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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2017.05.21 23:08
오을식의 장편 연재 소설 (19) - 바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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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연재소설 (19회) 바람의 기억 3. 우림각의 전설 장 마담을 만나다 부재중 전화도 스무 통이 넘었다. 대부분의 문자는 미친개가 보낸 것으로 굳이 읽지 않아도 내용이 빤해 그대로 삭제했다. 정아는 영미가 보낸 마지막 문자를 천천히 반복해서 읽었다. -은지는 코를 골며 잘도 잔다. 아까 장 마담 만났다며? 장 마담이 내일 너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뭘까. 잘 생각해서 결정해. 나도 참석할 거야. 오늘 네 모습은 꼭 막차를 놓친 소녀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잘 자. 정아는 휴대폰을 손에 쥔 채 한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자신의 모습이 막차를 놓친 소녀 같았다는 영미의 문자가 날카로운 가시로 날아왔다. 대체 나는 어제 무슨 짓을 어떻게 한 것인가. 그것은 누구도 강요한 일이 아니었다. 순전히 내가 선택한 행동이었다. 나는 왜 상상하기도 어려운 그런 일을 굳이 실행한 것일까. 자책이 이어지자 오목 가슴에 통증이 왔다. 찬바람을 맞은 듯 눈이 시렸다. 눈물이 났다. 젖은 시야에 갈래 머리를 한 소녀가 보였다. 소녀는 텅 빈 정류장에서 연신 먼 길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첫차는 멀리에 있고 뭔가 탈 것을 기다리기에는 어둠이 너무 짙었다. 정아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세 번째 정사를 끝낸 고바야시가 이제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을 때가 아침 8시쯤이었다. 그리고 옥탑방에 도착해서 뒷물을 끝냈을 때가 9시였으니 대략 3시간 정도 눈을 붙인 셈이다. 장 마담과의 약속을 지키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정아는 영미에게 시간이 없어서 집에 들러 갈 수 없으니 식당에서 만나자고 문자를 보냈다. 정아는 간밤에 장 마담을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첫 번째 정사를 마친 고바야시가 술이나 한잔하자고 해서 따라간 호텔의 지하 바. 거기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술잔을 비우고 있을 때 동그란 얼굴에 체구가 작달막한 중년 여자가 끼어들어 고바야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고바야시가 정아에게 우림각의 책임자라고 소개했다. 여자는 정아에게 영미를 아느냐고 물었고, 친구라고 대답하자 내일 점심을 함께하자며 자신의 명함을 주었다. 그뿐이었다. 정아는 칫솔질을 하고 간단히 얼굴만 씻은 다음 화장대 앞에 앉았다. 추위가 목덜미를 파고 들었다. 색조화장을 할까 하다가 그냥 샘플용 스킨과 로션을 손바닥에 쳐서 바른 다음 립스틱을 백에서 꺼냈다.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영미구나 싶어 통화버튼부터 누른 정아는 순간 아차 싶었다. 바람소리 너머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흥정한 숏타임 말인데, 섭섭해 하는 것 같아 내 특별히 2만원 올려서 7만원씩 차감할 테니까 그리 아슈. 더 이상은 안 돼. 그럼 이따 저녁에 보자고... ” 정아는 전화기를 침대로 던졌다. 날아간 전화기가 침대에서 튕겨 오르며 벽에 부딪쳐 본체는 방바닥으로, 배터리는 이불로 떨어졌다. 나쁜자식! 정아는 분리된 본체와 배터리를 번갈아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그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배터리를 주워들던 정아는 혹시 미친개가 돌아온 것은 아닌가 싶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방문이 열리고 꽃다발이 보였다. “어휴, 깜짝이야!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장미꽃을 든 사람이 영미인 것을 확인한 정아는 소리를 꽥 지르며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니, 왜 그렇게 놀래고 지랄이야. 꽃을 든 강도도 있냐?” 영미가 눈을 흘겼다. 정아는 영미 뒤를 살피며 은지는, 하고 물었다. 영미가 은지는 지금 아침 맛있게 먹고 티비에 빠져서 잘 놀고 있으니 걱정마라고 대꾸했다. “근데 여태 화장도 안 하고 뭐했니?” “오랜만에 하려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물론 변변한 화장품도 없고. 그래서 그냥 립스틱만 바르려고." “지금 피부 좋다고 자랑질이냐? 하긴 좋은 원판에다 굳이 처바를 필요는 없지.” 영미가 이죽거렸다. 배시시 웃던 정아가 꽃다발을 가리켰다. 이따 네가 장 마담에게 줄 선물이라고 영미가 설명했다. 정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말했다. 영미가 침대에 걸터앉자 정아는 백에서 봉투를 꺼내 영미에게 내밀었다. 영미가 정아의 얼굴과 봉투를 번갈아 보았다. 정아는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며 고바야시가 준 돈이라고 말했다. 영미는 봉투를 열어 슬쩍 액수를 가늠하고는 이걸 왜 나한테 주느냐고 물었다. “나는 대타를 친 것뿐이잖아.” 정아가 거울로 바라보며 대꾸했다. “가시나, 대타를 쳤으니까 네 돈이지. 이건 엄연히 네 노동의 대가야.” 영미가 봉투를 가지고 와 장미꽃 옆에 놓았다. 정아가 그걸 다시 집어들자 영미가 정아의 손을 툭 쳤다. “두툼한 걸 보니 정말 따블로 지불했구나. 고바야시가 구두쇠인데 네가 진짜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기특하네, 짜식! 근데 어땠어?” “뭐가?” “가시나보게, 느낌이 있을 거 아냐? 오랜만에 몸을 연 소감 말이야.” 정아가 얼굴을 붉히며 눈을 흘겼다. 영미가 간지럼을 태우듯 정아의 옆구리를 찌르며 어서 말하라고 보챘다. 정아는 영미의 얼굴을 거울로 가만히 바라보며 친구란 이래서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호텔을 나서서 집에서 올 때만 해도 세상이 온통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아서 고개를 제대로 들 수가 없었는데, 그런 슬픔과 아픔을 이런 방식으로 드러내서 풀어주는구나 싶었다. 정아가 뜸을 들이자 영미가 다시 다그쳤다. 정아는 꽃다발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은 다음 입을 열었다. “음...첫 번은 살짝 아팠지만 좀 짜릿했고 두 번째는 너무 졸려서 비몽사몽이었고 새벽 정사는 솔직히 지겹고 괴로웠다. 됐냐?” “징그러운 놈, 기어이 세 번을 채웠구나. 참, 내가 준 콘돔은 썼어?” 정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끼우려고 했을 때 낙지머리 같은 고바야시의 그것은 이미 잽싸게 몸 안으로 파고든 뒤였다. “그럴 줄 알았어. 그래도 걱정 마라. 고바야시는 본인 입으로 씨 없는 수박이라고 떠벌리고 다니고, 나도 그동안 별 탈이 없었으니까.” 영미가 정아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말했다. 정아가 문단속을 하는 사이 영미는 옥상 난간에 바투 붙어서 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왜바람이 휘돌 때마다 영미의 코트 깃과 머리칼이 함께 흩날렸다. 정아도 영미 곁에 나란히 서서 방파제 위로 솟구치는 파도를 바라보았다. “저렇게 바다가 뒤집어지는 날 물고기들은 어떻게 살까? 특히 작은 고기들은.” 영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바다는 겉만 저러지 속은 잔잔하잖아.” “그런가? 참, 저번 날 뉴스 봤냐? 돌아온 해녀 얘기?” “해녀가 왜?” “글쎄, 저기 방파제에서 먼 바다로 물질 나간 해녀 세 명이 태풍에 실종되었어. 소식이 없어 다들 포기하고 있었는데 세상에나 사흘 만에 하나 둘 헤엄쳐서 나타난 거야. 저런 거친 파도에도 태왁에 하나에 의지해 사흘 밤낮을 버틴 거지. 게다가 물질로 잡은 걸 망사리에 그대로 가져왔더래. 배가 고픈데도 팔 욕심에 겨우 몇 개만 먹으면서 말이지. 그러니 삶이란 얼마나 지독하고 위대한 것이냐.” (다음호에 계속) 오을식 소설가 전남 무안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자유문학」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으며 제31회 한국소설문학상, 제8회 자유문학상, 제3회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비련사 가는 길」이 2008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로 선정되었고 2011년 서울문화예술재단 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이사, 「삶과 문화」 편집인 역임. 한국소설가협회 중앙위원 독일 뒤셀도르프를 거쳐, 현재 베를린에서 머물고 있다. email: oesnove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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