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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2017.12.18 02:48
오을식의 장편 연재 소설 (46) - 바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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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밤의 꽃 정아가 뜨악한 표정으로, 무슨 코스가 이리 많으냐고 투덜댔다. 영미가 바짝 다가서서 얼굴을 정아에게로 기울였다. “물론 정규 코스는 끝났지. 근데 꼭 소개해주고 싶은 가게가 있어서. 혹시 손님 모시고 갈 곳이 마땅찮을 때 다른 데 가지 말고 꼭 이 집으로 가 달라는 부탁의 의미도 있고.” “오빠 가게 말이지? 너 노상 방뇨하다가 쓰러졌을 때 구해주었다는 오빠.” 영미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 씨! 그걸 어떻게 알았어? 네게 얘기한 기억이 없는데.” “한 번 얘기했잖아. 아까 통화하는 것도 들었고. 근데 전화기 붙잡고 펼치는 애교가 장난 아니더라. 표정이며 말투가 마치 연인에게 투정부리는 소녀 같았어.” “정말?” “눈꼴시었어. 내일 쯤 내 눈에서 고름 나올지 몰라.” “그 정도였어?” “장난 아니었다니까.” 정아가 눈을 흘기며 대꾸했다. 영미의 볼에 늦가을의 노을 같은 홍조가 번졌다. “난 그냥 오빠에게 예쁜 친구랑 가니까 맛있는 거 준비하라고만 했는데.” “사랑에 취한 소녀였다니까.” 영미의 볼이 더 붉어졌다. 정아가 정색하며 물었다. “근데 그 사람 유부남이라고 하지 않았니?” 영미의 시선이 잠시 하늘로 향했다. 발그레 번졌던 볼의 홍조가 급작스럽게 사위었다. 영미는 잠시 침묵했다가 이윽고 미간을 좁히며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맞아. 오빠 곁을 여우가 지키고 있어. 그래서 지금도 아깝고...분하고... 괘씸해.” 영미는 아깝고, 분하고, 괘씸하다는 말을 마치 메아리를 기대하는 모양새로 띄엄띄엄 힘주어 말했다. “네 표정 보니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을까 짐작이 된다. 힘내라. 아직도 세상의 절반은 남자들로 바글거리잖니. 곧 오빠 같은 남자 나타날 거야.” 정아가 영미의 느슨해진 목도리를 당겨 매만져주고는 볼을 툭 치며 말했다. “그걸 위로라고 하니? 이 까만 머리가 백발이 되고 이 탱탱한 피부가 쭈그렁 망태가 되었을 때 나타나는 왕자라면 그걸 어따 쓰니?” “설거지 시키고 안마 시키면 되지. 하하하... 근데 놓친 고기가 아까운 건 이해가 되는데 왜 분하고 괘씸하기까지 할까?” 정아가 영미의 손을 잡아끌며 화제를 바꾸었다. 영미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여우보다 내가 오빠를 먼저 알았거든. 게다가 오빠는 여우보다 내 몸을 먼저 만졌고. 근데 뒤에 나타난 여우가 어느 날 밤 오빠를 통째로 차지해서 부인 노릇을 하고 있으니 너라면 분하지 않겠니?” “어머나, 뺏긴 거구나.” 영미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괘씸한 건 오빠야. 멍청이, 고자 같은 놈. 나를 업고 제 방으로 가 옷을 벗기고 잘 씻겨서 침대에 눕히고도 소가 닭 보듯 하다니...지가 무슨 화담 서경덕이라고.” 보도에 침을 퇘, 하고 소리 나게 뱉은 영미가 아차 싶은지 정아의 눈치를 살피고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래도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위인들보다는 낫지 않니?” “그건 그래. 오빠는 사고치고 오리발 내밀 남자가 못 되니까. 그러니 역으로 내가 덮쳤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후회가 막심하다. 왜냐하면 여우는 오빠네 가게서 술 마시다 실신한 척 쓰러져서는 나처럼 오빠 방으로 긴급 후송되었지. 근데 이년이 새벽녘에 유령처럼 깨나 오빠를 덮친 거야. 게임 끝! 으, 여우같은 년!” 영미는 양 볼에 주먹을 대고 부르르 떨었다. “말하자면 여우가 곰을 잡아먹은 격이구나.” 정아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씩씩거리던 영미가 보도에 구르는 음료 캔을 발로 걷어찼다. 부츠에 정통으로 옆구리를 채인 캔이 소리를 지르며 도로로 굴렀다. “저기 붉은 건물 보이지?” 영미가 손을 뻗어 정면을 가리켰다. 정아는 붉은 벽돌 건물 모서리에 붙어 점멸하는 붉은색 네온을 바라보았다. “로바다야끼 청춘? 저기가 곰 오빠 아지트구나.” 정아의 말에 영미가 소리 없이 빙그레 웃었다. “저기도 원래는 장 마담이 부업으로 운영한 가게였지. 야화에 우림각 손님이 넘칠 때 예비로 운영한. 작지만 테이블 당 단가도 높고 회전율도 좋았거든. 장 마담이 저 가게서 현금을 모아 명품숍 지분을 인수했다고 하니 얼마나 짭짤한 수입을 올렸을지 짐작이 되지.” “곰 오빠 재주도 좋다. 그리 잘 되는 가게를 어떻게 인수한 거야?” “그 얘기 내가 안 했나? 오빠가 저기 주방장이었잖아. 원래 오빠는 해안도로에 제법 이름난 횟집의 칼잡이였어. 거기 단골손님이었던 장 마담이 눈에 담아두었다가 스카웃을 한 거지. 급여도 더 주고 나중에 저 가게를 물려주는 조건으로. 오빠 얼굴이 오동통해도 구석구석 잘 생겼거든. 여자들에게 친절하고. 장 마담의 노림수는 정확했지. 우리 우림각 아가씨들뿐만 아니라 다른 업소 아가씨들도 다투어 매상 올려주면서 무지 대시를 했으니까.” “오빠 인기가 하늘을 찔렀구나.” “그럼 뭐해, 씨발, 죽 쒀서 여우 줬는데.” 정아가 손으로 영미의 어깨를 가볍게 갈기며 눈을 흘겼다. “그래도 장 마담 대단하다. 약속을 지킨 걸 보면.” “그 양반 약속 하나는 목을 걸고 지키는 스타일이야. 그래서 강 회장 신임을 받은 거고. 아쉬운 건 좀 더 일찍 장사가 잘 될 때 물려주었으면 좋았다는 것.” “어쨌거나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곰과 여우를 만날 수 있겠네.” 정아의 말에 영미가 고개를 저었다. “여우는 이제 가게에 아예 안 나타나. 손님들 눈총도 있고 아기도 돌봐야 해서.” 영미가 말을 끊고 백에서 울리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영미가 통화를 하는 동안 정아는 걸음을 멈추고 ‘청춘’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청춘의 외관은 상호가 주는 생동감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남루했다. 출입문은 칠이 벗겨져 삼나무의 속살이 군데군데 보였고 벽의 벽돌 사이에는 먼지와 이끼가 뒤섞여 우중충했다. 정아는 출입문 옆에 자리한 작은 수족관으로 눈길을 옮겼다. 구석에서 꼬리를 치는 장어 서너 마리와 황돔 몇 마리가 보였다. 전화기를 손에든 영미가 상기된 표정으로 다가왔다. 정아는 영미의 표정을 통해 뭔가 심상치 않은 통화임을 직감했다. “마담 언니야, 너 지금 우림각으로 들어오라는 전갈!” “출근은 내일부터하기로 했잖아. 근데 왜?” 정아의 물음에 영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윽고, “오늘 밤 단독 면접이 있대.” 영미가 엄지를 세우며 말했다. 정아가 마담님? 하고 묻자 영미가 아니 강 회장님, 하고 대답했다. 정아의 눈이 커졌다. 정아는 장 마담이 선불금 문제를 강 회장에게 전달한 모양이라고 짐작하며 내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왜 오라는지 짚이는 게 있어. 너도 같이 가자.” 정아가 명랑하게 말했다. 영미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정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바보야, 단독 면담이라니까. 너 혼자 가야 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어? 사실 말이 면접이지... 오늘 밤... 네가 강 회장님을 모셔야 해.” 영미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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