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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완기의 테마 여행기
2015.09.30 23:44
테마여행가 안완기의 알고 가자 <끌로 뤼쎄>
조회 수 2955 추천 수 0 댓글 0
다빈치의 마지막 숨결이 머문 '끌로 뤼쎄' Le Clos Lucé
왕궁으로 사용되었던 ‘앙브와즈 성’에서 500 미터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적한 시골 풍경과 절벽을 파고 집을 지은 '동굴 집 troglodyte'을 감상하며 걷노라면, 프랑스에 르네상스 문화를 전파해준 ‘레오나르도 다빈치 Léonard de Vinci’가 생애 마지막 3년을 살았던 ‘끌로 뤼쎄’에 다다른다.
평생에 걸쳐 물리학, 역학, 광학, 천문학, 지리학, 해부학, 기계 공학, 식물학, 지질학, 토목공학 등의 분야에 지칠 줄 모르는 연구와 업적을 남기었고, 철학과 예술에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다빈치’의 능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곳이다. 500년 전의 천재와 시공을 초월하여 만나보자!
프랑스와 1세와 다빈치 1515년 왕좌에 오르자마자 이탈리아 정복을 꿈꾸며 원정을 갔던 ‘프랑스와 1세 François 1’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에 대한 강렬한 인상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성을 듣고 프랑스로 초청한다.
1516년 5월 64세의 노령인 ‘다빈치’는 수제자 ‘멜지 Francesco de Melzi’, 충복 ‘살라이 Salaï’와 하녀 ‘마튀린느 Mathurine’를 대동하고 당시 ‘프랑스와 1세’가 살던 ‘앙브와즈 Amboise’에 도착한다.
당시 20세의 젊은 ‘프랑스와 1세’는 왕궁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으며, 특히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끌로 뤼쎄’를 다빈치에게 하사하고 충분한 연급을 지급하여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5세에 아버지를 여윈 왕은 ‘다빈치’를 아버지처럼 존경하고 따르며, 누이 ‘마흐가렛트 Marguerite de Navarre’와 함께 지하 비밀통로를 이용하여 자주 방문하였단다. 아쉽게도 지하통로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왕에게 상납한 세 점의 작품 < 모나리자 Joconde >, < 성녀 안나와 성모자 Sainte Anne et la Vierge >와 ‘다빈치’가 ‘끌로 뤼쎄’에서 완성하는 < 세례 요한 Saint Jean Baptiste >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다빈치의 영향
하지만, '호모랑땡' 고성은 공사를 시작도 못하였고, 다빈치 사후 1519년 ‘샹보흐 성 Château de Chambord’을 건설하면서, 성 내부의 이중 계단 구조는 ‘다빈치’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
‘다빈치’는 3년을 이곳에서 보내며 자신의 평생 연구를 정리하여 1519년 4월 23일 모든 서류와 수기들은 제자인 ‘멜치’에게 남기고, 그의 재산은 충실한 하인과 하녀에게 유산으로 물려준다고 유언장을 작성하고, 1519년 5월 2일 6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낭만주의 시대의 화가들에 의하여 ‘프랑스와 1세’의 팔에 안겨 임종을 맞는 작품이 그려져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자만, 다빈치가 임종하는 날에 프랑스와 1세는 파리 근교의 '쌩 제르맹 엉 레 Saint-Germain-en-Laye' 성에서 행하여진 아들 '앙리 2세'의 유아세례식에 참여하였기 때문에, 임종을 보지 못하였다. 즉. 화가들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작품!!!
현재, 그의 유해는 ‘앙브와즈 성’ 내부의 ‘생 위베흐 교회 Chapelle Saint-Hubert’에 모셔져 있으니, ‘끌로 뤼쎄’에서 가까운 ‘앙브와즈 성’을 방문하는 것도 잊지 말자!
끌로 뤼쎄의 역사 루이 11세의 호위병이던 '에스티엔 르 루 Estienne le Loup'에 의하여 1471년에 완성되고, 1490년 7월 2일 '샤흘르 8세 Charle VIII'가 금화 3,500 에 구입하여 왕실의 사적인 별장으로 사용한다. 특히, 아이들을 병으로 일찍 잃은 '안 드 브르따뉴 Anne de bretagne' 왕비가 슬픔을 달래고자 자주 찾아 기도를 드리던 성당이 보존되어 있다.
‘샤흘르 8세’ 왕과 사촌간으로 왕궁에서 왕비의 섭정역할을 하던 '루이즈 드 사브와 Louise de savoie' 가 어린 두 자녀를 이 곳에서 키우는데, 후일 프랑스 부르봉 가문의 시조가 되는 '앙리 4세'의 어머니 ‘마흐가릿트 드 나바르 Marguerite de Navarre'와 다빈치를 초청한 ‘프랑스와 1세’이다.
어린 시절을 이 곳에서 보냈던 ‘프랑스와 1세’가 다빈치에게 이 집을 하사한 것은 얼마나 그가 다빈치를 존경하였는지 알 수 있는 증거이다.
갤러리 La galerie 붉은 벽돌과 흰색의 응회암으로 건설된 '끌로 뤼쎄'로 진입하는 갤러리는 사용 순찰로로 만들어졌지만, 후에 르네상스 양식의 갤러리로 바뀐 것인데, 중세 요새의 특징인 망루의 좁은 계단을 올라 탁 트인 갤러리에서 바라보는 정원이 일품이다.
건물 쪽으로 이동하면서, 세바스티앙 St. Sebastien'의 조각상이 보이고, 밑으로는 프랑스와 1세의 외가 '사브와 Savoie' 가문의 문장과 '앙굴렘 Angouleme' 문장이 보인다. 한편, 오른쪽의 등촉 위에는 이 집을 사들인 왕 '샤흘르 8세'와 '안 드 브르따뉴' 왕비의 조각이 보인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침실
이 방에서 바라보는 ‘앙브와즈 성’의 모습이 웅장하게 보이고, 현재 다빈치의 유해를 모시고 있는 '생 위베흐' 교회의 자태가 보인다. 이 방에서 왕궁을 바라보며 그린 스케치는 영국의 '윈저 Windsor' 궁에 소장되어 있다.
자료에 근거하여 복원한 침대에서 다빈치가 1519년 5월 2일 사망하였고, 벽면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앗시리아 왕에게 시집가는 '에스더'의 이야기를 담은 타피스리가 보이며, 프랑스와 1세의 상징인 불 도마뱀이 장식된 가구들로 장식되어 있다. 마가리트 드 나바흐 Marguerite de Navarre 의 방 프랑스와 1세의 누이며 부르봉 가문의 시조가 되는 '앙리 4세'의 어머니인 '마가리트 드 나바흐'(1492-1549)는 어린 시절을 이 곳에서 보낸다. 지성과 교양을 갖추고 문학과 예술의 조예도 깊으며 신실한 종교생활로도 유명한 그녀는 앙굴렘, 알랭송, 발르와의 마가리트로 불리는데, 바닥 타일의 이니셜 MA 가 보인다.
'안 드 브르따뉴 Anne de Bretagne'의 예배당 15세기 말엽에 이 성을 구입한 샤흘르 8세가 왕비인 '안 드 브르따뉴'룰 위하여 지은 예배당이다. 정략적 결혼이었지만, 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3명의 자식을 잃었을 때의 슬픔을 달래며 기도하던 장소이다.
정원
아담한 정원을 가로질러 맞은편 건물에는 100석 규모의 영상 실에서 ‘다빈치’의 생애와 정신 세계, 그의 작품 및 업적을 보여주는 56분짜리 비디오를 프랑스어로 상영하고 있다. 6 헥타르의 면적에 아기자기한 이탈리아 양식과 영국 양식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정원 곳곳에는 ‘다빈치’가 남긴 도면을 토대로 IBM 사가 제작한 비행기, 자동차, 헬리콥터, 전차, 낙하산, 회전하는 다리 등등의 40 여 개 발명품들이 전시되고 있어서 아이들 교육용으로 아주 좋다.
여유가 있다면, ‘르와르’ 고성들을 방문하고, 이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어보자! 프랑스의 진정한 여유와 조용함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안완기 프랑스 테마여행, '알고가자' 대표 이메일: algogaza82@gmail.com 홈페이지: www.algoga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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