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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2018.03.05 01:08
오을식의 장편 연재 소설 (55) - 바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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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밤의 연가 “일본 업소에도 아가씨들 널렸을 건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저럴 이유가 있을까? 저 사람이 정말 사냥꾼이라면 말이야. 혹시,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예를 들자면?” “가령 게이샤(藝者) 용도로 데려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정아의 설명에 영미가 뚱한 어조로, “게이샤?” 하고 되물었다. “그래, 일본 기생 말이야. 그럴 수도 있잖아.” “그게 가능할까?” 영미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게이샤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술집 여자가 아니라고 하던데. 게이샤의 뜻이 예술하는 사람(藝者)인 것만 봐도 보통 내기들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잖아.” “하긴 현지 문화와 언어를 모르는 사람들 데려다 게이샤를 만든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겠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아가씨들도 게이샤가 되려면 하나마치(花街)라는 게이샤 마을로 들어가 5년 정도의 혹독한 교육과 실습을 받아야 한다는데.” “헐, 그깟 기생이 되는데 뭐 그리 오래 걸려? 대체 뭘 배우기에...” “장난 아니래. 일단 선발이 되면 마이코(舞妓) 신분이 되는데, 마이코는 오키야 라고 하는 게이샤의 저택으로 들어가서 엄마 격인 오카상의 지원과 지도를 받는다고 해. 춤과 악기, 노래, 대화 요령을 가르치는 전문학교를 다니면서.” “그러니까 마이코 신분으로 5년 정도를 배우고 익혀야 비로소 정식 게이샤가 되는 거구나.” “그런 셈이지. 근데 대개 마이코 코스를 십대 후반에 들어간다고 했으니 우리 같은 나이배기는 상관없는 얘기긴 하다.” “나이도 그렇지만, 우리처럼 당장 몸을 팔아야 생계가 유지되는 다찌들에게는 꿈같은 소리지.” 영미가 탄식조로 중얼거렸다. “하긴. 아참, 흥미로운 게 있는데, 게이샤는 원칙적으로 성을 팔수가 없대. 어디까지나 술자리나 찻집에서 손님들 흥을 돋우거나 대화만 가능하다는 거야. 혹시 손님과 정이 들어 잠자리를 하더라도 그 대가로 돈을 받아서는 안 된대. 재미있지?” “그게 뭐 하는 짓이야. 노동의 대가를 포기하다니. 아닐 거야. 모르긴 해도 호사가들이 게이샤 자존심 세워주느라 그런 말을 만들었을 것 같아. 걔들도 목구멍이 포도청일 텐데 무료 봉사가 말이 되니? 아마 암암리에 어떤 형태로든 화대를 받을 것 같아. 근데 넌 그런 걸 어디서 주워들었니?” “예전에 학교에서 교수님께 들었어. 일본 가거든 얼굴 하얗게 화장하고 화려한 기모노 차림의 아가씨들이 있는지 살펴보라고. 게이샤와 마이코를 구별하는 법도 가르쳐줬는데 그건 까먹었고.” 정아가 제 머리를 툭 치며 웃었다. 동백실로 간 아가씨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장 마담이 없는 대기실은 사자나 호랑이가 없는 사파리처럼 평온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가씨들이 삼삼오오 둘러 앉아 도란거리다 간혹 웃음을 터트렸다. 더러는 창가에 붙어 서서 멍하니 밖을 바라보거나 구석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소곤거리는 아가씨도 눈에 띄었다. 족두리를 매만지며 출입문을 바라보던 정아가 고개를 돌려 영미를 쳐다보았다. “콧수염이 아직도 결정을 못한 모양이지? 전에 저런 방식으로 스카웃을 해간 적이 있었니?” “물론이지. 재작년인가, 우구이스다니에서 온 사냥꾼이 우리 아가씨 다섯 명을 한꺼번에 보쌈해간 적도 있어.” 정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우구이스다니? 도쿄에 있는?” 영미가 의아한 표정으로 거길 아느냐고 물었다. “물론이지. 거기 은지 아빠랑 같이 갔었어.” “어머나, 유흥업소 널린 곳으로 신혼여행을?” “아니 일종의 수학여행. 우리 일문학과 3학년들이 4박5일 동안 도쿄 여행을 했거든.” 정아의 뇌리에 우구이스다니 기차역의 스산한 밤풍경이 떠올랐다. 우에노 역에서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렸던 우구이스다니역. 같이 간 남자 동기 중 하나가 거기에 유명한 맛집이 있다고 해서 부러 찾아간 곳이었다. “우리는 거기가 요란한 술집이며 요시와라(성매매업소)가 널린 곳인 줄 모르고 간 거야. 그냥 라면 잘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그거 한 그릇 먹고 근처에서 열리고 있다는 아사가오 (나팔꽃) 축제장으로 갈 계획이었거든.” “하긴 업소들이 그때만 해도 음성적으로 움직였을 테니 여행객들은 잘 모를 수밖에 없었을 거다. 더구나 학생들이니. 요즘 거기 가면 목돈을 만질 수 있다는 소문이 무섭게 돌고 있지. 벌써 우림각에서도 자발적으로 간 아가씨도 여럿이고. 나랑 친했던 친구 하나도 갔는데, 돈을 꽤나 모은 모양이더라고. 걔가 그러는데, 자고 일어나면 업소가 하나씩 생길 정도로 성업 중이래.” 장 마담이 대기실로 들어오는 바람에 얘기가 중단되었다. 영미가 장 마담에게 다가가 초이스가 완료되었느냐고 물었다. 장 마담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번에도 전부 퇴짜를 놓지 뭐니. 그래서 더 이상 이 방으로 올 아가씨가 없다고 버텼지. 싫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그랬더니 우림각에 아가씨가 수백 명이라는 말을 듣고 왔는데 이래도 되는 것이냐고 따지기에 남은 아가씨들은 다 짝이 정해졌다고 딱 잡아뗐다. 그것으로 게임 끝.” “아이고, 고소하네요. 그래서 콧수염이 누굴 지명했어요?” “민정이. 똥 재린 얼굴로 둘러보더니 제일 끝에 선 걔를 찍지 뭐니.” “어머나 덕분에 민정이가 계 탔네요. 걔 맨날 일본 가서 목돈 만지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어쩌면 꿈이 이뤄질지도 모르겠어요.” 영미의 너스레에 장 마담의 표정이 다시 구겨졌다. “걔는 우림각 떠나지 못한다. 땡겨 간 선불금 해결하기 전까지는.” “어쨌거나 내일 민정이가 출근하면 콧수염의 정체를 알 수 있겠지요?” 영미가 어색해진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 애썼다. 정아는 선불금이라는 말에 뜨끔했다. 간밤에 사정을 끝낸 강 회장이 욕실을 다녀와서는 잠깐 선불금 얘기를 꺼냈었다. 사채의 총액을 물었고, 사채업자의 연락처를 적으라고 해서 정아는 종이에 미친개의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장 마담은 매화실로 갈 인원을 점검했다. 말미에 정아와 영미의 이름이 호명되자 주위의 시선이 다시 정아에게 쏠렸다. 서로 눈짓을 보내며 수군거렸다. 정아는 족두리가 부담스러워 당장이라도 벗어버리고 싶었으나, 장 마담이 지켜보고 있어서 그대로 견뎠다. “세팅이 완료되는 대로 곧 입장할 테니까 그대로 앉아서 대기한다. 매화실은 교토에서 온 손님들인데 꽤 여유가 있어 보이더라. 이따 나가서 쇼핑할 때 각별히 신경을 쓰도록 해.” 장 마담이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가 아래로 내렸다. 아가씨들이 두 줄로 열을 정리한 다음 자리에 앉았다. “족두리가 참 잘 어울리시네요.” 옆에서 분홍 저고리가 손을 뻗으며 정아에게 말을 걸어왔다. 약간 가무잡잡한 피부에 눈망울이 컸다. 정아가 손을 맞잡으며 작은 소리로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둘을 바라보던 영미가 눈을 찡긋하며 끼어들었다. “정아야, 얘는 라벤더라고 해. 참 향기로운 이름이지? 본명은 언년이야, 박언년.” 당황한 분홍저고리가 몸을 기울여 영미의 입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어머, 미친년! 그걸 굳이 밝혀야겠니?” 영미가 라벤더의 손을 뿌리치며 말을 이었다. “애들이 하도 박은년, 박은년 하고 부르는 통에 뚜껑이 열려서 예명을 쓰는 거야. 맞지, 박은년!” 앞뒤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라벤더가 벌레 씹은 표정으로 영미를 흘겨보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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