술실이었는데 연한 노란색 가운이 한국의 상복을 연상케하여 마음이 참 착잡해졌다.  
병원에서는 그녀의 남편과 통역원인 나에게 최대한 얼굴에 슬픈 기색없이 밝게 웃으며 환자를 최대한 안심시켜주라고 했다.  
이제 산모는 더이상 산모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이쪽저쪽을 왔다갔다하는 생명이 위독한 중환자였다.  
환자의 출혈을 멈추게하는 시도를 다 했는데도 여전히 출혈이 계속되고 있어 응급으로나마 지혈을 시켜 인근의 CT촬영을 할 수 있는 병원으로 옮겨가서 CT촬영을 하면서 출혈부위를 처리하기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새벽 2시 45분, 드디어 환자의 출혈이 멈추고 중환자실로 옮겨졌으니 가족들은 잠시 환자를 보러 가도 된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신새벽에 잠들어 있을 다른 사람들은 생각도 안하고 생명을 살려주신 하나님께 ‘만세’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이 우리 삶을 주관하시고, 우리의 남은 인생의 시간을 통치하심을 뼈저리게 느낀 날이었다.  E 살려주신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가 앞으로 오래오래 건강히 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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