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자전거나라와 함께 하는 영국 에세이 1화
지성인의 산실과 영국 왕실의 전통
옥스포드와 윈저
영국 지성과의 대화-옥스포드 대학교
“가이드님은 옥스포드 대학교에 몇번이나 오셨나요?”
투어 손님들께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럼 난 웃으면서 대답하곤 한다.
“학생들보다 제가 옥스포드 대학교를 더 자주 올걸요. 명예학생증이라도 받아야겠어요.”
그리고는 대략 횟수를 세어보니 약 1,000번 이상이다. 옥스포드가 질릴만한 숫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난 ‘옥스포드’라는 단어만 들어도 흥분되며 입 꼬리가 올라가고 미소가 지어지며 잠자고 있던 세포들이 깨어나는 듯 하다. 이유가 뭘까? 도대체 옥스포드 대학교의 무엇이 나를 이렇게 기분좋게 만드는 걸까?
옥스포드는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지역에 위치해 있다. 옥스포드셔의 중심도시이자 38개의 컬리지들을 품고있는 UNIVERSITY OF OXFORD 가 있는 대학도시이다. 옥스포드 대학은 영어권의 가장 오래된 대학으로 8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대학교이다. 영국 수상 26명(현재 수상인 데이빗 카메론까지), 50명의 노벨상 수상자, 약 30명의 세계 지도자 그리고 120명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배출해 낸 세계 최고의 명문 대학중 하나이다.
옥스포드 출신의 유명인들은 셀수 없이 매우 많다. 철학자, 과학자, 경제학자, 정치인, 소설가… 그중 특히 나의 관심을 끄는 두 사람이 있다. <반지의 제왕>의 작가 J.R.R. 톨킨과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S. 루이스이다. 이 두 명이야 말로 판타지의 대명사이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판타지는 우리 무의식의 표현이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가 억압하는 영역,
즉, 무의식의 영역과 꿈의 세계를 가장 쉽게 반영한다.’
1930년대 옥스포드의 ‘The Eagle and Child’라는 펍에서는 매주 화요일 C.S.루이스가 이끄는 독서모임 ‘잉클리즈’의 회원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목요일 밤에는 모들린 컬리지 루이스의 넓은 방에서 회원들이 모여 낭독의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 J.R.R. 톨킨이 낭독한 글은 훗날 <호빗>과 <반지의 제왕>이라는 소설로 출판되었다. C.S. 루이스와 J.R.R. 톨킨은 옥스포드에서 우정을 쌓아가며 문학에 대한 열정적인 대화와 지식을 공유함으로써 작가로서의 역량을 쌓아갔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자신의 의견을 어필함으로서 바로 반지의 제왕과 나니아연대기 같은 대작이 태어나게 되었고 이것이야 말로 옥스포드의 토론식 수업이 갖고있는 가장 큰 힘이 아니가 싶다.
대학 UNIVERSITY는 라틴어 UNIVERSITAS(집단, 모임)에서 유래한다. 즉, 여러사람들이 모여서 자기들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수 있었던 장소가 대학의 시작인 것이다. 중세시대 대학에서는 필기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책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나누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 옥스포드 대학으로 이어져 왔고 이곳에서는 날마다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이들에게는 공부란 언제, 어디에서든, 누구와든 할수 있는 것이다. 옥스포드는 아직도 교수와 학생들이 일대일 수업을 진행한다. 이 일대일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은 자신들이 공부한 내용을 설득력있게 교수에게 어필한다. 수업 외에도 기숙사에서, 밥 먹는 식당에서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과 서로 토론하는 일이 일상적 교류인 것이다.
각 컬리지의 저녁시간. 학교 식당에서 정장을 한 학생들이 모여 함께 저녁을 먹는다. 서로 다른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모이다 보니 이야기의 주제 또한 다양하다. 학생들은 혼자 공부하기 보다는 다양한 관점과 지식을 서로 나누고 공유하면서 사고의 폭을 넓힌다. 바로 이런점이 옥스포드가 지향하는 공부 방법이다. 옥스포드가 기숙을 지금까지 고집하는 이유이고 정장을 입고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이유이다. 고대 대학의 의미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대학이 바로 옥스포드 인 것이다.
나는 운 좋게도 옥스포드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 학생을 알고 있다.
내가 지원이를 만난건 2007년 겨울이었다. 어느 추운날 투어를 위해 미팅장소에 도착하니 3명의 가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모님과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었다. 옥스포드 투어내내 지원이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4년 뒤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날도 옥스포드 투어를 위해 아침 일찍 미팅장소에 나갔고 어느 대학생이 나를 보고 “형!” 이라 부르고는 인사하며 반갑게 아는척을 했다. 바로 지원이였다. 중학생이던 지원이가 대학생이 되어 나를 다시 찾아주었고 바로 옥스포드 대학생이 된 것이다. 이렇게 반가울수가… 내가 옥스포드 투어를 한 중학생이 옥스포드 대학생이 되다니…
그 이후 지원이와 종종 만나면서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 본인이 선택한 공부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열정을 쏟는 모습을 보며 나의 친동생처럼 자랑스럽고 뿌듯했다.
지원이는 이번에 석사 1년을 마치고 잠시 한국으로 귀국했다.
떠나기전 지원이에게 옥스포드 대학에서 공부해본 소감 등을 질문했고 그의 답변은 다른 20대의 한국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고민이기도 한 동시에 20대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다음은 나와 지원이가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옥스포드에서 공부해본 소감은?
해외 명문대에서 공부한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굉장히 수준 높은 강의를 듣고 훌륭한 교수님들께 가르침을 받으며 최고의 환경에서 공부할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사실 세계 어느 대학을 가든지 배우는 내용 자체는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무엇이 명문대를 만드는 것일까요? 저는 세계 여러 명문대, 특히 옥스포드 대학에서는 단순히 학생들에게 전문 지식을 가르치고 끝나는 것이 아닌 학생들이 ‘학문을 탐구하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생각합니다.
옥스포드 신입생들은 1학년때부터 세계적인 석학들과 1대1 수업을 시키며 진정한 학문의 영역으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아주 새로운 공부 방법을 습득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꿈은?
지금까지는 석박사 과정후 교수가 되는 꿈을 위해 달려왔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요즘들어 많이 고민중인 질문입니다. 고등학교와 학부시절에는 마냥 부모님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걸어 왔지만 점점 사회에 대해 배워갈수록, 다른 많은 직업에 대해서도 알게 될수록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상황입니다. 어떤일이 적성에 맞고, 사회에 뜻깊은 일이 될수 있으며 제 전공 과목을 최대한 살릴수 있는지 아직도 많이 고민중이며 이것은 앞으로 제가 옥스포드 석사과정을 마무리 하면서 나름대로 풀어야할 ‘숙제’라고 할수 있습니다.
얼마전 옥스포드 대학교 총장이 한국을 방문하여 강연한 내용이 떠오른다. “고등교육의 국제화라는 것은 대학에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뿐 아니라 학생들을 더 넓은 세계로 개방시켜주는 기회이고 새로운 경험으로 마음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나는 항상 옥스포드에 올때마다 좋은 기운을 받는 것같고 인생을 더욱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INSPIRATION(영감, 자극)과 MOTIVATION(동기부여). 이 두단어로 옥스포드를 정의한다.
이런 곳에 앞으로도 자주 올 수 있는 나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살아 숨쉬고 있는 영국 왕실의 역사-윈저성
‘영국’하면 떠오르는 많은 수식어 중 가장 특별한 점은 ‘여왕이 있는 나라’ 이지 않을까 싶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재미있게도 여왕이 집권하고 있을때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16세기 영국이 항해시대를 주도할 수 있도록 준비한 엘리자베스1세 여왕, 19세기 산업시대를 이끌며 세계 최강대국으로 발전시킨 빅토리아 여왕, 21세기 창조문화 사업으로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있는 영국. 그 영국의 아이콘인 엘리자베스2세 여왕까지.
윈저성은 현 엘리자베스2세 여왕까지 39명의 영국 국왕의 성으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 현존하는 성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성 내부에 살고 있어 사람들이 살고있는 온기를 느낄수 있는 따뜻한 성이다.
윈저성은 11세기 후반 정복왕 윌리엄에 의해 방어목적인 요새로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17세기 찰스 2세에 의해 영국의 ‘베르사유 궁전’이라는 슬로건으로 내부가 화려하게 꾸며졌다. 찰스2세의 아버지인 찰스1세는 절대왕정을 꿈꾸며 독재정치를 펼쳤다. 그러다 결국 1642년 의회파에서 혁명을 일으켰고 찰스1세는 처형당했다. 그후 집권한 찰스2세는 땅에 떨어진 왕권을 다시 살리기 위한 일환으로 윈저성 내부를 화려하고 웅장하게 새단장한 것이다.
윈저성의 총 면적은 10.5헥타이다. 1헥타가 대략 3000평이라하니 대략 그 크기를 짐작할수 있다. 1992년에는 윈저성의 빅토리아 소성당을 조명하고 있던 스포트라이트가 과열돼 큰 불이 났다. 200여명의 소방대원이 15시간 동안의 사투 끝에 화재를 진압했다. 다행이 성 내부의 많은 장식품들은 안전하게 대피를 시켰지만 성 건물 자체에는 상당한 피해를 주었다.
나는 윈저성에 올때마다 항상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위치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성 안은 연일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는데 영국의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실제 주거지로 사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화에서처럼 윈저 시민들이 여왕과 같이 숨쉬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도대체 왕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영국 사람들에게 자주 물어본다 “지금까지도 왕정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재미있는 대답이 돌아온다.
“왕은 예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변화하는 것에 따라 왕의 역할을 달리했을 뿐입니다. 예전처럼 절대군주가 아닌 군주의 힘을 법으로 제한하는 입헌군주제로 바꾸어서 현대에 맞게 합리적으로 바꾼 것이지요.”
역시 영국 사람들은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을 없애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영국 왕실은 존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현대에는 절대왕권 시대처럼 왕권을 위해 권력다툼을 하지 않는다. 왕으로서의 특권보다는 의무가 더욱 부각되고 있어서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다. 예전의 군주들보다 특권은 적어졌는데 훨씬 더 바빠지고 다양한 일에 참여해야만하고 국민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더욱더 요구한다. 또한 개인 생활이 중요해진 현대에 왕족의 생활은 전 세계에 공개되고 왕실이 원하지않는 비밀들까지 폭로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이런 영국왕실을 보면 한편으로는 안스럽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윈저성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성의 화려하고 값비싼 물건들을 보며 감탄하고 이것들을 소유하고 있는 왕족들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일상의 소소함이 주는 행복을 포기해야하지 않을까?
윈저성은 나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행복은 마음속에 있고, 작은 것을 행하며 이룰때가 진정한 행복이라는.
윈저성은 그런 생각을 들게 하는곳이다.
글,사진: 유로자전거나라 윤상인 가이드
출처: 유로자전거나라 www.eurobik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