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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10.03.21 23:56

큰 별들은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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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별들은 가고…
최 영신(영국, Glasgow거주)

영국의 대문호 T.S.엘리어트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지만, 요즈음 많은 생각깊은 한국사람들에게는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않은 3월이 그런 달이 되어버린 것같다.  종교계의 큰 별이신 김수환 추기경님이 가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종교계의 큰 별이신 법정스님이 세상을 훌훌 떠나셨다.  봄이라지만 여전히 춥기도 하는 이 3월에…
어느 집 서가에 꽂힌 하고많은 책들중에서 유독 내 눈이 가는 책들이 몇권 있어서 빌려왔는데 알고봤더니 몇년전에 읽었던 책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책이었는데, 역시 사람은 가고없어도 그분이 남긴 발자취나 말씀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회자되어 새롭게 사는구나 싶었다.  이제는 평생 무소유와 선택한 맑은 가난의 삶을 살다가신 법정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글들이 더욱 그리워질 것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삿짐 가볍게 한다고 스님이 몸소 보내주신 귀한 책 두 권을 버리지않는 건데…  ‘산에는 꽃이 피네’란 책을 버리기가 몹시 아쉬워서 그속의 멋진 그림들을 얼마나 자주 들여다 보았었는지...  주위에 한국사람은 아무도 없던 외국에서 제일 가벼운 엽서 한장 뎅그라이 남기고 눈물을 머금고 아까운 책들을 버렸었다.  그즈음 스님의 화두같은 ‘버리고 떠나기’란 주제의 글에 몹시 매료되어 내가 그 책들을 여러번 읽고난 후에 버렸으니 스님께서도 아마 나를 용서하시리라.  
스님께서 쓰신 많은 책들을 읽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말하자면 독자편지를 드렸었는데 내게 엽서 답장과 함께 보내주신 책 두 권.  그 책들을 항공소포로 받았을 때 남편의 질투어린 시샘이 바로 엊그제인양 아직도 귀에 맴돈다.  “왜 그 스님이 자기한테 책을 보내주는 거야?”
종교는 서로 다르지만 그런 큰 어르신들이 내가 떠나온 조국에 살고계시다는 것만으로 얼마나 마음에 위안이 되었는지?  세상의 부자들 앞에서는 거칠 것없이 당당하나  억눌리고 소외된 약한 자들에게는 함께 마음 아파해주고 아픔을 보듬어주고 등 두드려주는 큰 별들과 함께 잠시나마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이제는 스님의 텅 빈  충만을 더이상 볼 수 없음에 아쉽다.  소유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서 충만한 삶을 살다가신 법정스님.  빈 손으로 세상에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가는 우리들 삶의 모습을 몸소 친히 보여주고 가신 분이시다.  지금쯤 어느 하늘의 별이 되어 아직도 세상적인 욕심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의 부질없는 허황된 꿈들을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시지는 않을런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이 가고없는 후에 비난을 하는 것은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우는 아니라고 본다.  나는 카톨릭 신자도 아니고 불교신자도 아닌 개신교 신자이지만 여전히 고 김수환 추기경님을 존경하고 돌아가신 지 얼마되지않은 법정스님도 그 삶의 맑음으로 인해서 존경해마지않는다.  돌아가신 분을 비난하기 전에 그분이 남긴 아름다운 자취를 훑어보는 게 오히려 뒤에 남은 자들의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뻔한 이치인 것을…
큰 별들이 가고없는 지금, 어쨌거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또 살아남은 자들로서의 삶의 몫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분들처럼 큰 별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각자 삶의 현장에서 작은 별들이 되어 이 사회와 세상 곳곳의 어둠을 밝히고 따뜻한 등불이 되어주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나하나는 작지만 작은 것들이 모여서 무리를 이룰 때 별무리가 되고 차갑고 냉랭한 것들을 녹여주는 따뜻한 불이 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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