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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2019.03.25 19:53

오을식의 장편연재소설 (제104회) 바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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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연재소설 (제104회)

바람의 기억


7. 꽃비의 계절


“재미있을 게 뭐 있겠나, 그저 그렇지.”

담담한 어조로 대꾸했지만 혹시 무슨 낌새를 채고 묻는 소린가 싶어 살짝 불안했다. 기남이 고개를 돌려 정아를 바라보았다. 

“사실 질자 항렬 일들이 고되긴 하지. 선생질도 그렇지만 톱질, 낫질, 도끼질, 서방질, 계집질... 이런 게 다 진땀깨나 흘리는 일이잖아.” 

그게 뭔 소리야, 하며 정아가 공갈 주먹으로 기남의 어깨를 갈겼다.  

“아무튼 너 일본어 강의하는 모습 좀 보고 싶다. 정말 멋질 것 같거든.”

“멋질 것도 많다. 그냥 학원 수업이야, 반은 듣고 반은 졸고 하는.”

문득 강의실의 풍경이 떠오르면서 분필 특유의 촉감이 느껴졌다. 엄지와 검지와 중지 사이를 오가는 차고 부드러운 느낌. 칠판의 마찰음도 이명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그게 너랑 제일 잘 어울리는 일인 것 같아서 그래. 어쨌거나 다음 달에는 네 강의실 구경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화들짝 놀란 정아가 고개를 돌렸다. 

“그, 그게 무슨 말이야?”

기남이 비행기 모양으로 손을 날렸다.  

“우리 갑장들 모임에서 다음 달에 여행을 가거든. 난 별 기대치가 없었는데 어제부로 생각이 바뀌었어.”

기남이 달뜬 표정으로 말했다. 정아는 얼른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눈만 끔벅거렸다. 기남의 시선이 스캔을 하듯 정아의 얼굴을 훑었다. 

“별로 반기는 표정이 아닌데. 막상 가면 누구세요, 하고 안면 바꿀 것 같은 이 싸한 느낌은 뭐지?”

그제야 정아는 그럴 리가 있느냐며 손사래를 쳤다. 

“당연히 환영이지. 일정이 확정되면 알려줘. 회에 소주 한 잔하게.”

기남이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였다. 신이 난 기남이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정아도 겉으로 흥겨운 척 입을 달싹거렸다. 하지만 속으로는 기남이 정말로 여행을 와 학원으로 오겠다고 하면 어쩌나 싶어 가슴이 답답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곱고 예쁜 여자 사람이랑 둘이서 호젓하게 있으니 기분이 되게 달달하다. 꼭 연애하는 느낌이야.”

“어머, 정말 내가 여자로 느껴지니? 빈말이라도 고맙다, 얘.”

정아는 부러 호들갑스럽게 대꾸했다. 기남의 얼굴에 살짝 붉은 기가 돌았다. 호흡과 시선에서도 미묘한 열기가 감지되었다. 

“아이가 하나라고 했나?”

정아는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응, 유치원 다닌다. 어머니가 돌봐주셔.”

기남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할머니가? 보통은 엄마들이 양육권을 갖던데. 혹시 사별한 거니?”

기남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얼굴 가득 불콰하게 화가 몰리는 느낌이랄까. 미간이 좁혀지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진짜 내가 미치는 줄 알았다. 열 달 동안 제 뱃속에서 키워 낳은 새끼를 어떻게 그렇게 헌 신발짝 버리듯이 할 수가 있는지. 짐승도 어린 새끼한테는 그러지 않는데 말이야.”

몸을 벌떡 일으킨 기남이 좌석을 원래대로 올리고는 창유리를 내렸다. 

“내가 이렇게 담배를 끊지 못하는 건 순전히 그 독종 때문이야.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벌떡증이 난다니까.”

기남은 담배에 불을 붙여 볼이 움푹 패도록 빨았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연기를 내뿜었다.  

“내가 괜한 말을 해서 기분을 상하게 했구나.”

“뭐 없던 일을 물은 것도 아닌데 뭐. 괜찮아. 근데 여자가 뻔뻔해도 너무 뻔뻔해.”

 기남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서너 차례 연기를 독하게 뿜어내고는 담배를 바닥에 비벼서 껐다.

“바람나서 야반도주했으면 다시는 얼씬도 말아야지. 무슨 낯짝이 그렇게 두꺼운 지, 내가 환장하겠다. 잊을 만하면 유치원에 나타나 어미입네 하고 유세를 떨고 있거든. 내가 우리 집에 얼씬만 하면 다리를 분질러놓겠다고 했더니 차마 집으로는 못 오고 말이야.”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기남이 새 담배를 꺼내자 정아는 라이터를 넘겨받아 불을 붙여주었다. 

“다시 돌아오고 싶어서 그런 것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애를 위해서라도 다시 결합하는 건 어떠니?”

정아의 말에 기남이 갑자기 연기에 체한 것처럼 거푸 기침을 해댔다. 

“너도 참, 내가 또라이냐? 그런 인간을 받아들이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타박을 하는 바람에 정아는 머쓱해졌다. 기남은 기침으로 발개진 눈을 비비면서 씩씩거렸다.  

“아, 진짜 그 생각만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씩씩해보이던 너도 사실은 상처투성이였구나. 내가 전후사정을 몰라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젠 그냥 마음을 편히 가졌으면 좋겠다. 정아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기남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어제 어머니로부터 네 사정을 들으면서 내가 속으로 얼마나 감동을 한지 아냐. 아마 너랑 비교가 되어서 더 화가 난 것  같아.”

정아는 뜨악한 표정으로 기남을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기남에게 뭔가 많은 얘기를 풀어놓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  

“아유, 우리 엄마가 또 무슨 말씀을 하셨다니, 쓸데없이.”

“그게 왜 쓸데없는 얘기야. 너처럼 남자를 존중하는 여자는 복을 받아야 마땅해.”

기남이 엄지를 세우자 정아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그러지 마라. 원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잖아. 누구에게나 각자 감당해야 할 슬픔과 고통의 짐이 있게 마련이야.”

“나도 이 좋은 시간에 그런 우울한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그냥 너랑 이렇게 가만히 소소한 평화를 누리고 싶어.”

기남은 한동안 말없이 앞산을 바라보았다. 벌써 해의 허리가 능선에 걸려 있었다. 강물 위로 짙은 산그늘이 길게 드리워졌다. 

기남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숨을 고르는 모양새였다. 이윽고 그윽한 눈길로 정아를 바라보았다. 정아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 

“저 봉우리 말이야. 저기 오른편 능선 어딘가에 우리 오빠가 잠들어 있어.”

기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여섯 살 때까지는 오빠가 있었어. 나보다 두 뼘 쯤 큰 듬직한 오빠가.”

기남이 능선을 응시하며, 근데 왜 먼저 산으로 가신 거냐고 물었다.  

“장티푸스!”

“저런! 열병에 걸리셨구나. 그거 고약한 병이라서 욕에도 등장하잖아. 염병!”

“맞아, 옛날에는 염병에 걸려 많이들 죽었지. 지금도 생생해. 아무도 드나들지 못하게 우리 집 주변에 빙 둘러쳐져 있던 금줄이며 지게에 실려 있던 오빠의 작은 관, 그리고 샘가에서 허리를 꺾고 눈물을 훔치는 아버지의 모습.”

“어릴 때 죽으면 장례도 봉분도 없지. 가족들이 알 수 없는 곳에 묻었어.”

정아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래서 가끔 궁금해. 우리 오빠는 저 산 어디에 누워있을까, 하고. 그러면서 스스로를 위로하지. 우리 오빠는 아마 저기 능선 어딘가에서 봄이면 진달래로 가을에는 단풍나무로 살고 있을 것이라고.”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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