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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10.01.13 07:21

새하얀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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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겨울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하이얀 크리스마스를 소원하는 어린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눈이 제법 많이 왔다.  
우리 작은 아파트 단지 내의 아이들은 뒷마당에 수북히 쌓인 눈을 뭉치고 굴려서 자기들 키보다 더 큰 눈사람도 만들고 서로 눈싸움도 하고 추위도 잊고 깔깔거리며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은 그저 눈이 온 것만으로도 신나고 즐거운 모양이었다.
거실 창문을 통해 바라다 보이는 건너편 커다란 나무가 여름내내 무성하던 초록 잎사귀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없는데 가지가지마다 하얀 눈으로 옷 입고 우뚝 서있는 모습이 늘 보던 것과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날씨는 몹시 차갑고 눈까지 와서 진짜 겨울임을 피부로 실감한다.  
올해 들어 다른 해보다 눈이 훨씬 더 일찍 선을 보이는 것같다.  농사라도 많은 고장이라면 풍년 들거라고 좋아할 만하건만….
아이들은 눈이 와서 마냥 기쁘고 신나해도 어른들은 눈이 오고 날씨가 추워지면 그저 따뜻하고 훈훈한 집안에 붙어있고 싶을 뿐, 밖에 나다니는 것도꺼려진다.    
앞집 할머니는 벌써 며칠째 늘 시내로 소일거리삼아 나가시는 것을 중단하고 집안에만 계신다.  
눈길에 잘못하여 미끄러지기라도 할까봐 두려우신 까닭이다.  
언젠가 한번 넘어져서 크게 다치시는 바람에 병원신세를 제법 지셨던 모양이다. 할머니, 식료품 쇼핑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하세요., 했더니 인근에 사는 할머니의 남동생이 대신 해주기로 했단다.
어렸을 적 눈이 올 때면 동네의 제법 경사진 길을 빤질빤질 윤나게 만들어서 동네 오빠 허리춤을 잡고 그 뒤로 조무래기 아이들이 줄줄이 늘어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주루룩 미끄럼을 타면서 하하 호호 즐거워했던 때가 떠오른다.  
아이들은 그저 눈이 오고 눈길에 신나는 미끄럼타는 것만 좋아서 나이드신 어른들이 눈길에 넘어져서 다칠 것을 겁내한다는 것은 전혀 몰랐었다.  
어느 오일장날 한 할아버지께서 우리 동네 아이들이 늘 신나게 미끄럼을 타고 놀던 그 경사진 길을 내려오시다가 그만 엉덩방아를 찧으셨는데, 그걸 보고는 한 어른이 너무 미안해서였는지 아이들의 미끄럼놀이를 중지시켰다. 그때는 그 조심하지않고 넘어지신 할아버지가 얼마나 야속하던지?
이제는 내가 눈이 쌓이고 쌓여 얼음판이 된 길을 조심조심 걸어야하는데 엄마 사정은 아랑곳없는 우리 아이는 눈이 오는 겨울이 자기가 최고로 좋아하는 계절이라고 호들갑을 떨어댄다.  
나는 날씨 따뜻한 여름을 더 좋아하는데, 아이가 눈을 워낙 좋아하니까 내 선호도쯤은 잠시 접어둔다.  눈길에 뽀드득 뽀드득 구두 발자국을 남기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아이들과 빙판이 된 눈길에 자칫 미끄러질라 조심하는 어른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 게 세상인가 보다.  
이렇게 봄이 오고 겨울이 오고 작은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이러면서 한 해가 가고 세월이 한겹 한겹 쌓여간다.이렇게 추운 겨울을 나면서 또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
추위가 한창이어도 땅속에서는 새봄을 위한 우리 눈에 보이지않는 작업들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얼음아래에서도 개울물은 여전히 졸졸졸 흐를 것이다.
눈이 오고 추운 겨울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힘들고 불편해도 참아낼 힘이 있고 조금 더 기다릴 줄 아는 소망이 있다.
이 겨울 온 세상 이미 철들어버린 어른들이 힘들고 어렵다고 아우성을 쳐도 철없는 어린아이들은 하얀 눈이 내리는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니 그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어느 누구 할 것없이 다 우울하고 서글프다면 세상이 무슨 살 맛이 나겠는가? 새해에는 여기저기 좋은 소식들이 덩달아서 터져나오면 참 좋겠다.  
담장위에 지붕위에 소복소복 쌓인 눈처럼 이집 저집 할 것없이 좋은 일들이 덩실덩실 생기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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