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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2017.04.16 23:28
오을식의 장편 연재 소설 (15) - 바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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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 연재 소설 (15) 바람의 기억 “명심할게요, 언니!” 영미는 다짐하듯 대답했다. 마담언니의 여러 충고 중 ‘가족의 생계’라는 말이 가장 무거우면서도 절절하게 다가왔다. 영미에게 있어 가족이라는 단어는 왠지 불안하고 생경했다. 다리가 어긋난 개다리소반 위에 놓인 반찬그릇들처럼 뭔가 위태롭게 거슬리는 느낌이랄까. 그건 아마도 엄마의 이른 부재가 크게 작용했을 터였다. 영미가 젖을 떼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엄마는 둘째 영남이를 핏덩이로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목숨과 아기의 생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점에서 엄마는 망설이지 않고 아기를 택했고 그 결정의 여파는 남겨진 가족 모두에게 커다란 흉터이자 후유증으로 남았다. 영미는 가끔 엄마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우리 집은 어떤 형태의 가족일지를 상상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 상상의 끝은 대체로 공허하고 쓸쓸하기 일쑤여서 늘 마음만 다쳤다. 오래 전 고향에 갔을 때 영미를 알아본 어른이 몇 분 있었다. 그분들의 분분한 기억 중 한결같은 증언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움직이지 않은 상여’ 이야기였다. 엄마를 태운 상여가 열 명의 젊은 상여꾼이 들어도 꼼짝을 하지 않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뜬눈으로 돌아가셔서 눈을 감겨드려야 했고, 입관 때는 나무못이 자꾸 부러져서 어려움을 겪었으며, 게다가 장지로 출발할 상여가 언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이 받은 충격이 엄청났다는 엄마의 장례식 풍경. 사람들은 허둥거리다 이웃동네 무당에게 도움을 청했고, 마침내 접신한 당골래의 입을 통해서 엄마의 생생한 육성을 들었다고 했다. 거 참, 네 엄마가 그렇게도 서럽게 울면서 말을 하더라. 우리 어린 새끼들 이 엄동설한에 저리 놔두고 불쌍해서 내가 어찌 갈 수가 있겠느냐고. 그날 동네가 온통 울음바다였느니라. 그래서 마침 젖먹이가 있는 집 새댁들은 돌아가며 핏덩이를 안아서 젖을 먹이고 다른 사람들은 집에 가서 장작도 가져오고 계란도 가져오고 보리쌀도 가져와서 집안에 채워주었지. 앞으로도 서로 도와서 아이들 잘 키울 테니 걱정 말고 가라는 의미로. 근데 신기한 것은 엄마가 당골래를 통해 그렇게 도와준 사람들 이름을 일일이 부르면서 고맙다고 절을 하더란 말이다. 저승에 가서도 잊지 않고 은혜를 갚겠다고 거듭거듭 허리를 굽히면서 말이지. 당골래는 정작 누가 뭘 가져왔는지도 모르는데 그걸 꼭 집어서 말을 하니 다들 혼이 빠졌지 뭐냐. 그렇게 엄마가 떠났고, 그 후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여자 몇이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러 가끔 가족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모진 가난과 아버지의 지독한 주사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도망치듯 떠나갔다. 그때마다 사람이 들고 난 자리에는 늘 그만한 그림자가 서늘하게 남아 집에 남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 그래서일까 영미에게 가족이란 서로 따뜻한 온기를 나누는 공동체의 개념이라기보다 차갑고 쓸쓸하고 허망하고 한시적인 혈연의 조합처럼 느껴졌다. 영미가 가족에 대한 개념을 달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를 대신해 살아남은 동생을 통해서였다. 위기에 빠진 누나를 구하려고 기꺼이 제 삶을 뒤틀어버린 동생 을 통해 가족이란 위기 때 빛을 발하는 특별한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것 처음으로 실감했던 것이다. 영미는 동생 영남이를 생각하면 절로 한숨이 났다. 누나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마음껏 자유로워야 할 젊은 시절을 교도소 담장 안에서 보내고 있는 가여운 동생. 동생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을까. 지금 있는 교도소로 이감되었을 때 면회를 갔었으니 횟수로는 2년이 다 되어가는 것 같다. 영미가 동생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장 마담이 말을 붙였다. “참, 양로원에 다녀와야지. 어르신 달력 보면서 우리 딸 이제나 오나 저제나 오나 하고 재고 계실 텐데.” “그러잖아도 갔다 오려고요. 아마 요즘 우리 아버지 하루에도 몇 번 씩 창가에서 큰길 바라보고 있을 거예요.” “어르신 여자 친구는 잘 계시냐? 좀 진전이 있어?” 계산대에서 돌아온 경철이 자리에 앉으며 영미에게 농담조로 물었다. 영미는 픽 웃으며 아버지의 소리 없는 짝사랑인데 무슨 진전이 있겠냐고 대답했다. 장 마담이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영미는 아버지가 같은 양로원에 계신 할머니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담배를 꺼낸 장 마담이 불을 달라고 손짓을 했다. “할머니가 보통분이 아니시랬지? 인텔리 출신에다 자식들이 다들 성공해서 의사며 판사를 지낸 변호사라고 했던가.” 경철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며 전에 영미에게 전해들은 풍월로 아는 체를 했다. “그러면 뭐해, 그 잘난 자식들은 코빼기도 안 비치는데.” 영미가 톤을 높이자 장 마담이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한탄조로 말했다. “그래서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거다.” 장 마담은 화제를 바꿔 영미에게 생리통은 좀 어떠냐고 물었다. 영미는 미리 약을 먹어서 괜찮다고 대답했다. 장 마담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나저나 하느님이 여자를 만들 때 생리를 궁리하신 건 대단한 발명 같아요.” 영미의 뜬금없는 말에 장 마담과 경철의 시선이 영미에게 쏠렸다. “지랄, 그건 또 뭔 호랑이 풀 뜯어먹는 소리냐?” “그러니까, 생리를 통해서 너는 엄마가 될 몸이라는 걸 다달이 고지를 해주는 것도 그렇고, 만약 누군가와 관계를 가졌는데 생리가 있다면 그건 무효이니 새로 시작하라는 신호이기도 하잖아요. 거기다 우리 같이 몸이 상품인 다찌에게는 지난달의 영업에 이상이 없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아따, 이년, 연구 많이 했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이상한 것만 생각했구나.” 장 마담이 잔을 들자 영미와 경철도 잔을 들어 부딪쳤다. “특히 저 같은 경우는 이때가 우체국에 가서 영치금 부치고 아버지도 만나고 오는 가족 사랑의 날이기도 하니, 이게 얼마나 훌륭한 생리현상인가요.” 장 마담의 핀잔에도 영미는 열이 오른 목소리로 조잘거렸다. 경철이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 미역국을 내와 장 마담 앞에 놓았다. 영미가 미역국의 내력을 알려주자 장 마담이 지갑에서 지폐 석 장을 꺼내 케이크나 사가라며 건넸다. 장 마담이 국을 몇 숟갈 뜨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 영미의 생리 예찬론에 찬물을 끼얹어서 미안하다만, 나는 현역 때 그놈의 생리가 항상 마음에 걸렸다. 늘 행패를 부리는 손님 같았어. 사실은 그래서 눈 딱 감고 수술대에 오른 거지. 손가락질까지 받으면서 말이야. 내가 왜 그런 결정을 했겠니? 물론 자궁에 플립이 생겨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악성이 아니어서 굳이 자궁까지 들어낼 필요는 없었다. 혹만 제거하면 되었으니까. 나는 그때 아주 냉정하게 생각했지. 나는 이미 다찌이고 이대로 가면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기 어려운 팔자라는 걸 나도 알고 세상도 아는 마당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고심 끝에, 그래 굳이 결혼에 목매지 말고 차라리 나만의 팔자를 개척하자. 생리 기간에 일도 못하고 거기다 임신의 두려움에 떠느니 차라리 확 들어내고 일에만 전념해서 돈이나 실컷 벌어보자. 그렇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부딪치다보면 뭔가 결과가 있겠지 싶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장 마담의 자궁 적출’에 관한 일화를 당사자의 입을 통해서 들으니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비장함이 밀려들었다. 장 마담이 다시 말을 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오을식 소설가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자유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으며 제31회 한국소설문학상, 제8회 자유문학상, 제3회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비련사 가는 길」이 2008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었고 2011년 서울문화예술재단 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 「삶과 문화」 편집인 역임.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독일 뒤셀도르프를 거쳐, 현재 베를린에서 머물고 있다. email: oesnov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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