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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신에세이
2010.08.03 02:53

순대를 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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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이가 런던을 다녀오면서 나를 주려고 순대를 사왔다.  
오래전 한국에서 먹어본 이후로 구경조차 못해본 지 한참 되었는데…  
엄마인 내가 이쯤 되다보니 아들녀석은 아직까지 순대를 먹어보지못한 것은 물론이고 본 적도 없었다.  
내가 순대를 아주 좋아했더라면 어떻게든 구해서 먹었을 수도 있었으련만 먹어도 그만 안먹어도 그만이다 보니 아들이 순대구경을 못한 것이다.  
이러다보니 정말 먹는 음식을 앞에 두고 웃지못할 일이 일어났다.
가만, 예전에는 순대를 어떻게 먹었더라?  기억에 기억을 더듬어서 양념된장을 만들고, 넓은 접시위에 순대를 올렸다.  
하긴 그 속에 들어있는 주재료가 무엇인지 안다면 비위가 어지간히 약한 사람들은 물론이고 채식주의자들은 질겁을 할 것임이 뻔하다.  
또 색깔로 보더라도 사실 순대는 별로 먹음직스러워 보이지않는 음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못생겨도 맛만 좋아, 라는 광고가 이래서 생겨났는지도?
언젠가 ‘피쉬 앤 칩스(Fish and Chips)’가게에서 내 앞에 줄을 선 여자분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꼭 통으로 된 김밥처럼 보이는 음식을 사가길래 호기심이 생겨 대체 그게 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여자분이 몹시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냥 그런 게 있다고 말로 해주기에는 좀 그렇다고 얼버무리는 것이 아닌가?  
나중에 가게 주인에게 물어보니 블랙푸딩(Black Pudding)이라고 한국의 순대랑 비슷한 종류의 음식이었다.  
그러고 보니 제법 곱게 차려입은 여자분이, 이 음식은 돼지 피로 어쩌고 저쩌고를 설명하기에는 영 난처했는지도 모르겠다.  물어본 내가 실례였나?
순대를 좀 먹여보려던 내 마음도 모른 채 아들녀석은 순대를 보자마자 손사레를 쳐댔다.  
“엄마, 그거 이상한 냄새가 나니까 빨리 치워요.  똥이야!”
“이 녀석이 똥이 이런 색깔이면 죽을 때가 다 된거야. 먹는 음식 보고 함부로 말하면 안되는 거 알지?”
아들녀석은 순대를 피하려고 자기 음식 접시를 들고 식탁을 떠나 소파로 도망쳤다.
런던에서 만든 순대는 김밥 썰듯이 잘라보니 당면이 생각보다 참 많이 들어있었다.
잘못보면 이것이 꼭 비위를 상하게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기서 구하기 어려운 귀한 음식으로 사다준 친구의 정성을 생각하면 나까지 애처럼 행동하면 곤란했다.
런던의 한국사람 손맛과 한국의 토박이 한국사람의 손맛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어?
물도 다르고 어쩌면 구할 수 있는 재료도 다를텐데…  
“너 한국 가면 이런 음식도 먹을 줄 알아야 되는데…”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 생야채를 잘 먹으니까 나중에 야채쌈에 싸서 먹이면 잘 받아먹지않을까 싶어서 내버려 두었다.
억지로 해서 역효과를 낼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고보면 음식이 한 나라의 문화와 전통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것임에 틀림없다.  
아이가 순대를 보고 ‘똥’이라 하니 내가 이 아이를 잘못 키웠나 싶어 가슴이 쿵 한다.
한국음식을 제법 해 먹인다고 하지만 식품 재료가 너무 빈약한 곳에 살다보니 한국에서는 그리도 흔한 콩나물국도 우리에게는 아주 별미나 다름이 없는데 이를 어떡한다?  
그나저나 순대를 어떻게 설명해주면 자연스럽게 한국에서는 아주 인기많은 음식으로 아이에게 소개해줄 수 있을까?  
‘돼지피’로 만든 음식이라 하면 아이가 기겁을 할 터인데.  
한국에 가서 길거리의 포장마차에서 순대를 파는 아주머니를 보고, 똥을 파는 아주머니라고 코를 막고 놀려대는 일은 없도록 해야하는데. 누가 순대를 만들어서 내게 이런 어려운 과제를 주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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