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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을식의 장편 연재소설
2019.07.22 00:28
오을식의 장편연재소설 (제119회) 바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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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연재소설 (제119회) 바람의 기억 9. 새장을 열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랄까. 상황이 어찌 이리 극단으로 치닫는 것인지. 정아는 목이 탔다.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입이 절로 벌어지더라.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 바로 돌아서려는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어. 그래서 얼른 성매매금지법 시행을 설명했지. 걸리면 가차 없이 쇠고랑을 차야한다. 때문에 아가씨 씨가 말라 부르는 게 값이다. 그랬더니 알고 있다고, 그래서 내가 최소 10만 엔은 줘야 한다고 했다. 그럼 물러설 줄 알았거든. 근데 놈이 선뜻 받겠다는 거야. 속으로 아차 했지. 그렇지만 어쩌겠나, 이미 말을 뱉어버렸으니.” 정아는 장 마담의 말에 눈앞이 환해졌다. 10만 엔을 환전하면 100만 원 아닌가. 그렇다면 장 마담에게 40%를 떼 준다 해도 60만 원을 손에 쥘 수 있다. “제가 갈게요!” 정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영미가 바로 손사래를 쳤다. “안 돼, 하지 마!” “설마 죽이기야 하겠니?” “내 말 들어. 돈은 내가 어떻게 돌려볼 게.” 영미가 눈을 부릅떴다. 장 마담은 난감한 모양이었다. 정아는 지금 자신의 의지가 확고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장 마담은 상체를 시트 깊숙이 기댄 채 이내 눈을 감아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장 마담이 상체를 곧추세웠다. “좋아, 나가라! 나가서 견뎌봐.” 정아가 고개를 돌려 장 마담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난 개입하지 않을 거야. 모든 책임은 네가 스스로 지는 거야. 무슨 뜻인지 알지? 네가 구급차에 실려 간다고 해도 나는 몰라. 나는 이 일에 처음부터 끝까지 아예 없었던 거야. 그러므로 수수료도 없다.” 정아는 입술을 자근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장 마담은 두어 차례 심호흡으로 숨을 고른 뒤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10시 정각. 1018호로 가라!” 차에서 내린 장 마담이 승강기를 향해 걸어갔다. 마치 바다로 향하는 황제펭귄의 걸음걸이와 흡사했다. 두 사람은 장 마담이 사라진 뒤에도 한참이나 승강기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2시간 3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계속 차안에 있기에는 너무 긴 시간. 나가서 밥을 먹자고 정아가 제안했다. 밥보다는 술이나 한잔 가볍게 하자고 영미가 대꾸했다. 그래서 둘이는 밥을 먹으면서 술도 한잔하기로 결정했다. 주차장을 빠져 나와 우림각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정아는 버튼을 눌러 창문을 내렸다. 차가운 기운이 확 끼쳤다. 바람이 늦게 걷은 세탁물의 감촉처럼 눅눅했다. 비라도 뿌리려는 것인가. 아가씨들의 발길이 끊긴 뒷골목은 적막했다. 우림각 근처에 차를 세우고 걸어 식당으로 들어갔다. ‘여수갈매기’를 부른 가수가 운영한다는 불고깃집이었다. 예전과 달리 가게는 한산했다. 이즈음이면 주당들 떠드는 소리며 고기 굽는 냄새가 우림각 대기실까지 진동했는데, 여기도 우림각 폐업의 여파가 크게 미치고 있었다. 부러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살집이 좋은 아줌마가 물수건과 컵을 내려놓으면서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느냐고 아는 체를 했다. 영미가 이게 없어서 못 왔다며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주문을 하고 가게 안을 둘러보던 영미가 시선을 고정하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에잇, 진짜. 저기 재수 없는 새끼 있다!” “왜, 누군데?” 정아가 고개를 돌리니 저편 자리에서 사내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냥 무시해.” 영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내가 목소리를 높여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사내는 일하는 아줌마를 불러서 다짜고짜 어디서 이렇게 고약한 냄새가 나느냐고 큰소리를 쳤다. 넓은 홀에 손님은 그쪽과 이쪽뿐이었다. 대작하고 있던 친구가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사내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저놈 또 지랄 시작했다. 귀신들은 다 뭐 하는지 몰라 저런 놈 잡아가지 않고. 저 새끼 조금 있으면 틀림없이 지가 옛날에 돼지 키웠다는 소리를 할 거야. 그게 술주정 고정 레퍼토리거든.” 어디서 봤을까, 낯이 익은 사내였다. 정아는 사내의 테이블을 힐끗 살폈다. 빈 병을 보니 대략 소주 10병 정도는 비운 것 같다. 영미 말에 따르면, 그는 얼마 전까지 어느 호스트바의 선수 겸 지배인이었다. 호스트바는 남자접대부가 있는 여성전용술집이었다. 영미의 예고는 적중했다. 드디어 사내의 입이 거칠게 열렸다. -이 유동근이 말이야, 예전에 돼지를 자그마치 2천3백두 하고도 25마리나 키웠어. 내가 마지막 한 마리까지 딱 기억한다고. 근데 말이야, 참, 이상해. 내가 일을 끝내고 사우나에 들러 깨끗하게 씻고 또 씻고 향수를 뒤집어쓰고 가도 술집에 가면 이년들이 어디서 이렇게 돼지똥 냄새가 나냐고 지랄이거든. 근데 이제야 그년들 말이 진리라는 걸 이해하겠어. 사람한테 나는 냄새 그거 아주 중요하거든. 아무리 잘 씻고 위장을 해도 돼지 키운 놈에게서 돼지냄새 나고 회칼 잡는 놈에게서 생선 비린내 나게 마련이야. 그럼 어떻게 되겠어, 그렇지. 우림각 이년들 밑구멍에서는 지들이 아무리 씻고 또 씻어도 쪽빠리 냄새가 진동하게 되어 있거든, 암! 이건 이 유동근이 발견한 진리야! “저 새끼 저거 골통을 부셔버릴까 보다.” 영미가 씩씩거리며 술병 모가지를 쥐려고 했다. 놀란 정아가 서둘러 제지했다. 영미는 전에도 술자리에서 몇 번 맥주병으로 뒤재주쳐 피를 본 전력이 있었다. “처가 우리 우림각 아이였어. 지금은 애 데리고 잠수를 탔지만. 참 순하고 좋은 아이였는데 저 새끼 만나 팔자 조진 거지.” 두 사람은 대강 시장기만 속이고 서둘러 식당을 나왔다. 사내의 주정 때문에 얼마나 바삐 먹었는지, 아직도 대략 1시간 40분 정도나 여유가 있었다. 두 사람은 우림각 정문을 향해 걸었다. 담장을 따라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소나무를 쳐다보았다. 마치 덕수궁 돌담길처럼 운치가 있는 우림각으로 가는 길. 정아는 영미 손에 이끌려 처음 출근했을 때를 떠올렸다. 이러다 모녀가 굶어죽겠다 싶어 영미를 따라나선 새 일터. 그날 정아는 이 담장을 끼고 돌아 대문을 들어서면서 내가 과연 살아서 이 대문을 걸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공포감에 사로잡혔었다. 쪽문을 밀었다. 어둠에 잠겨있는 정원이 어렴풋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웅장한 우림각의 위용. 정아는 고개를 들어 건물을 쳐다보았다. 그때는 기와 골마다 고드름이 매달려 있어서 누군가 떨어져라! 하고 소리를 지르면 금방이라도 정수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 같았었지. 정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에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같이 드나들던 직장인데 막상 불을 꺼버리니까, 마음이 많이 안 좋다.” 영미가 중얼거렸다. 정아가 나직하게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야, 우리 앞으로 어떻게 살지? 성매매금지법은 추상같고, 장 마담처럼 쌓아둔 쩐도 없고, 그렇다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넌 그래도 학원 선생이라도 할 수 있잖아. 일본어 잘 하니까. 난 뭐니?” “학원? 그거 빛좋은 개살구야. 굶어죽기 딱 좋거든.” 정아가 혼잣말로 구시렁거렸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예전에 학원에서 일본어를 가르칠 때 수강생이 적어 정말로 굶어죽을 뻔했었다. “어머나, 아직도 고기들이 살아 있어!” 정원 구석으로 가 휴대폰 불빛으로 연못을 살피던 영미가 탄성을 터트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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