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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자전거나라와 함께 하는 이탈리아 에세이 3화

깜짝 놀랄 준비를 해주세요, 로마




로마 투어를 시작하기 전 손님들께 가장 처음 이 질문을 드립니다.


“로마에 왜 오셨나요?” 수 많은 대답들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답은 나이가 지긋하셨던 한 아버님의 대답입니다. “로마, 그것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나요?”


그 이름만으로 우리가 이곳에 서있음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되는 곳 로마입니다. 하지만, 처음 로마의 중앙역 떼르미니에 도착해 역을 나서는 순간 그 누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막연하게 느낌이 옵니다. ‘이 도시 결코 친철하지 않구나.’


왠지 로마라는 도시는 기차에서 내려서자마자 눈앞에 웅장한 유적들이 펼쳐지고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면 원빈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고 강동원의 얼굴을 한 거지가 구걸을 하고 있을 것만 같지만, 현실의 눈앞에는 유적도 아닌 주제에 심하게 세월의 흔적을 어필하고 있는 낡다 못해 꿰제제한 건물들이 펼쳐지고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은 불친절하고 길에서 만나는 거지를 보면 그냥 보는 순간 딱, 거지구나!! 느낌이 오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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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단 하나의 결론으로 도달하고 맙니다.


‘조상 잘 만나서 잘 먹고 잘사는 것들.’  종종 투어를 하다가 아이들에게 부모님들께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시는 걸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꼭 이런 말씀 드립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 아이들은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분명 로마에는 많은 유적들이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로마 유적의 2000년의 나이를 생각한다면 ‘남아있다’ 가 아니라 ‘남겨졌다’가 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200번의 강산이 변하는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했지 않을까요?


유적의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보다 유적을 살려내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언제나 희생이 따르게 되죠. 그리하여 로마인 유적 위에 삶의 터전을 잡은 그들의 후손들은 변화를 멈추고 느리고 불편한 삶을 감수하기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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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집 앞에는 공사중인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8년 전 이 동네에 살기 시작하던 시점에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땅을 파자 땅 아래 유적이 나왔고 결국 8년이 지난 현재 제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동안 그 곳에는 단 한 층의 건물도 올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8년 전 단 두 개 라인의 로마의 지하철은 드디어 세 번째 라인을 추가하기로 결정했고 공사시작과 동시에 유적이 발견되고 여전히 공사완료 시기는 오리무중입니다.


로마의 via giulia라는 거리에 가면 대부분의 상점에 벽보가 붙어있습니다. 내용은 “이 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입니다. 이 거리로 차가 진입하는 입구에 10년 전 지하주차장 공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시나 유적들로 공사는 늦어지게 되고 10년간 차가 다니지 못하게 되자  자연스럽게 길은 죽어가기 시작했고 상점들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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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큰 이러한 사례들을 듣게 되면 과연 유적들이 그 후손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고 있는 것인가의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한번은 투어에서 한국의 고분을 복원하시는 분을 만난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500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일민족으로 한반도의 땅에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야 말로 파면 유적일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렇게 발굴된 대다수의 유적이 잘 지켜지지 못했거나 옮겨져 버려 그 연구가 많이 부족합니다. 결국은 이전의 모습을 알기 위해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 나라의 유적을 참고하여 복원도를 만들어야 하기도 합니다.”


이쯤 되면 로마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처절할 정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탈리아의 박물관을 관람하다 보면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관통하며 너무나 찬란하게 꽃피우던 예술들이 19세기 중반을 넘어가며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나라들로 그 중심이 옮겨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치 19세기부터 멈추어 버린 듯 말입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예술을 시작할 때 이탈리아는 지키는 학문에 눈을 돌립니다. 바로 복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려놓음이 아니라 변해감 역시도 역사의 한 모습이기에 지금의 모습 그대로 지킴에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적복원은 무너지지 않는 선까지만, 보수 된 부분은 꼭 티가 나게 실제 유적과 구분되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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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후손들은 그 가치를 안다고 하나, 로마라는 이름에 이끌려 이 곳에 온 우리들은 다른 난관에 봉착합니다. 이제 것 보았던 로마에 관련된 영화들, 읽었던 로마에 관한 글들은 모두 과거의 화려한 로마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우리는 2천 년의 시간이 지나간 후의 로마를 만나게 됩니다. 화려한 로마의 모습은 거대하고, 온 여행자들 앞에 세월은 단단한 대리석도 부서뜨리고 마모시켜버려서 발목까지만 남겨 놓았습니다.


결국 여행자들은 그 발만 보고 키가 얼마나 컸는지 얼굴은 어찌 생겼는지 알아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나머지 조각은 더 이상 없다는 겁니다. 당혹감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로마를 묘사한 수 많은 글들이 있지만 시오노 나나미의 “이탈리아에서 보내온 편지 1권”의 첫 페이지의 글이 저에게 가장 와 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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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로마가 불멸의 콜걸처럼 느껴진다. 스스로 무엇 하나 노력하여 생산할 줄 모른다. 그렇다고 돈 주고 뒷바라지 해주는 남자가 부족해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창부. 로마는 그런 자유로운 여자만이 가지는 매력으로 언제나 남자 마음을 흔들어 놓는 그런 도시다. 언제나 남자의 사랑을 받아왔고 사치의 극치를 맛본 여자처럼, 그녀의 뒤에 따라오는 파리나 런던이라는 이름의 애송이에게 인기가 모여도 별로 슬퍼 보이지 않는다. 남자들의 관심을 사려고 문화의 중심은 여깁네 하고 선전하기에 긍긍하지도 않는다. (중략) 거듭 말하지만 로마는 인텔리가 흡족해하는 도시는 아니다. 이 도시의 매력을 알기에는 시골내기가 가진 소박한 열정과 호기심을 필요로 한다. 스스로의 본질을 충분히 고려한 후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 이의 정열에는 답해주지만, 시대의 첨단을 간다느니, 전위 따위나 부르짖는 사람에게 로마는 시큰둥하니 돌아서서 모른 척 하며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자..로마를 제대로 보고 싶으신가요? 그러면 이 도시에 대한 선입견, 편견, 기대감 조차도 잠시 접어 둡시다.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파이브 데이즈”에 이런 대화가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제일 간절하게 바라는 게 뭔지 알아? 깜짝 놀랄만한 일이야. 깜짝 놀랄만한 일이 한 두 가지 있었으면 좋겠어”
“깜짝 놀랄 만한 일을 찾아내는 방법은 간단해. 깜짝 놀랄만한 일에 대한 경계심을 풀어버리는 거야”


로마는 알고 있습니다. 굳이 자신을 보여주려고 꾸미지 않아도 알아줄 사람은 안다는 사실을요. 오죽하면 시오노 나나미가 남자 중에 남자들인 괴테나 스탕달이 알아서 그 매력에 빠져서 홍보해주니 단체객 부족할 일은 없다라고 했겠습니까! 로마에 놀라고 싶다면 경계심을 풀고 들여다 보도록 합시다. 이 도시가 진짜 멋있어지는 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당신이 경계를 풀고 다가가는 순간 이 도시는 그 진짜 매력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긴장을 풀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이전에 한번도 본적 없는 스카이라인을 만나게 됩니다. 2000년 전 로마 목욕탕 유적이 현대의 피잣집 건물 사이에 끼여 있는 즐거운 만남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마를 여행하는 여행자 분들께 로마를 느끼는 두 가지 유적 코스를 추천한다면 포로 로마노와 수도교입니다. 포로 로마노,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바로, 그 모든 길이 모이던 곳입니다. 로마의 시작부터 로마제국의 멸망까지 문화, 정치 그리고 공공시민생활의 중심지입니다.


국회의사당, 법원, 시민광장과 대형 쇼핑몰, 그리고 대형 경기장, 콜로세움까지…. 유럽대륙에서, 아프리카에서, 터키까지 세상의 반을 지배했던 로마제국의 수도, 그 곳에서 가장 핵심 정치, 행정, 사법, 종교, 문화, 금융의 중심지 였으니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을까요. 포로 로마노 중앙의 광장은 지금 뉴욕의 타임스퀘어를 상상하시면 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이 곳에서 만들어진 법은 세상의 법이 되고 이곳에서 만들어진 화폐가 세상에 유통되고 이 곳에서 향유하는 문화는 세상의 유행이 되며 세상의 정보가 모이고 인재들이 모이고 전투를 끝낸 로마 군대의 개선식이 열리고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들이 펼쳐지던 무대가 우리 눈앞에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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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투어를 하는데 포로 로마노의 한 가운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신전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이 곳은 원로원들에게 살해당한 카이사르의 시신을 화장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커플 분께서 무척 놀라면서 서로 심각하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계시더군요. 잠시 사진 찍을 시간을 드리고 무슨 일인지 물어보자 대답하시길, 신혼부부인 두 분은 전날 포로 로마노에 들어가셨다가 심하게 싸움을 했다고 합니다. 날은 덥고 서로 신경은 날카로운데 하루 종일 돌 바닥을 걸어 다니다 보니 체력은 바닥이 나고 결국 심하게 다투고 난 뒤 지친 마음에 투어를 신청하고 나오셨노라고 화해도 못하고 서로 대화도 없이 종일 따라다녔는데, 어제 심하게 싸웠던 그 자리가 바로 카이사르를 화장한 자리였다고. 하루 아침에 신혼여행 최악의 자리가 최고로 기억에 남는 장소로 바뀌었다고 말입니다. 몰랐다면 포로 로마노는 그냥 힘들고 지치는 땡볕의 돌무더기로만 기억 되었을 거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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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카이사르의 신전 앞에 나있는 길을 가만히 걷다 보면 모퉁이에 돌길이 움푹 파여진 모습을 보게 됩니다. 길이 꺾이다 보니 수레바퀴의 무게가 유독 그 자리에 쏠리게 되어 단단한 돌길에 바퀴자국이 나게 된 것입니다. 셔터스피드를 길게 하고 사진을 찍으면 한 장의 사진 안에 그 시간의 모든 흐름이 찍히게 되죠. 이 길을 걷고 있노라면 기원전 753년도 로마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셔터스피드를 무한대로 두고 찍고 있는 사진을 찍고 있는 착각이 들곤 합니다.


포로 로마노가 여행객으로 북적이는 유적이라면 로마 중심에서 8km 벗어난 들판 위 서있는 아름다움을 넘어 고고해 보이기까지 하는 클라우디아 수도교는 한적해 보일 정도입니다. 이 대단한 건축물은 대부분의 여행책자에는 소개가 되어 있지 않다 보니 대다수의 여행자들이 존재조차도 잘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로마센터에서 벗어나 로마사람이 사는 주거 지역 쪽에 위치해 있다 보니 개인 여행객은 발걸음 하기가 쉽지도 않죠.


기원 후 53년 8월 1일 로마 4대 황제 클라디우스의 생일을 축하하며 완공된 로마의 9번째 수도입니다. 총길이 68.9km, 지하 수도는 53.8km, 지상 수도는 15.1km, 로마시에서 14km 떨어진 호수에서 로마시로 물을 보내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로마의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수도교입니다. 그 어떤 기교나 장식 없이 완벽하고 정교하게 이어지는 아치가 만들어내는 감동은 가슴이 벅찰 정도 입니다. 그러나 그 감동을 극대화 시켜주었던 것은 그 주위의 풍경이었습니다. 관광객들은 찾아 볼 수 없고 유적 너머로 펼쳐지는 들판과 로마 소나무, 무심히 조깅을 하는 사람들 산책 나온 사람들, 제국은 멸망하였으나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마치 태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어우러진 유적들. 몇 주전 날씨가 너무나 좋아 가족이 함께 수도교로 산책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놀라움을 떠나 부러울 정도였습니다.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로마 조상들은 과연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로마와 그들의 후손들의 안식처가 된 로마 중 과연 어느 모습을 더 흐믓하게 바라볼까 궁금해 졌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모습이든 두 모습 모두 자신들의 터전에 있는 조상이 남겨준 유적들을 소중히 여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질투심 같은 기분도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조상 팔아먹고 산다고 욕하는 것도 이 질투심의 발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눈에는 돌멩이지만 그들의 눈에는 보석으로 보이는 능력을 타고 난 것일까요? 심지어 그 보석을 팔기 위해 세공 하는 것이 아니라 원석 그대로 그 가치를 알아주는 이들에게만 내어 보여주는 쿨함까지 가지고 말입니다.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해야 남도 나를 사랑해준다는 말처럼 우리가 그 가치를 알고 지켜간다면 누구나 그 마음을 알아줄 거라는 자신감마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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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가이드를 시작할 때 선배님께서 해주신 말입니다.


“로마는 하루가 부족하다. 하루를 봐도 하루가 부족하고, 일주일을 봐도 하루가 부족하고, 한 달을 봐도 하루가 부족하다.”


지난 달 투어를 받으신 한 손님께서 홈페이지에 남겨주신 글입니다.


‘25년 전의 이탈리아와 지금의 이탈리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조금 더 깨끗해졌다는 것과 그 당시 아이였던 꼬마가 어른이 되어 결혼을 했다는 것 정도일 겁니다’


참 변함없는 로마임에도 이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하루가 부족한 도시입니다. 하지만 귀 기울이고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그저 불친절하고 불편한 어서 떠나고 싶은 도시일 뿐입니다. 로마를 떠날 때 불편한 기억만 가지고 가고 싶지 않다면 지금 이 순간, 로마에 발을 내딛고 있는 바로 이 순간만큼은 경계심을 풀고 깜짝 놀랄 준비를 해주세요. 마음을 열어준 당신에게 로마는 당신이 꿈꿔온 로마 그 이상을 보여 줄 테니까요.



글,사진 : 유로자전거나라 김민주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www.eurobik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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