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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2018.03.28 01:35
오을식의 장편 연재 소설 (58) - 바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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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밤의 연가 정아는 안절부절못했다. 허벅지의 살이나 근육과는 거리가 먼 뭔가 인위적인 단단함 혹은 딱딱함, 그 이질적인 느낌의 정체가 의족이었다니. 정아는 혼란해진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반사적인 반응이 더벅머리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 것 같아 미안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반갑고 과분한 첫 손님이십니다. 사실 제 주위에도 사고를 당해서 다리가 불편한 친구가 있거든요. 그래서 낯설지 않아요.” 정아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긋나긋 말했다. 그가 러브샷에서 남겼던 맥주를 마저 비웠다. 정아의 말은 사실이었다. 고등학교 때 두 번이나 같은 반이었던 수지는 하굣길에 버스가 인도로 돌진하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잃었던 것이다. “이따 호텔로 가서 따뜻한 수건으로 마사지를 해드릴게요.” 정아는 수지 엄마가 학교에서 돌아온 수지의 의족을 벗기고 그 자리를 김이 나는 수건으로 닦아주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가 이를 드러내며 입술을 늘였다. 표정이 밝아지자 정아는 자신도 모르게 용기가 났다. “좀 만져 봐도 돼요?” 정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그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가능하지, 하지만 가격이 좀 비싼데 괜찮겠어?” “정말요? 아, 그럼 어떡하지요? 전 돈이 없는데.” 정아는 부러 울상을 지으며 어설프기 짝이 없는 그의 농담에 장단을 맞췄다. “이렇게 하면 어때?” 그가 슬그머니 정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떻게요?” 정아도 부러 턱을 내밀며 다정하게 굴었다. “물물 교환! 그러니까 서로 한 번씩 만지기로!” 좋아요! 정아가 명랑하게 대답했다. 그가 자신의 허벅지 위로 정아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정아의 손이 천천히 그의 허벅지에서 무릎을 거쳐 종아리로 내려갔다. “인간이 아니라 로봇 같지?” 더벅머리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던가. 정아는 뜨끔했다. 이 사람이 그새 내 마음을 읽었나 싶었다. 허벅지 밑단에서 시작된 의족은 무릎에서부터 급격하게 얇아져 마치 살과 근육을 제거한 뼈 같았다. 마치 로봇이나 사이보그의 그것처럼. 그나저나 이 사람은 어쩌다가 다리를 잃은 것일까, 정아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다시 한 번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그때 옆에서 불쑥 터틀넥이 끼어들었다. “어라, 겁도 없이 내 아우의 아킬레스를 주무르다니!” “이건 신성한 물물교환이에요! 그쵸?” 정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벅머리의 손을 끌어와 자신의 치마 속에 넣으며 말했다. 그가 빙긋 웃으며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정아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거 환상의 커플이군! 그렇다면 형이 가만있을 수 없지. 내가 퀴즈를 내서 이 멋진 아가씨에게 포상을 좀 해야겠어. 만약 맞추면 이따 나가서 선물을 사주지.” 터틀넥이 더벅머리를 바라보며 눈을 찡긋거렸다. “제가 퀴즈에 아주 강한데 괜찮겠어요?” 정아도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터틀넥이 좋아, 기꺼이! 하고는 들고 있던 잔을 비웠다. “문제를 아주 쉽게 내지. 지금 자기가 만지고 있는 내 아우의 다리는 우리 어머니가 빚어주신 다리가 아니야. 무슨 의미인지 알지? 자 그럼 문제를 내겠어. 그렇다면 어머니가 빚어주신 그 소중한 다리는 과연 어디로 간 것일까?” 정아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무슨 문제가 그래요? 지난 상처를 들추면 마음만 아프잖아요.” 정아가 타박하듯 말했다. 터틀넥이 이것 봐라, 하는 표정으로 엄지를 세웠다. “오호, 마음이 예쁜 아가씨군. 이런 천사에게 결정적인 힌트를 안 줄 수가 없지. 잘 들어봐. 내 아우의 다리는 비록 기차 바퀴가 삼켜버렸지만 열아홉 살 당시의 그 막강한 기운과 굳센 기상은 다행히 아우의 몸 어느 곳으로 고스란히 이관되었단 말이야. 그게 어딜까 하는 게 문제!” 터틀넥의 장황한 설명을 가만히 듣고 있던 더벅머리가 얼굴을 붉히며 픽 웃음을 흘렸다. 정아는 답을 찾는 모양새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더벅머리의 표정에서 이미 답이 빤하게 짚였으나 그걸 차마 말로 꺼내기가 민망해서 주저하고 있었다. 그때 더벅머리가 정아의 옆구리를 찌르며 자신의 사타구니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정아는 이때다 싶어 슬쩍 내려놓는 소리로 주저하며 말했다. “혹시 아우님의 고추로?” 순간 터틀넥이 웃음을 터트리며 박수를 쳤다. 주변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정답! 사실 굉장히 어려운 문제였는데, 대단한 실력입니다. 아타라시에게는 정말 고난이도의 문제였을 텐데 말이지요.” 터틀넥이 주변에 대고 너스레를 떨었다. 정아는 아차 했다. 자신이 잠시 아타라시 신분이라는 걸 잊고 너무 나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까부터 이편으로 고개를 빼고 정아를 지켜보던 터틀넥의 파트너가 정아와 눈이 마주치자 한 마디 거들었다. “정답의 사실 여부는 이따 호텔로 가서 직접 확인해보면 알겠지요? 호호...” 만찬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식사 후에 디저트로 곶감과 수정과가 나오자 아가씨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빠져나갔다. 영문을 모르는 정아는 영미의 손짓을 보고서야 일어섰다. “우리 정아 어디 속성학원에서 과외라도 받았니? 보니까 접대 실력이 아주 노련하던데.” 복도로 나서기가 무섭게 영미가 어깨를 토닥거렸다. “뭔 소리야. 등줄기에 식은땀 줄줄 흘렸어. 근데 손님들 두고 왜 다들 대기실로 가는 거니?” 영미가 정아의 저고리 겉섶의 밑단을 살짝 들추며, 이제 이거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실은 방금 매화실에서 나온 아가씨들과 스텐바이 중인 아가씨들이 뒤섞여 북새통이었다. 탈의실은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어서 뒤에 온 아가씨들은 아무 곳에서나 훌훌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수영하는 모양새로 탈의실을 비집고 들어간 영미가 사물함에서 옷을 챙겨 창가로 나왔다. 아까 지연이가 서성거리며 커피를 홀짝거렸던 바로 그 자리였다. 지연은 수선화실로 배정을 받은 모양으로 장 마담 바로 앞의 대열에 끼어있었다. “네 손님은 마음씨가 좋아 보이더라.” 옷고름을 풀며 정아가 말했다. “잘 봤어. 대개 생긴 대로 놀 거든. ...있잖아, 아까 내 파트너가 귀에 대고 심각하게 그러는 거야. 자긴 지난 10년 넘게 자기 고추를 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엥? 그게 무슨 말?” 바닥에 허물처럼 널린 한복을 주워들며 정아가 물었다. “별 거 아니야, 그냥 자폭 농담이지. 배가 많이 나와서 지 물건이 안 보인다는 소리. 그래, 네 파트너는 어때? 보아하니 똥고집깨나 부리게 생겼던데.” “나도 괜찮아. 다리가 불편한 게 조금 걸리지만.” 정아의 대꾸에 영미의 눈이 점점 동그래졌다. “혹시, ...장애인? 두 다리 다?” 정아가 고개를 저었다. 영미의 미간이 좁혀졌다. 수선화실 팀이 출발하자 대기실이 눈에 띄게 한적해졌다. 탈의실도 언제 북적거렸느냐는 듯 조용했다. “걱정할 거 없어. 휠체어 없이 멀쩡하게 들어올 정도면 정상인과 다를 바 없을 거야. 마담 언니가 따로 공지를 안 한 걸 보면 전혀 티가 안 났던 것 같아.” 둘은 사물함에 한복을 넣어두고서 나란히 대기실을 나섰다. 영미가 정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난 말이야, 예전에 두 다리에 두 팔까지 없는 난쟁이 손님도 받아봤어.” “정말?” 놀란 정아가 걸음을 멈추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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