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자전거나라와 함께 하는 그리스 에세이 1화
신들이 갖고 싶어 했던 도시 아테네! - 1
‘후~우!’ 파르테논 신전의 겉옷을 벗기고 감상할 때의 그 황홀함을 잊을 수 없다.
마치 사랑하는 이와 속삭이는 매 순간이 설레는 것처럼….
지금까지 살아 온 인생의 반이 되었던 시점. 그리스에 처음 도착하면서의 첫 인상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현재 사용하는 아테네공항은 처음 올 때만 해도 아테네 시내에서 약 10 Km 거리에 바닷가를 끼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쪽빛의 에게해와 공항주변에 있는 회색빛의 낮은 주택들….
서양문명의 시작이며 신화의 나라라는 것을 어렴풋이 가늠하고 있던 나라에 오게 되었고, 비록 회사일로 그리스를 오게 되었지만 궁금하게 여기던 나라인 만큼 시간이 될 때마다 그리스를 보려고 했다.
4개월의 긴 출장을 마무리하고 돌아가 생활의 전선에서 열심을 내다가 운명과 같이 다시 찾게 된 그리스는 총각 딱지가 떨어지며 신혼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곳이다.
3년 계약을 마치고 돌아갈 무렵에는 어느덧 4식구가 되었고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조금 더 외국 생활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계약을 연장했던 것이 이제는 무려 25년에 들어서면서 나에게는 제2의 고향이 되었다.
그리스 인구는 약 1,100만 명에 크기는 우리나라의 1.3배 정도이고 교민의 수는 지사와 공관에 근무하는 인원까지 모두 합쳐서 320여 명 정도이다.
기업의 지사 발령으로 그리스에서 생활하는 분들은 누구나 처음에 상당히 힘들어 하는데 가장 큰 요인은 일의 속도가 갑자기 느려진다는 것과 시간의 제약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때 즈음에는 그리스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 분들이 많다.
실제로 그리스에 정착하는 분들도 있고 노후에 꼭 다시 와서 살고 싶다는 분들이 있다.
이런 마음이 들게 하는 그리스의 매력은 무얼까?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그리스
-언제 오셨어요?
“어제 밤늦게 들어 왔습니다.”
-피곤하시죠?
“공항 도착시간이 늦어 걱정되어 비행기에서 옆자리의 그리스인에게 호텔로 가는 방법을 물었는데, 이야기하다 나중에는 자신의 차가 공항 주차장에 있으니 직접 데려다 주겠다는 거예요. 자기가 가는 방향과 같은 방향에 있다고…. 그래서 결국 그리스인의 차를 타고 호텔에 잘 도착하고 고마워서 사례를 하려니 사양하면서 그냥 가더라고요. 그리스 사람들 다 이래요?”
-친절한 그리스인을 만나셨네요. 남의 나라에 처음 도착하시면서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 나라에 대한 인상이 확 달라지죠?
“그럼요. 지금 하나도 안 피곤합니다. 하하하~. ”
물론 사람 사는 곳이라 별 사람이 다 있어서 다른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처럼 좋은 첫 인상을 갖게 된다면 그 나라에서는 흐뭇한 기분 좋은 여행이 될 것이 확실하다.
아테네에서는 아크로폴리스를 가장 먼저 찾게 된다.
아크로폴리스로 바로 올라가는 방법도 있지만 천천히 음미하면서 전체적인 모습을 보려면 아크로폴리스를 마주하는, 공원처럼 나무가 많은 필로파푸스 언덕에 올라가면 좋다.
전혀 입에 붙지 않는 지명인데 ‘필로’는 ‘좋아하는’, ‘파푸스’는 ‘할아버지’란 뜻이다.
시리아 출신으로서 로마시대에 아테네의 최고행정관으로 있었던 분으로 본명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안티오쿠스였는데, 할아버지를 너무 좋아해서 또는 할아버지와 같이 푸근한 인상이었다 해서 붙은 그의 별명이 지명이 되었다.
지긋한 중년들과 함께 이 언덕에 올라오게 되었는데, 1969년 내한 공연에서 오빠부대를 만든 영국 가수 클리프 리차드 주연의 영화 ‘Summer Holiday’ 이야기를 하며 잠시 영상을 보여드렸다.
중년부인은 젊었을 때 리차드의 열렬한 팬이었는지 이 언덕에서 리차드가 부르는 노래를 음미하며 훌쩍 몇 십 년을 거슬러 올라 소녀가 된 모습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흔적과 함께 아크로폴리스를 보며 분위기에 심취한 모습이었다.
그리스어로 ‘빠뿌스’(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빠뿌~하고 되뇌어 보면 아크로폴리스의 전경과 함께 더 포근한 느낌이 드는 무척 매력적인 곳으로 난 이곳에 자주 들러 우뚝 솟은 채 2500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파르테논신전을 멀리서 감상하곤 한다.
그런데 이 언덕은 도리아식으로 지어진 최고의 건축물 파르테논 신전이 파괴되는 안타까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필로파푸스 언덕에서 바라 본 아크로폴리스
지혜의 여신과 철학가의 공존
언덕을 내려가며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소크라테스가 갇혔던 감옥이 나온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생각나는 거 있으세요? 하면 ‘너 자신을 알라’, ‘악처’, ‘못 생겼어요’ 등의 대답들이 쏟아진다.
여행의 목적을 부여한다면 여러 대답들이 있지만 결국 행복한 삶을 만들려는 노력의 한 단편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무지’에 대해 경계했던 소크라테스는 참된 행복은 무엇인가를 아는 것으로 그의 생각을 정리했는데, 우리가 알듯이 지식이란 직간접적으로 부딪히며 체득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여행은 지식을 쌓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된다고 볼 수도 있다.
아테네 황금기에 살았던 인물로 그 시대의 기득권자들로부터 질시를 받았던 소크라테스가 직접 민주주의에도 모순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으로, 민주주의를 이끌어 가던 지도자들의 눈 밖에나 재판에 회부되어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어쩌면 그가 주장했듯이 그 모순으로 인한 희생양이 되지 않았을까?
그가 많이 인용한 ‘너 자신을 알라’ 그리고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음미하지 않는 삶은 무의미하다’, ‘잘못된 법이라도 지켜야 한다’, 죽기 전에 남겼다는 말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빚진 닭 한 마리를 갚아달라’ 등 서양문명의 고전기를 대표하는 철학자의 죽음 앞에서 그가 남긴 수많은 질문과 함께 자신을 잠깐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으리라.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에 그의 친구나 제자들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드렸을까?’
난 그게 궁금해지던데…
-소크라테스가 갇혔던 감옥
처음 아크로폴리스에 올라간 것은 1987년 9월이었다. ‘아! 교과서에서 보던 곳! 와~ 시원하다.’ 언덕에 부는 바람을 맞으며 신기한 것을 구경하는 어린 아이처럼 회사 동료와 함께 올랐었다. 입장료는 500드라크마였고 동행했던 그리스인은 무료였다.
‘자국민에 대한 배려가 있는 나라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청소년이나 유럽인의 경로우대 그리고 대학생에 대한 배려가 있다.
‘그리스어로 이 도시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
‘아씨나를 아씨나?’
‘푸~웁! 썰렁해요.’하고 웃음을 짓는다.
그리스어로 아테네를 ‘아씨나’라 한다. 악센트는 가운데 ‘씨’에 있는데 같은 단어로 끝에 ‘나’에 강세가 붙는 것은 아테나 여신을 의미한다.
아테네에만 아크로폴리스라는 지명이 있던 것은 아니다.
아크로는 높은, 폴리는 도시 그래서 ‘도시의 높은 곳’이란 의미의 장소로 아테네에서는 아테나 여신을 위해서 봉헌된 곳이다.
아크로폴리스에 오르면서 처음 보게 되는 니케 신전은 승리의 여신 니케와 함께 아테나 여신이 승리를 기원하고자 지어진 신전이지만 스파르타와의 싸움 중에 절박한 마음으로 건축한 것이다.
아테네인들이 선택한 신은 지혜의 여신이지만 인간은 우매 하였던 건가?
전쟁 중에 일을 벌이지 말고 전선을 확대하지 말라는 페리클레스의 조언이 무색해졌다.
-아테나 니케 신전
건축, 수학에서 비롯되다
프로필레아(전문, 대문)를 지나 아크로폴리스에 완전히 오르면 땅에서 솟으려는 듯이 서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처녀들이 있는 사원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 영어식으로 표기되면서 파르테논 신전이라 하는데 도리아식 기둥의 세계 최고의 걸작으로, 건물로 보기 보단 거대한 조각의 연결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보면 직선과 직면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곡선과 곡면으로 처리된 신전이다.
몸무게 약 2만 톤, 7만여 개의 대리석으로 된 신전의 입구인 동쪽을 기준으로 기둥이 올려진 자리에서 보면 키는 18.69m, 동측 30.88m, 북측 69.5m, 서측 30.96m, 남측 69.61m.
3단 기법이라고 하는데 기둥이 올려진 자리보다 밑에 있는 기단에서 보면 높이는 19.73m, 동측 33.74m, 북측 72.34m, 서측 33.77m, 남측 72.44m 이다.
굳이 크기에 대해 기준점을 다르게 보고 적어놓은 것은 황금비율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길이를 측량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이고 도면으로 만든 것도 1950년, 이미 65년 전에 정확한 길이를 알고 비율도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파르테논을 얘기할 때 황금비율을 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전의 동쪽을 보면서 말하는 비율인데 황금비율은 정확히 1:1.618로, 이 비율은 파르테논에 아주 없다고 볼 수도 없고 정확하게 있다고 볼 수도 없다.
보는 기준점에 따라 아주 어긋난 비율은 아니기에 그리고 안정적이고 이상적으로 느낄 수 있는 비율에 맞춰 건축하였기에 황금비율을 같이 얘기하는 것이리라.
이 신전에는 4:9 비율도 함께 이야기되는데 인체에 있는 비율로 인간에게 있는 이상적인 비율을 건물에 적용한 것이다. 또 착시까지 보완해서 건축한 것이고, 약 6년에 걸쳐 완성해 놓은 조각품들도 빼 놓을 수 없는 작품이지만 우리들에게 남겨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신전이 품고 있는 수학, 과학, 예술, 신화 그리고 신전이 건축된 시대의 전후 역사 등 풍성한 이야기를 담고 지금은 비록 망가진 모습이지만 암반 위에 당당하게 서 있다.
그리스 생활이 20년 넘어가는 시점에서야 파르테논에 대하여 공부할 때 그 숨 막힘의 전율이란.. 마치 일 하면서 실수로 전기를 만져 찌릿하고 놀라 짜증이 나기도 하고 안도의 한 숨이 나오며 멍했던 때의 복잡한 느낌이었다.
민주주의가 완성되던 시대에 이런 훌륭한 건축물을 아무런 감흥 없이 보았구나 하는 자책이 들었던 그리고 한동안 잠자리에 들 때마다 파르테논 신전이 눈앞에 올라와 잠 못 이루고 한참을 뒤척였던 기억이 선하다.
아테네에 만발한 봄이여~
그대는 처녀의 젖가슴에 피어난 수줍은 꽃송이
지상의 영광을 마주보기 수줍어
아침 해도 낯을 붉혔네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히데리온에서
그리스의 엽서 중에 누워있는 아가씨의 젖가슴을 가리개도 없이 사진을 찍어 만든 엽서가 있는데 왜 그런 사진을 엽서로 만들었는지 이해를 못했다. 그냥 아가씨의 봉긋한 가슴을, 예쁘기는 하지만 선정적인 사진을 엽서로 만들었겠거니 했었는데 횔덜린의 시를 읽고서야 그런 엽서를 만든 것이 이해되었다.
참 짓궂으면서 잘 표현한 것 같다.
처녀로 있었던 아테나 여신이기에 여인의 몸 중에서 생명과 관련된 젖가슴을 아크로폴리스로,
젖꼭지를 빗댄 수줍은 꽃송이를 파르테논으로 표현한 것이다.
횔덜린이 그런대로 장수를 했으니 아테나 여신의 마음에 들었나 보다.
-파르테논 신전
글,사진 : 유로자전거나라 배상환 그리스 지점장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www.eurobik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