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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09.12.09 05:48

화재경보 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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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경보 울리고

금요일 저녁에 있던 교우들과의 모임이 토요일로 옮겨지는 바람에 우리는 매주 토요일마다 가는 수영장을 금요일 저녁에 가기로 했다.  
접수계의 직원이 끝나는 시간을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우리는 이제나 저제나 나가라는 방송이 나오지 않나 하면서도 짧은 시간을 최대한 많이 즐기기로 하였다.  
스파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바로 수영장에 들어가면 스파의 물 온도보다 훨씬 차가운 물에 적응하느라 열심히 수영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아는 체를 하고 다가왔다. 누구지? 하고 기억을 떠올리는데, 예전 옥스팜 서점에서 자원봉사할 때 알았던 상급감독의 아들이었다. 아주 오랫만에 만나서인지 그 아이는 예전의 작은 아이 티를 많이 벗어버리고 제법 통통하게 살도 오른 초등학교 7학년 소년이었다. 네 엄마는 어디 계시니? 하고 물어보면서 내가 수영복을 입고 있으니까 나중에 수영 다 끝나고 제대로 옷을 걸치고 밖에 나가서 만나 인사를  나누려고 했는데 그 아이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제 엄마한테 우리를 만난 걸 바로 알려줬다.
큰 통유리창 저쪽의 커피숍에 앉아있는 브렌다, 예전처럼 붉은 머리를 하고 있을까 했었는데 이제는 자연스런 은발 그대로였다.  
브렌다의 아들 잭과 우리 아이가 오랫동안의 공백을 깨고 금새 친구가 되어 둘이서 함께 어울려 놀았다.  잭은 많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의 주근깨가 귀여운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
오랫만에 만나게 된 브렌다를 보려고 나는 평소보다 서둘러서 수영장을 빠져나와 브렌다가 앉아 있는 테이블로 갔다. 언제나처럼 브렌다는 그 포근하고 따뜻한 포옹으로 나를 반겨 맞아주었다.  
차 한잔씩을 앞에 놓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있었는데 갑작스레 화재경보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설마 이 저녁에 화재경보기 실험을 하는 건 아닐텐데.  어디서 이 소리가 시작되었을꼬?  수영장 안에 있는 아이 둘이 걱정이 되었는데 안을 들여다보니 수영장 안에서는 이미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인명구조요원의 지시에 따라 한 곳에 다 모여 있었다.
진짜 불이 나면 어떡한다지?
아이의 갈아입을 옷이 들어있는 사물함의 열쇠는 내가 들고 있는데, 불이 나면 안에 다시 들어가게는 하지않을 거고, 그러면 수영복만 달랑 하나 걸치고 있는 아이가 찬바람에 감기에 걸리지나 않을런지?  
금방 끝이 날 것만 같은 화재경보음은 끝이 나지않고 계속해서 징징 울어댔다.  드디어 알림 방송이 나와서 모두들 제일 가까운 출입구 밖으로 대피하라고 했다.
브렌다와 나도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겨서 레져센터 뒷문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이미 대피해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운동을 하던 중에 나와서인지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이 추운 겨울에 얼마나 추울꼬?  수영장안의 사람들은 수영장에서 바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비상문이 있어서인지 여전히 안에서 다음 안내방송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브렌다와 나는 외투까지 따뜻하게 다 차려입은 상태였다.  
레져센터의 직원이 인근의 소방서에 언제 전화를 걸었는지 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레져센터라서 그렇게 빨리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방차들이 사이렌 소리도 요란하게 그곳에 도착했고 소방관들이 나와서 경보장치를 점검하고 건물 구석구석을 다 검토하고 난 후에야 해제가 되었다.  
알고 봤더니 누군가가 체육관에서 공을 세게 찼는데 너무 높이 차는 바람에 저 높은 곳에 붙어있는 화재경보기를 건드렸던 모양이었다.  
다행히도 화재는 없었지만 수영장안에서 물에 젖은 수영복 차림으로 덜덜 떨고 있었던 사람들과 바깥 추운 곳에서 짧은 운동복 차림으로 덜덜 떨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기다리던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금요일 저녁에 수영장에 가기는 사실 처음이었는데, 그래서 덕분에 반가운 브렌다와 잭을 만난 것까지는 참 좋았는데 예상치못한 화재경보음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평소보다 한참이나 늦어졌다. 누군가에게 수영장에 불이 나면 대피할 때 겉옷도 제대로 못 걸치고 어떡하겠느냐고 했더니 한국의 대중목욕탕에서 불이 나자 사람들이 일단은 목숨을 건지고 봐야 되니까 발가벗은 것도 무릅쓰고 피하더라는 얘기를 해주는데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얘기였다.  
공을 너무 세게 찬 녀석이 도대체 누구냐?
다음부터 제발 좀 살살 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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