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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혜의 세계 여행기
2020.06.30 02:00
30일간 네팔 정글에서의 모험
조회 수 1579 추천 수 0 댓글 0
손선혜의 세계여행기 30일간 네팔 정글에서의 모험 30일간 스마트폰도 인터넽도 없었다. 죽음이 바로 눈 앞에 온 극한 상황 까지 갔었던 네팔정글에서의 모험담을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요악을 해야겠다. 의자를 끌어 당겨 앉아 차 한잔을 따른다. 크리스마스 휴가철에 처음 이 여행계획을 세우기 시작 했을 때 나는 그룹투어나 여행객들이 많이 가는 전형적인 루트를 가고 싶지 않았다. 셔파가이드와 함께 산행다운 히말라야 산행을 하고 싶었다. 친구로부터 주로 네팔을 트레킹하는 카나다사람인 셔파/가이드를 소개 받았다. 운 좋게도 50세를 바라보는 이사람은 자기자신에게 주는 생일선물로 히말라야에 전에 없던 새 루트를 만들기 위해 ‘꿈의 트레킹’을 하려는 사람이다. 그의 꿈의 루트는 험하기로 알려진 고지의 돌포(Dolpo) 지역을 탐험해 보는 것이다. 해발 15000피트의 6개의 산들을 넘어 가야하는 곳으로 작은 비행기는 물론 헬리콥터가 비상착륙도 할 수 없는 험하고 깊은 산이라고 했다. 그의 트레킹 예정 날자는 내게도 장갑끼듯 꼭 맞았기에 함께 가자는 그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 와의 트레킹은 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카트만두에서 만나기로 한 날자가 두주 남았을 때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그는 그의 트레킹계획을 취소했다. 내가 얼마나 당황했을지 상상을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모든일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멀리서 줄수 있는 전문가의 안내와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 자신이 함께 자주 트레킹하는 믿을 만한 셔파, 요리사, 짐나르는사람들, 말과 야크를 제공해주고 원래의 계획대로 돌포지역을 탐사할 수 있도록 도와 주겠다고 했다. 일분 일분 시간이 지나면서 산행을 하는 여행이 아니라 모험이 되어갔다. 나는 그의 모든 제의를 받아들여 계획대로 떠나기로했다. 이윽고 카트만두에 도착할 무렵 네팔당국으로부터 혼자 돌포지역을 가는데는 허가를 해 줄 수 없다는 소식을 받았다. 이것이야말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청천벽력같은 소식이다. 그러나 카트만두에 있는 그의 트렉킹 에이전트의 도움으로 여행객들이 가지 않는 가네슈 히말 지역을 답사해보는 목적으로는 허가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영국을 떠나기 전날 유쿨레레를 사고 생철로 만든 작은 피리와 같은 페니휘슬(penny whistle)을 샀다. 카트만두에서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톱(saw)도 샀다. 이제 히말라야산을 향해 떠날 준비가 되었다. 아직 내게 준비 되어있지 않은것은 내일 아침 내 호텔로 8사람의 팀이 나를 픽업하러 온다는 사실이다. 믿기지 않는 일이다. 운전수, 셔파가이드, 요리사, 그리고 5명의 짐을 나르는 사람들! 왕가의 일원이 된듯한 느낌이다. 이렇게 9명의 우리 일행은 랜드로버 한대에 끼워 타고 구석구석 짐들을 쑤셔넣고 끼워넣으니 차가 뒤집어 지는게 아닐가 겁이 났다. 진실로 이렇게 필요한 물건이 많을 줄은 상상을 못했다. 그러나 단한개의 물건도 낭비하지 않았고 재활용해가며 모든게 절실히 필요한것들이었다. 그래도 거기에 중간중간 필요한 물건들을 더 사야했다. 정글 속에서도 많은 양식을 찾아 충족했다. 함께 간 남정네들은 실로 많이 잘도 먹었다. 내게도 평상시보다 매일 두배 세배의 양을 먹게했다. 한 낮 의 식사로 다알(dhal)을 먹고 산 속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물론 네팔의 경치, 소리, 그리고 냄새 그 자체로 춤분한 잔치를 치루는것 같으나 산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점점 높아지고 점점 더 힘들어졌다. 장거리에 있는 첫번째 산을 쉽게 넘기위해 우리의 랜드로버 운전수는 요새를 급습을 하듯 밀어 부치며 올라갔다. 그것은 내게는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였었다. 산의 경사는 점점 심해져서 차는 기어 일단으로 올라갔다. 벼랑의 길은 좁고 많은 바위돌로 덮혀있었다. 나는 벼랑 쪽에 앉아서 낭떨어지로 굴러 떨어져 죽을것만 같았다. 난 무서움에 눈을 꼭 감고 네팔의 많은 신들을 부르며 기도를 드렸다. 경사진 산의 곳곳에는 산이 무너져 내려 더이상 갈 수 없을 것만같은 곳과 바위들이 길을 막은 듯 떨어져 내린 곳에서는 일행 모두 차를 내려 바위들을 치워야했고 무너져 내린 땅에 폭우가 내려 작은 강이 된곳은 그냥 밀어부치듯 돌진했다. 마치 해리슨 포드가 주인공이었던 영화 인디아나 죤스의 장면 같았다. 이것이 이번 탐험과 같은 네팔 여행의 시작이었다. 아직 이번 트렉킹이 어떤것인지도 설명을 못했고 또 한달 동안 매일 매일 일어났던 기상천외한 경험을 얘기하지 못했다. 이제 간단히 요약해 보고자한다. 산들의 높이는 해발 2900에서 16400피트를 오르내린다. 하루에도 오르내리는 산 높이의 폭이 7000피트다. 오르고 내리는 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산 높이의 폭이다. 내게는 참으로 힘든 산행이었지만 내 짐을 지고 산행에 필요한 그 많은 짐을 지고 가는 팀원들은 더 많이 힘들겠건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점잖고 명랑함을 잃지 않는 모습이 내게 많은 용기를 주었고 존경심을 갖게 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가 왔다. 폭우가 가차없이 잔인할정도로 세차게 내리는 비는 기세가 하도 맹렬해서 경사가 심한 지역을 지날 때는 흙이 무너져 내리지 않을가 두려움이 앞섰다. 매일 캠핑을 했다. 모든것이 속속들이 젖어있을 때 캠핑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팀원들이 캠프화이어를 만들었때의 따듯함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결코 이렇게 깊고 경사진 정글을 트레킹하게 될 줄은 꿈에도 기대하지 않았다. 힘든 산이라도 오른다는 사실에는 마음의 준비를 했었다. 히말라야에서는 스케일이라는 말에는 아주 다른 의미가 있다. 나는 산을 걸어서 오르거나 내려가야하고 부딛치는 어려움에는 해결해가며 견뎌야한다는 것을 받아 들이며 앞으로 걸어 나가야 했다. 한가지 내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것은 정글에는 거머리가 많이 있다는것을 몰랐다는것이다. 내 머리 속에는 실은 이번 트레킹은 히말라야 산행을 하는것이었지 비가 많이오는 정글이라는것은 전혀 상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억만개의 거머리들! 이번 산행에서 가장 오래 남아 있을 기억이다. 아마도 이 사실을 몰랐던 때문일 수도 있고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것일수도 있을것이다. 아니면 그냥 어디던지 거머리 군대가 온천지에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글, 강, 숲, 풀, 어디에나 있었으니! 거머리를 알아보는데 익숙해져서 이제는 눈에 잘 뜨인다. 바위위에 있는 뱀이 목을 쭉 빼고 두리번거리고 있는것 같거나 풀잎의 칼날 같은데에 붙어있거나 나무들 잎사귀에 수직으로 매달려 있다가 그 옆으로 지나가면 냉큼 달라붙는다. 몸에나 장화에 붙어있는 것을 떼어 내느라면 그 동안에 떼어낸것 보다 더 많은 수자의 거머리가 달라붙는다. 지난 여름 네팔에는 계절풍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신이 비와 천둥번개를 내가 올 때까지 저장해 두었나보다. 내가 트레킹씨즌보다 좀 일찍 온것이 잘못인가보다. 나는 이렇게 많은 비와 폭풍을 경험한 적이 없다. 더욱 위험한것은 이렇게 급경사의 산을 오르고 내리는 정글을 더구나 갑자기 밀어닥치는 홍수속에서 걷는다는것이다. 오도가도 못하는 기막힌 상황이 생길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 거기에 거머리들은 비를 좋아 하니! 수 만개의 거머리들 속에서 살아 남아야한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정말로 경험이 많고 뛰어난 나의 셔파 팀과 나는 매일 전쟁터에서 상처입은 사람들 같았다. 등산화, 양말, 바지들이 피로 물들여져 있다. 집요한 놈들은 내 발목과 종아리만 괴롭혔을 뿐만 아니라 다리 위로도 기어 오르고 넙적다리, 배. 목, 손, 손목 까지 올라와 피를 빨아 먹었다. 밤새 얼굴까지도 공략을 했다. 어느날 밤에는 쥐새끼와 텐트를 함께 썼다. 그래도 그것이 거머리보다는 낫다. 기온은 양극을 오락가락 했다. 영하로 내려 갈 때는 따듯한 다운 슬리핑백에서 자는것은 물론 갖고 온 내복, 실크, 울, 다운으로 된 옷을 다 입어야했고 더울 때는 티셔츠와 내의만 입고 가만이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이런 기온의 차이는 산의 고도에 관련이 있는것으로 안다. 그 지겨운 거머리가 아니면 이제는 모기가 극성을 부려 나에게서 먹을 수 있는것은 다 빨아 먹는다. 시트로넬라로 목욕을 하다시피해도 소용이 없다. 노래얘기를 해보자. 새로 산 유클레레로 몇개의 기본코드를 손에 익혀서 캠프파이어 때에 적당한 여러가지 노래를 즉흥으로 들려주었다. 몇개의 네팔민요도 배워 작은 피리로 함께 노래하고 톱으로도 연주해주니 우리 셔파팀은 물론 현지주민들과 산 마을 ...<29면에 이어 계속> <28면에 이어 계속> 사람들이 많이 신기해 했다. 산과 정글 속으로 들어가기 전 만났던 산마을 사람들의 큰 지진 후의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보고 가슴이 많이 아팠다. 궁극적으로 나의 이번 트레킹길에서 제일 잊지 못하고 기억에 남는 점은 나의 셔파팀의 질과 사람들의 품성이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으며 얼마나 옷을 얇게 입었는지 참으로 놀라운 일이란 생각을 자주 했다. 그럼에도 일행간의 동지애와 우정이 있어 생기는 즐거움을 함께하고 자연이 주는 어려움을 함께 이겨내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나는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으며 항상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셔파 가이드, 바하두르는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 초인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직관력이 있는 사람이다. 내 몸이 아무리 불편해도 결코 밖으로 나타낸 적이 없는데도 내 몸에 불편한 곳이 있다는것을 느끼고 어디가 아픈지까지 아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먼 곳에 있는 나무나 바위에 앉은 원숭이가 보이고 흔히 보이지 않는 새나 벌레들 까지도 보이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지어준 별명은 ‘독수리의 눈’이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은 바로 요리사, 쿠마다. 모든 일에 열정이 있고 용감한 큰 움직임 중에도 섬세한 곳까지 신경을 쓰며 조용히 일을 처리한다. 손 에 든 큰 칼은 나무를 베어 음식을 만들 때 쓸 땔감을 마련하고 정글을 지날 때는 나무가지들을 쳐내어 길을 내는데 쓴다. 그가 음식을 만들때는 경외의 눈을 뗄 수가 없다. 아무것도 없는듯 보이는 재료로 매일 9명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내 놓는다. 집에 가서 그의 음식을 만들어 보아야겠다. 제일 어린 멤버는 19살 짜리 비크람이다. 내게 필요한 물건들, 슬리핑백, 텐트, 내 짐을 도맡아 나르고 심지어 내 세수물은 물론, 티를 타오곤 했다. 시간이 있던 어느 오후에는 그의 삶과 꿈에 대해서 얘기하고 그가 좋아하는 네팔노래들을 작은호루라기같은 페니휘슬로 불어 주었다. 콤퓨터공학을 공부하는 그는 영리해서 그의 장래가 밝다고 믿는다. 예쁘고도 깊은 눈을 갖은 키가 훌쩍 큰 샌딥은 보기보다 힘이세며 마음이 착하고 사랑스럽다. 이 험한 탐험길을 해변가에서 신는 슬리퍼(flipflop) 를 신고 걸었으며 미끄러운 길에서 깊은 계곡으로 떨어졌을 때는 모두 많이 걱정을 했으나 큰 상처없이 올라왔다. 떨어진 계곡으로 그를 구하러 내려간 사람은 니마다. 아주 강한 니마는 마치 산이 그가 거처하는 집같이 익숙하고 편하다는 듯 어려움을 잘 헤쳐나간다. 마일라, 그는 나에게 미소짓는 부처다. 항상 미소지으며 도움을 주려는 준비가 되어있다. 그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 버섯을 따오는걸 좋아한다. 그렇게 정글에서 식량문제 해결에 한 몫을 했다. 산을 타기에 아주 두려울 정도로 어려운 고비를 만나도 장화 한켤레로 다 해결한다. 그러나 나의 가장 중요한 영웅은 첫 몬쑨후의 홍수에서 나를 업고 홍수에 휩쓸리는 격류의 강을 하나도 아닌 여러개를 건넌 오석이다. 나는 겁에 질렸지만 그에게는 쉽게만 보였다. 경험이 풍부한 그는 해발 23,000피트 의 고지인 에버레스트 캠프 2에서 텐트도 없이 얼음위에서 슬리핑백 하나로 하루밤을 살아 남은 수퍼 쿨한 사람이다. 매우 힘들었던 날에 급경사의 산과 걷기에도 위험한 협곡은 단 한 발작을 잘못 디디면 낭떨어지로 떨어져 죽을것만 같은 위험한 경지에 놓이곤 했었다. 이런 때에 오석과 마일라는 자신들의 큰 짐들을 내려놓고 내게 와서 내 짐은 마일라가 지고 오석은 내 손을 잡아 내가 절벽을 건너 뛰듯 쾌속도로 가로 질러 건너도록 했다. 너무도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행군의 한발작, 한 발작을 옯겨야 할때마다 아드레날린의 과도한 분비에 눌물이 났다. 우리 모두는 함께 그것을 느겼고 무사히 살아 남았다는데 감사했다. 마지막 날에사 한달만에 처음으로 온종일 해가 났다. 옷을 꺼내 말리고 부츠, 텐트를 말렸다 그 다음 날 카트만두를 향해 7시간동안 다시 비 속을 달릴 준비로! 마지막 밤, 나는 카트만두에서 일행 전부를 그들이 원하는 식당으로 초대했다. 우리는 스테이크와 칩스, 케찹 그리고 커다란 잔의 맥주로 목을 추겼다. 이렇게 그들이 나를 서양세계로 데려다 주는대로 천천이 따랐다. 전기밥솥에 스위치를 올리고 한달 동안 먹던 다알(dhal)을 그들의 방법대로 만들어 볼려고 렌틸을 물에 담근다. 글쓴이 : 영국 한인 손선혜 ommasdream@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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