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자전거나라와 함께 하는 체코 에세이 2화
찬란한 슬픔의 도시, 프라하
매년 1억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 프라하를 찾았던 사람들은 떠날 때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고 꼭 다시 오고 싶은 도시라 말하며, 앞으로 프라하를 찾을 사람들은 유럽의 낭만을 느낄 수 있고 이름만 들어도 설레임을 느끼게 하는 도시라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프라하를 어떠한 글로 표현할 수 없겠지만 내가 쓰는 짧은 글이 모두에게 전해지길 바라며 프라하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본다.
체코 민주화의 산실 바츨라프 광장 (신시가 광장)
체코의 수호성인 ‘성 바츨라프’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광장
바츨라프 광장(신시가 광장)의 심장부분, 광장의 중앙에는 원형의 화단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광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 화단으로 볼 수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곳에는 두 명의 묘비가 놓여 있다.
그 두 사람은 얀 팔라츠와 얀 자이츠이다. 한 번쯤 들어봤을 체코의 민주 자유화 혁명이었던 ‘프라하의 봄’ 실패 후 “내 한 몸 희생으로 나라의 정신을 깨울 수만 있다면 난 그것으로 더 이상 원하는 것이 없다. 그것으로 나는 만족한다.”이와 같은 말을 남긴 후 까를 대학교 학생이었던 얀 팔라츠가 분신자살을 한다.
얀 팔라츠 사건 후 약 한달이 지난 후 학교 후배였던 얀 자이츠는 선배 팔라츠가 죽었던 같은 장소에서, 팔라츠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영원히 기억되기를 원하며 분신 자살을 한다.
두 학생의 희생은 체코인들의 마음을 움직여 소비에트 연방에 맞서 힘든 싸움을 하게 했고, 결국 독립을 얻어낸다. 그것이 유혈사태 없이 부드럽게 민주화로 넘어간 “벨벳혁명”이다.
벨벳혁명과 체코독립이 이루어진 곳이 바츨라프 광장 즉 신시가 광장이다.
아르누보와 사랑에 빠진 남자 알폰스 무하
어디선가 한 번씩은 보았던 그림일 것이다. 이 그림이 무하의 작품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루누보는 프랑스어로 새로운, 신개념의 예술을 뜻하는 단어이다. 영어로 new art라 부른다.
이 아루누보를 세상에 알린 남자가 있다. 바로 체코의 민족화가 “알폰스 무하”이다. 체코 모라비아 지방 이반치체에서 태어나 성인이 되어서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된다. 이때 그는 당시 프랑스 최고의 배우였던 운명의 여인 “사라 베르나르”를 만나게 된다. 사라 베르나르를 만나 프랑스 최고의 극장 “물랑루즈”의 모든 무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알폰스 무하에게 온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무하는 최선을 다해, 뛰어난 무대 디자인 실력을 보여준다. 물랑루즈의 무대 디자인이 대성공을 거두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며 승승장구하던 그였지만 항상 마음속에는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다. 항상 고민을 하던 무하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그는 프랑스를 떠나 고국 체코로 돌아오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닌 나라를 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렇게 무하는 나라를 상징하는 민족적 그림을 그리다 독일 나치에게 체포되고 심한 고문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처음에는 운명의 여인 사라 베르나르를, 그 후 사랑하는 딸과 와이프를, 그리고 마지막은 무하가 가장 하고 싶었던 나라를 위한 작품을 그린 체코 최고의 화가이다. 무하 그림의 특징은 원을 중심으로 그려진다는 것, 기하학적 문양, 여성들을 여신의 모습과 비교될 정도로 아름답게 그리는 것이다.
프라하의 심장 구시가
프라하 중심 중의 중심은 바로 구시가이다. 구시가는 다른 이름으로도 많이 불려진다. 구시가 광장, 얀 후스 광장, 작은 건축의 박물관, 관광객들의 쉼터 등등. 구시가는 악사들의 연주, 매시 정각이 되면 쇼를 하는 천문시계, 시대별 건축물까지 한 곳에 집중 되어 있는 공간이다.
그 중 광장 중심의 석상 하나가 눈길을 끈다. 광장의 한 가지 이름을 갖게 한 얀 후스이다.
종교개혁을 생각하면 대부분 마틴 루터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루터보다 100년 먼저 종교개혁을 외친 사람이 바로 얀 후스이다. 그러나 개혁은 성공하지 못하고 공개 화형으로 죽게 된다. 화형 당하기 전 그때 그가 마지막으로 한 유언이 “진실을 생각하고 진실을 말하고 진실을 행하라” 였다.
또 하나의 이름은 작은 건축의 박물관이다.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양식의 건축물들을 모두 볼 수 있는, 말 그대로 건축의 박물관이다.
이 아름다운 구시가 광장의 모습을 보고 너무 살고 싶어했던 사람이 있다. 바로 북한 지도자였던 김일성이다. 김일성은 프라하를 좋아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체코 프라하를 방문했을 때 “한번 꼭 살아보고 여유롭게 즐기고 싶은 곳입니다”라고 이야기한 곳이 바로 프라하의 심장 구시가 광장이었다.
천년의 역사 비따 대성당
비따 대성당은 10세기(925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20세기(1929년)에 완성된 천년의 역사가 그대로 담겨 있는 곳이다.
비따 대성당은 길이 124 m, 높이 96 m에 이르는 웅장한 성당이다. 성당의 지하에는 체코 역대 왕의 무덤이 있으며 내부에서는 체코가 자랑하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만들어진 환상적인 벽면을 볼 수 있다.
비따 대성당이 있는 대통령 궁을 부를 때는 가슴 아픈 이름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악의 꽃’이다. 이런 이름이 있는 이유는 성당을 감싸고 있는 건축물 때문이다.
1700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을 때, 오스트리아인들은 프라하에서 가장 높은 산에 있는 대성당의 좋은 기운이 프라하로 내려가는 것을 원치 않아 성당의 주변을 막을 수 있도록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나라에 쇠말뚝을 박았던 것과 유사한 이유로 만들어진 건물이 대통령 궁이다.
현 체코 대통령은 아직도 그 대통령 궁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여전히 그곳에서 업무를 보는 이유는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고 두 번 다시는 이런 일들을 격지 말자”라는 뜻으로 건물을 훼손하지 않고 현 대통령의 직무실로 그대로 사용한다. 이것이 아픈 역사를 받아들이는 체코인들의 마음이다.
프라하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 파리의 에펠탑과 함께 유럽의 3대 야경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프라하의 야경이다. 프랑스의 에펠탑,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 야경보다 화려한 맛은 없지만 초연한 빛의 프라하 야경은 다른 나라는 따라 할 수 없는 프라하만의 스타일과 개성이 있다.
낭만과 예술이 공존하고 중세의 고풍스러움이 남아 있는 도시, 프라하. 아름다운 야경과 프라하만의 매력을 찾아 지금도 수많은 여행자들이 찾아 오는 것은 아닐까?
글,사진 : 유로자전거나라 고성필 체코 지점장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www.eurobik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